라면업계, 해당 발언 즉각 눈치보기
경제 전문가들 "가격통제 나설 경우, 시장왜곡 발생할 가능성도"

[위클리서울=방석현 기자] 라면은 대표적인 서민음식 중 하나다. 라면값 변동은 곧바로 밥상머리 물가 상승으로 직결되는 만큼, 소비자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일까.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KBS일요진단에 출연해 “국제 밀 가격이 1년 전보다 약 50% 내려갔다”며 “기업들이 밀 가격 하락에 맞춰 적정하게 판매가를 내렸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하나하나 원가를 조사하고 가격을 통제할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소비자 단체가 압력을 행사하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이주리 기자

정부가 업체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라면업계에서는 해당 발언을 예의주시하며 즉각 눈치보기에 들어갔다. 안 그래도 물가인상에 따른 소비자들 시선이 곱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부총리가 라면을 콕 짚어 공격하자 자칫 모난돌 정맞을까 두렵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현재 라면업계 내에서는 가격인하 계획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면서도 “국민 부담을 최소화할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른 소비재들의 가격도 만만치 않게 올랐는데 라면만 부각시킨 부분은 다소 억울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밀 가격은 역대급으로 치솟았지만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식품산업통계정보 기준 5월 국제 밀(SRW) 가격은 t당 228달러로 1년 전(419달러)보다 45.6% 가량 하락했다. 밀 가격이 하락했다는 추 부총리의 말은 옳았다.

하지만 라면생산에 필요한 것은 비단 밀가루 뿐만이 아니다. 수프에 사용되는 재료들부터 인건비, 전기‧수도요금까지 안오른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밀가루 가격이 하락했으니까 라면 가격을 내리라는 정부 압박은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왜 제분업체를 지적하지 않았느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추 부총리가 언급한 국제 밀 가격은 순수 원재료 이야기지만, 대부분의 라면회사들은 삼양사‧CJ제일제당 등 제분업체들로부터 밀가루를 공급받는다. 이들 업체는 작년에 밀가루 공급가를 10% 이상 올렸다.

밀가루 공급가가 오르면서 국내 라면업체들 역시 원부자재 가격상승 등을 이유로 지난해 말 일제히 가격을 올렸다. 농심이 11.3%, 오뚜기가 11%, 팔도가 9.8%, 삼양식품이 9.7% 등의 인상률을 보였다. 이들 업체의 가격 인상으로 5월 기준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13.1%나 올랐다.

가격인상의 영향 탓인지 라면업계의 올해 1분기 실적은 좋았다. 먼저 농심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전년대비 16.9% 가량 오른 8603억원을 기록했고, 오뚜기 역시도 15.4% 늘어난 8567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삼양식품은 21.5% 증가한 2455억원을 기록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원부자재 가격 상승을 이유로 발빠르게 가격을 올린 라면업계가 실적개선의 단맛을 본 것 역시도 추 부총리의 발언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추 부총리의 라면값 언급이 밀가루를 사용하는 품목을 추가 압박하기 위한 일종의 빌드업(build-up)이라는 해석까지 내놓는다.

식품업계 내에서는 추 부총리가 라면을 지적하면서 ‘밀 가격’을 언급한 만큼 다음 타자는 빵‧과자 등을 취급하는 제과‧제빵업계가 유력하다고 보고 있다. 동시에 관련 제품을 취급하는 커피전문점이 다음 타겟, 꼼수할인 논란을 빚었던 교촌치킨을 필두로 치킨‧햄버거‧피자 등 대표적인 배달음식 메뉴까지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식품업계를 때리다보면 결국 식당음식 가격에 대한 이야기까지 번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물가변동을 살펴보면 지난 5월 기준 소비자물가 상승폭은 1년 전보다 3.3% 오르는데 그쳤다. 하지만 여전히 라면·김밥 같은 주요 먹거리 물가상승률은 높은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물가가 안정화 돼있다고 말하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체감하지 못하는 만큼, 라면을 콕 짚어 언급한 것은 일종의 ‘보여주기’로도 볼 수 있다.

물가를 잡으려는 정부의 고심과는 별개로 ‘시장개입’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통신비를 언급하며 통신사들이 신규 요금제를 내놓는 일이 있었고, 소주가격 인상을 앞두고 주류업계들을 불러다 인상자제를 압박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예 주무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물가안정 간담회에서 식품가격 동결을 압박하기도 했다.

이번에 경제부총리가 라면값까지 언급하고 나서면서, 업계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에 나설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 역시도 “정부가 특정 품목을 겨냥해 가격통제에 나설 경우 풍선효과로 인한 시장왜곡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며 “시장에 가격인상을 자제하라는 일종의 시그널을 주는 것까지는 좋지만 너무 사사건건 나서게 되면 자칫 시장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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