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일본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탕후루를 한 입 베어 물은 그때

요즘 유행한다는 탕후루를 친구의 등쌀에 떠밀려 결국 한 입 먹었을 때, 혀가 아플 정도로 달았던 설탕의 맛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오래전에 내가 있었던 어떤 밤을 떠올렸다. 핥아 먹는 게 좋을걸, 깨물어 먹으면 입에 달라 붙어, 친구는 말했다, 요새는 어딜가든 탕후루 가게가 있다고 설탕을 얇게 입히는 곳이 있고 두껍게 입히는 곳도 있고 다 제각각이라고 자기는 얇게 입히는 곳이 더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찐득하게 떨어지는 설탕물이 꼬치 아래에 끼워둔 작은 종이컵으로 떨어졌다. 쓰레기통에는 화살처럼 꽂힌 탕후루 꼬치들이 가득하고, 도대체 유행이란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끝나는 건지 예전에 먹었던 대만 카스테라나 한 번 더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탕후루는 중국의 간식이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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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탕후루를 먹자마자 자동적으로 떠올린 곳은 일본이었다. 탕후루라는 과일에 설탕물을 입혀 굳힌 음식이 유행한다고 했을 때까지 나는 내가 그전까지 탕후루를 먹어 본 적이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탕후루라고 부르는 줄도 모르고 커다란 사과 탕후루를 먹었던 적이 있었고, 그때는 오사카의 여름 밤이었고, 내 옆에서 친구는 축제의 인파 속에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모든 게 특별해 보였던 인생의 거의 첫 해외 여행. 대부분의 한국인이 그런 것처럼 나도 첫 여행이 오사카였다. 한국이 아닌 것으로 꽉 찬 모든 것이 신기했던 대학교 1학년, 그때 내 앞에는 사과 한 알로 그대로 만든 탕후루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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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계획도 없이 가이드북 하나 덜렁 들고 갔던 그때의 일본 여행은 운이 꽤 따랐다. 축제 기간인 줄도 모르고 시내를 걷다가 갑자기 거리 한쪽에서 가마 비스무리한 것을 끌고 나오는 인파를 마주치고 홀린듯 따라 갔다가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다. 정말 신기하지, 정말 신기하다, 친구와 나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축제의 밤을 지났다. 그야말로 인파로 가득 찬 강가였다. 영화로만 보던 일본의 축제 노점상들이 이어졌다.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과 장난감 낚시를 하는 아이들. 찹쌀떡과 붕어빵을 집어 들고 가는 사람들.

우리는 한 가게 앞에 서서 과일 모양 사탕을 샀다. 되게 신기하게 과일 모양이네? 말하며 한 입을 베어 물자 그 안에 사과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냥 사과였다. 갑작스럽게 마주친 축제의 인파와 갑작스럽게 마주친 진짜 사과의 맛. 축제의 탕후루는 내 기억 속에 그렇게 한참 있다가 똑같이 인파로 붐비는 서울 홍대의 길거리에서 되살아났다. 너무 달아서 서울에서 내 돈 주고 탕후루를 사먹을 일은 또 없을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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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했던 오사카, 교토 여행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나간 기억들이 그렇듯이 이제 세세한 이야기들은 흐릿해지고 인상적인 장면들만 마치 책에서 읽었던 장면처럼, 아주 인상적이어서 여전히 기억되고 있는 꿈처럼 남아 있다. 우리가 그때 일본을 택한 이유는 단지 가깝고 만만해서였다. 성인이 된 이후 첫 여행으로 제격이었다. 첫 해외 여행이 주는 어떤 놀랍게 생경한 그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로 훨씬 많은 나라를 다녔지만 그 정도의 느낌을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예 ‘다른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 느낌, 내가 보고 아는 것의 축이 달라져 모든 것이 새롭게 경험되는 느낌. 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그때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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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걸어갈 수 있는 거리면 별다른 이유 없이 걸어다니며 하루에 3~4만 보를 움직였다. 걸으며 기억에 도장을 박듯 진하게 남은 그 짧은 날들. 회를 먹지 않던 내가 잘못 들어간 값비싼 스시집에서 밥을 먹고 나와 회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거나, 도심 한 가운데 있는 옥상 온천에서 볕을 받으며 널부러져 있던 것이나, 그때 먹은 돈카츠의 맛을 잊지 못해 지금까지도 돈카츠에 만큼은 깐깐한 기준을 세우게 된 것이나, 어쩌다 오사카 직장 밥집에 들어가 타이를 멘 샐러리맨들 사이에서 된장라멘을 먹었던 일들은 내게 한참은 더 남아 있을 기억들이다. 일본이라서 좋았을까? 사실 어디였어도 친구와 나는 비슷한 충격을 느끼며 한국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다른 세계에 도착했다는 ‘체험’ 자체가 가장 좋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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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의 욕탕

일본이여서 특별히 좋았던 것도 말해 볼까. 그때 만큼은 아니지만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일본을 다녀오면서 여전히 좋아하는 감각들이 있다. 처음 일본에 방문하기 전에, 누군가가 일본은 한국과 그다지 다를 게 없어서 재미없다고 말한 것을 들었다. 내 경우에는 반대였다. 그다지 다를 게 없어서 신기했다. 다를 게 없는데 차선이 반대로 되어 있고, 거리와 지하철의 폭이 미세하게 다르고, 사람들의 눈빛과 걸음걸이가 약간씩 다르다. 나는 그 ‘약간’ 다른 모습이 신기했다. 한국과 겉으로는 꽤 비슷하게 보이지만 그 미세한 다름을 따라가 보면 전혀 엉뚱한 것들이 나오는 곳이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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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아시아 여행을 주로 다니면서 일본에 다시 관심이 생겼다. 일본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다분히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오래 지켜온 나라였다. 다른 나라들도 여러 층층이 쌓인 역사 때문에 각자의 문화는 가지고 있지만, 내가 짧게나마 알아본 일본은 그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연한 곳이었다. 자기 고유한 문화 지키기에 장인처럼 열중이면서도 갑작스럽게 찾아온 서구를 순식간에 받아들였던 것처럼 외부로도 열려 있는 것 같은 일본. 일본에 기독교 인구가 1%도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처음 알았고, 그들이 왜 신사에 가서 기도를 하고 여전히 천황제와 아날로그를 고수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흔히 말하듯 일본은 알면 알수록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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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가 끝나고 해외 여행이 다시 재개된 이후 나는 가족여행으로 후쿠오카를 방문했다. 그저 가깝다는 것 외에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던 후쿠오카는 다녀온 이후로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는 도시가 되었다. 오사카와 교토, 도쿄를 다녀왔는데도 후쿠오카는 다른 방식으로 새로웠다. 수도와 멀리 떨어져 있는 비교적 작은 도시지만 규슈의 중심인 도시, 이곳을 통해 오래전부터 동쪽과 서쪽의 사람들이 일본으로 드나들었다. 하나의 도시는 늘 도시 이상을 보여준다. 묵었던 호텔 베란다에 있는 야외 욕탕에 들어 누워 생각했다.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아시아 여행이 이곳에서 끝나서 다행이라고. 따뜻한 물은 따뜻한 생각을 품게 해주기 마련이므로, 나는 후쿠오카의 욕탕에서 지난 여행의 조각들이 언뜻 비추는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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