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교권은 어디로’ 어느 초등교사의 바람-1

[위클리서울=최규재 기자]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다. 사제 간에도 투쟁 구도가 형성될 수 있을까. 군사부일체에서 ‘군생부일체’로 전환하는 시기라는 우스갯소리가 들리는 현실. 다소 당혹스럽지만 요즘 세태가 그렇다. “선생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말은 낡은 역사서에나 나올 법하다. 이제 교사가 학생들의 눈치를 보는 시대다. 물론 교권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도 있었다. 군사부일체라는 용어가 낯설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엔 교실의 아이들이 스승의 구둣발에 밟히는 일이 횡행했다. 상황은 역전되었고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의 성화에 못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는 지경에 이르렀다. 근본적인 상생 해법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전국의 교사들이 당국에 처우 개선을 요구 중인 가운데에서도 현장의 교사들은 하나 둘씩 목숨을 끊고 있다.

 

조희연 교육감이 서초교 분향소에  헌화를하고 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서이초 교사 49재일에도 죽음 행렬

최근 교사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으면서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교육부에 따르면 7월부터 이날까지 총 7명의 교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장 먼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서이초 교사 자살 사태’다.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 1학년 담임교사 A씨가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다. 2년차 교사가 학부모의 잦은 민원에 스트레스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태는 일파만파로 퍼졌다.

8월 31일에는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을 맡고 있던 B씨가 경기 고양의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9월 1일에는 전북 군산의 한 초등교사 C씨, 9월 3일에는 경기 용인의 60대 고교 교사 D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서이초 교사 A씨의 49재일에도 교사들의 죽음 행렬은 멈추지 않았다. 중학교 교장으로 근무한 제주도교육청 과장 E씨가 바닷가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고, 9월 7일에는 대전과 청주에서 초등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극단선택에 이른 공립 초중고 교원은 지난 6년(2018년~올해 6월) 간 100명에 이른다. 이와 관련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학부모 갑질과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가 보호받기 위한 대책으로 ‘교권 침해 사안 교육감 고발 의무 법제화 등 가해자 처벌 강화’, ‘학부모 인식 제고와 교육 및 서약서 등의 확인 절차’, ‘관리자가 직접 민원에 대응하는 방안’ 등을 내놓았다.

서이초 교사 사태 이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원단체들은 거리로 나서 교육당국에 처우 개선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교사 행정업무 줄이겠다”, “교권침해 소송 비용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교육 현장 분위기는 여전히 어수선한 상황. 이런 가운데 <위클리서울>은 한 초등학교 교사(경북 포항)의 사정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포항에서 7년째 교사 생활을 하고 있는 최모(남. 44) 씨는 현재 두 아이를 기르는 평범한 가장이다. 결혼 생활은 4년 차여서 집에서는 갓난 아이들에게 시달리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시달린다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학생들에게 시달린다는 얘기는 곧 학생-학부모에게 동시에 시달린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남자 교사들의 경우 학생들이 조금은 두려워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교사들보다 남교사들이 아이들을 상대하기 편한 건 맞다. 하지만 여기에 부모가 개입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남교사, 여교사 구분은 무의미하다. 모든 교사에게 교장이나 교육청보다 무서운 게 학부모다.”

최 씨는 얼마전 학부모에게 멱살을 잡힌 적도 있다. 학생 인성 평가보고서에 ‘아이가 산만하고 장난끼가 많다’라고 적었기 때문. 최 씨는 “당시 교실에 아이 아버지가 찾아와 당장 고쳐쓰라고 윽박지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멱살까지 잡히며 평가 내용을 고쳐야 했다. 물론 이보다 더한 일도 있다”며 “요즘은 도시생활을 접고 다시 한적한 시골로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최 씨가 9년 전 임용고시에 합격한 후 처음 부임한 곳은 경북 성주의 한적한 시골마을. 당시만 해도 교사생활이 꿈 같았다고 한다. 따지러 오는 학부모도 대드는 아이들도 없었다. 하지만 따분한 시골생활에 지쳐 포항으로 전출 신청을 했고, 어쩌면 그것이 악수였다는 최 씨. 그는 “여건만 된다면 아마 많은 교사들이 시골 생활을 꿈 꿀 것”이라며 “한 때는 임용고시에 합격한 교사들이 대도시에 있는 학교에 임용되길 원했는데 요즘은 사정이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 다음은 최모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 교사 생활은 언제부터 했나.

▲ 15년 정도 되었다. 기간제 교사로 지내다가 9년전쯤 정규 교사가 되었다. 6년간 임용고시에 떨어졌고, 합격했을 당시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처럼 기뻤다. 그런데 요즘은 왜 교사가 되었을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 원래 교사가 꿈이었나.

▲ 장래로 정한 건 20대 중반이 될 무렵이었다. 당시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있었는데,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다. 물론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졸업을 앞두고 무슨 배짱으로 그만두웠냐며(웃음). 졸업을 해도 일반 기업에 취직할 게 뻔했다. 회사 생활은 저와 맞지 않을 것 같아 학생들을 가르치길 원했다. 대학 때 과외도 많이 해봤고, 가르치는 재미가 쏠쏠했기 때문이다.
 

- 정규 교사 되기 전까지는 이른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였는데 당시 어떤 심정으로 아이들과 소통했나.

▲ 대학으로 따지면 시간강사 같은 것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어떤 도덕적 관념은 없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정규 교사가 아니어서 그런지, 열성적으로 가르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그저 사고만 치지 말자는 식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삶을 유지하려 했다. 학교와 학부모 눈치만 봐야 했으니 말이다. 기간제 교사는 정규 교사랑 달리 바로바로 잘릴 수 있다. 그래서 꿈을 다른 곳에 뒀다. 빨리 임용고시에 합격해서 오로지 정규 교사가 되고자 했다.
 

- 정규 교사가 된 이후 처음 부임한 곳에서 생활은 어땠나.

▲ 처음엔 도시로 가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 도시 쪽으로 신청을 했지만 결국 경북 성주의 자그마한 시골마을이었다. 학생들은 6학년까지 통틀어 60여명에 불과했다. 한 학년당 평균 10명인 셈이다. 교장, 교감 제외하고 교사도 6명 뿐이었다. 학교에 찾아오는 학부모들 중 호통치는 분도 없었고, 그저 밭에서 방금 따온 과일 꾸러미만 들고 올 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좋은 시절이었다. 시골 생활 지겹다며 괜히 도시로 전출 신청 내면서 사는 게 많이 변했다. 팍팍해졌다.
 

- 최근까지 서이초 교사 사태 등 교사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 교권 추락? 어차피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얘기다.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곯고 곯다가 터진 거다. 뉴스에 안 나오고, 그동안 다들 쉬쉬해서 그렇지 서이초 교사처럼 생을 마감한 교사들이 알게 모르게 많다. 그런데 뭘 어쩔텐가. 언론사에 제보를 한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한다고 해서 사건이 깔끔하게 해결되었을까. 서이초 교사 사태 이전, 그동안 운명을 달리한 교사들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금 서이초 교사 사태도 보라. 문제의 소지가 있는 학부모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잡아떼고 있고, 해법이 없어 보일 뿐이다.

<2회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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