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및 경제단체들 “준비할 시간 더 필요” 유예 촉구
노동계 “근거 없는 공포, 유예하면 법 취지 무색해져” 반발

[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23일 열린 경제5단체장 기자회견
국회에서 23일 열린 경제5단체장 기자회견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중소기업 및 경제단체들 “준비할 시간 더 필요” 유예 촉구

사망자 또는 중상자가 발생할 경우,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중대재해처벌법’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현장에서는 준비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으며 경제단체들 역시 유예촉구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더 이상의 유예는 법 도입 취지를 무시하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관계 부처인 고용노동부에서도 추가유예를 요청하면서 노동계와 정부 사이의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는 상황이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지난 22일 양대노총은 여의도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의원들과 '50인 미만 적용유예 연장 반대'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노동계 “근거 없는 공포, 유예하면 법 취지 무색해져” 반발

앞서 정부와 국민의힘은 소규모 기업에 대한 중대재해법 적용을 2년 더 유예하자는 입장을 밝히면서, 1조2000억원을 투입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측에서 계속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 적용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일종의 달래기에 나선 셈이다.

당정이 꺼내든 지원책에 따르면 관계부처, 공공기관, 유관 협회 및 단체 등이 참여한 민관합동 추진단을 구성하고 5인 이상 50인 미만의 사업장 83만7000곳이 자체적으로 안전진단을 하는 ‘산업안전 대진단’을 실시한다.

인력과 예산부족 등을 이유로 자체 중대재해예방 역량을 갖추기 어려운 소규모 사업장을 위해 컨설팅‧인력‧장비 등을 패키지로 지원하고 안전보건 관련 전문인력 역시도 2026년까지 2만명 양산한다는 구상이다.

스마트 안전장비 도입이나 노후‧위험공정 개선에 드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것도 확대할 방침이다. 일련의 대책을 실행하기 위해 정부는 내년도 1조2000억원 가량의 재정을 투입할 계획이다.

정부의 이러한 지원대책 마련은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안전보건관리 역량 확충을 위해 드는 비용이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지역상공회의소 22곳과 50인 미만 회원 업체 641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기업 중 22.6%만 중대재해처벌법 대응을 위한 조치를 취했다고 답변했다.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76.4%는 ‘별다른 조치 없이 종전 상태를 유지’(39.6%)하거나 ‘조치사항 검토 중’(36.8%)이라고 밝혀 시행이 코앞으로 닥쳐왔음에도 준비가 미흡하다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실태조사에서 응답기업의 90%가량에 달하는 89.9%가 내년 1월26일까지인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유예를 더 연장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지난 23일에도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단체는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정부의 대승적 결단을 촉구했다.

정부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재차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을 얘기하는 부분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다.

 

ⓒ위클리서울/ 최규재 기자

고용노동부 등 입장 발표 “빵집 사장님도 적용 대상 된다”

24일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유관부처 장관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추가 유예’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대표로 브리핑에 나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이 확대 시행된다면, 상시 근로자가 5명 이상인 동네 음식점이나 빵집 사장님도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 대상이 된다”며 현장의 생생한 우려를 전했다.

이 장관은 “"지난 2년간 현장의 50인 미만 기업들은 열악한 인력·예산 여건 속에서도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에 대비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와 전반적인 경기 위축 등 피할 수 없는 어려움으로 아직 준비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의 확대적용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되풀이 했다.

그는 “영세·중소기업의 경우 대표이사가 생산부터 기획·영업·안전관리까지 모든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중대재해로 대표이사가 처벌을 받을 경우 경영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며 “83만7000개의 50인 미만 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그곳에서 일하는 800만명 근로자의 고용과 일자리에 미칠 것이 자명하다”고 거듭 우려했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입장발표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중대재해법 시행이 중소기업의 폐업을 가져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법 시행을 유예한다면 그야말로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다.

민주노총은 같은날 국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노동자의 권리와 안전을 가장 앞장서서 보호해야 하는 고용부가 제 본분을 망각하고 법을 시행하라는 노동 현장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한 채 오직 경제단체의 호소 만을 대변하고 있는 상황을 스스로 깊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 언성을 높였다.

그러면서 3년 동안 제대로 준비도 안하고 이제와서 항변하는 기업들의 행태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노동자의 목숨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겠다는 기업은 없어져야 한다”는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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