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겨울 코스모스' 50회
'소설-겨울 코스모스' 50회
  • 이율 작가
  • 승인 2016.03.09 1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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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가자…."

준오의 설명을 들은 캡은 이내 결정을 내렸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시간이 촉박했던 것이다. 이미 마감시간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슬쩍 본 그는 사회면 한 페이지 전부를 할애할 것임을 알리고는 곧바로 기사작성 작업에 들어갈 것을 요구했다.

이제 준오에게 남은 건 지금껏 애써온, 그래서 자신의 머릿속에 차곡차곡 저장해놓은 모든 정보들을 원고지, 아니 컴퓨터에 쏟아 붓는 일이었다. 추상화를 구상화로 만드는 작업. 글 꽤나 쓴다는 준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노트북을 펼치고 열 개의 손가락을 컴퓨터 좌판 위에 올려놓자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나….

준오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때 독한 마음으로 끊으려 했던 담배. 하지만 시도 자체가 무리였다. 흔히들 말하는 기자 나부랭이에게 담배와 술은 어찌할 수 없는 벗이었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기사를 쓰다가 막히면 담배를 피워 물었고 그래서 신문사 사무실 사방의 벽면마다 붙어있는 굵은 고딕체의 '금연'이라는 큰 활자는 무색하기만 했다.

손끝에서 타오른 담배연기가 무풍의 공기를 타고 올라가 그리 높지 않은 천장에 부딪혀 흩어졌다. 마감을 서두르는 동료들의 좌판 두들기는 소리와 전화벨 울리는 소리, 전화에 대고 고함을 치는 소리가 뒤섞여 마치 시장통을 방불케했다. 항상 그랬기 때문에 낯설 건 없었으나 왠지 오늘의 준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마치 전혀 다른 공간에 와있는 것 같은 생소함이 몸에 돌기를 일으켰다.

준오는 문득 반쯤 타들어간 담배의 끝 부분에 위태롭게 매달려 금새라도 떨어져 내릴 듯한 회색의 전리품을 발견하고 책상 한쪽에 놓여 있는 하얀 사기로 된 재떨이로 조심스럽게 손을 옮겼다.

'제목은 뭘로 하지….'

물론 제목은 뽑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준오는 그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일단 한글을 창에 띄워놓고 맨 위에 커서를 놓은 다음 제목부터 쳐 놓아야 그 다음 기사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래봤자 자신이 정한 제목이 신문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지만.

"정초 일어난 엽기적 사건의 범인은 따로 있었다" "부모살해 범인은 바로 이 사람" "부모 난자 살해 사건, 범인 본지가 잡았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쓰기를 수십차례. 준오는 마침내 제목 뽑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다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이미 썩을대로 썩어버린 속에서 올라온 매캐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파고들었다. 구역질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아야 했다.

피였다. 열려진 현관문틈 사이로 새어나온 불빛에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는 검붉은 피. 문틈 사이로 흘러 내려온 빗물일거야, 라고 다른 생각을 하려 애썼던 경훈의 수고는 물거품이 돼버렸다. 핏줄기는 현관문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갈 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며 꼬불꼬불 이어진 핏줄의 끝은 마치 뱀의 혓바닥 마냥 두 개로 갈라져 있다. 경훈은 그 혓바닥의 한쪽을 밟고 있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경훈의 다리를 휘감고 있는 듯 했다. 살아있는 뱀. 손가락을 썩게 하는 배암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고향의 한길 가나 논밭 등에서 그 배암을 만나면 경훈은 절대 손가락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발이나 주먹을 써서 그 영물을 가리키곤 했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나 손가락으로 배암을 가리키면 그 손가락이 썩는다는 말이 뇌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암은 꿈틀거렸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어느 겨울 터질 것 같은 오줌보를 쥐어싸고 찾아들어간 어두컴컴한 골목에 급하게 쏟아낸 오줌의 그것 마냥. 세워둔 승용차 밑을 지나 꼬불꼬불 흘러 내려간 오줌줄기는 다음날 아침에 보았을 때도 족히 10여 미터는 뻗어 나간 채로 고스란히 남아 주인의 얼굴을 붉어지게 하곤 했다.

경훈은 발을 옮겼다. 발길에 밟힌 배암의 몸통에서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현관 앞 신발을 벗어두는 자리엔 남녀의 신발 몇 켤레가 어지러이 널려 있다. 주방을 겸해서 쓰는 거실. 경훈은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쓰러져 있는 여자의 몸뚱아리. 그리고 바로 그 곁에 또 하나의 육중한 고깃덩어리가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다. 예리하게 날이 선 길다란 칼로 방금 목을 딴 돼지의 그것처럼 검붉은 색의 아직 죽지 않은 피가 두 개의 몸뚱아리를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휘감고 있다. 어디선가 쿨럭쿨럭하는 괴상한 소리가 났다. 경훈은 나무로 된 마룻바닥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살육의 잔해를 피해 소리의 원천에 다가갔다. 쓰러진 여자는 언젠가 경훈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봄손님,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소리를 내는 건 남자였다. 난도질이 된, 그래서 얼굴의 형체를 거의 알아보기 힘든, 그 아래 목 부분. 소리는 거기서 나고 있었다. 마지막 피를 토해내는 것인지 칼로 찔린 듯 움푹 패인 굵은 목의 아랫부분에서 피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솟구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육중한 몸이 심하게 요동을 쳐댔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그래서 금새 손을 뻗어 경훈의 발목이라도 잡을 것처럼.

살육의 잔해는 거실 뿐 아니라 안방에도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신음소리가 난 것이다. 경훈의 결코 길지 않은 머리털이 쭈뼛하고 섰다. 경훈은 그와 동시에 무심코 시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초에 일어난 희대의 엽기살인사건의 범인은 애당초 범인으로 지목됐던 김경훈이 아닌 것으로 본지 취재 결과 드러나 엄청난 파문이 예상된다.

이 사건을 맡은 경찰은 부모를 칼로 난자해 살해한 사건의 범인으로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아들 김경훈을 체포, 구속했으나 본지의 끈질긴 취재 결과 사건의 범인은 김숙영인 것으로 드러났다.

김숙영은 살해당한 부부의 딸이자 이번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수감중인 김경훈의 누이. 본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김숙영은 부모를 칼로 난자해 살해하고 바로 집을 나갔으며 직후 집에 들어왔던 김경훈은 사건의 범인이 자신의 누이 김숙영 임을 알고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현장을 조작, 마치 자신이 범인인 것처럼 꾸몄던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 이후 김경훈은 충격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 경찰도 조사과정에서 아무런 얘기를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본지는 끈질긴 노력 끝에 김경훈의 사건 정황을 얘기하는 모든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별첨 자술서 참조)

주목할만한 것은 이번 사건의 원인. 김경훈이 본지에 밝힌 바에 따르면 살해당한 김기춘(父)은 살인을 저지른 김숙영과 그의 동생 김경훈의 의붓아버지. 김미자는 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전북 고창군 김내면 용산에서 김경훈과 김숙영을 낳은 김미자는 남편이 죽자 어린 아이들을 시어머니에게 맡겨둔 채 집을 나와 서울에서 생활을 해오다 김씨를 만나 재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훈과 김숙영이 서울에 올라온 건 약 9년 여전. 하지만 직후부터 김숙영과 김경훈은 의붓아버지 김기춘의 심한 폭행에 시달렸으며 특히 김숙영은 그 기간내내 수백회에 걸쳐 성폭행을 당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인사건은 바로 그런 상황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본지가 취재한 사건의 전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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