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전라남도 장흥 산골짝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기형씨는 요즘 한창 조개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중이다. 조개 전문가일 뿐만 아니라 사람 전문가이기도 하다. 사람의 무엇이 사람을 기쁘게 하는지, 사람의 슬픔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지를 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운영하는 바지락 처리장에서 한 번이라도 일을 해본 사람은 또 가고 싶어 하고, 그가 판매하는 바지락이나 동죽을 구매해본 사람은 대부분 단골이 되니, 그보다 명확한 증거도 없는 셈이다.

만일 지구상에 조개가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수만 년 전의 일을 상상으로 채우기 어렵기는 하지만, 교과서 같은 데 등장하는 그 많은 조개무지가 증명해 주듯이, 인간 생존의 역사는 곧 조개의 역사이기도 하다. 조개는 살아 있으되 죽은 것과도 같아서, 이제 막 걸음마를 익힌 꼬맹이라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물고기는 그물이 없으면 잡기가 어렵고, 새는 잡으려 하면 날아가 버리고, 토끼나 멧돼지 같은 녀석들은 껑충 뛰어 달아나서 깊이 숨어버리지만, 조개는 날지도 않고 깊이 숨지도 않고, 잡으려 하면 그냥 잡혀주고 만다.

 

▲ 전화기를 들고 살아야 하는 이기형 씨

 

게다가 조개는 번식력도 매우 왕성해서 씨가 마를 날이 없다. 사람들이 자꾸 잡아먹으니까 종의 단절을 우려한 조개들이 스스로 그렇게 알을 마치 쏟아내듯이 방출하는 것인지도 모르긴 하지만, 산란기가 되면 모래알보다 많은 새끼조개를 마구 쏟아내 놓는데 갓 태어난 새끼조개들은 생명이라기보다 무슨 먼지 알갱이 같아서 사람의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들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물결에 휩쓸려 다니며 양분을 섭취하다가 어느 정도 중량감이 확보되면 몸에 닿는 아무것에나 달라붙어 여기가 내 집, 하거나 흙속으로 자신의 몸을 밀고 들어가서 정착 생활을 시작한다. 정착이 완료되면 거대한 해일이나 폭풍이 거주지를 파괴해서 날려버리지 않는 한 스스로는 거의 이동을 하지 않는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게도 간단하게, 그렇게도 재미있게 구할 수 있는 단백질도 없는 셈이니, 조개는 어쩌면 사람의 생존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해봄직 하다.

채집 단계를 벗어나서 모든 것이 분업화된 현대의 사람들은 물론 아무나 조개를 잡지는 않는다. 조개만 잡아서 먹고사는 그 방면의 전문가 그룹이 있고, 잡아온 조개를 해감하고 선별해서 납품하는 일만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까서 젓갈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굽거나 찌거나 삶거나 혹은 끓여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로 업을 삼는 사람들이 또 있다. 이기형씨는 그 중에서 두 번째 과정, 즉 잡아온 조개의 상태를 점검하고 해감해서 선별하는 전문가 그룹 중에 한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일 치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 무엇 있으며, 함부로 아무렇게나 막 해도 괜찮은 일은 또 무엇 있을까마는, 죽은 조개 한 마리를 골라내는 사람들의 손길은 조심스럽게 민첩해서 바늘 끝 하나 들어갈 틈이 없을 것만 같고, 그 눈빛은 사물의 표면을 뚫고 들어가는 레이전 광선 같으며, 그 표정은 진지함이 넘치다 못해 엄숙하기조차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몸은 긴장감으로 굳어진다.

 

 

죽은 조개가 뿜어내는 악취를 한 번이라도 경험한 사람은 아마 상상만으로도 으, 소리가 절로 나서 밥맛이 뚝 떨어질 것이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맑은 물을 순식간에 흙탕으로 만들어 버리듯이, 죽은 조개 한 마리는 수백 명의 즐거운 식사를 망쳐놓기도 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는 뜰채 같은 것으로 손쉽게 잡아낼 수라도 있다지만, 수천 아니 수만 마리의 산 조개 속에 섞여 있는 죽은 조개 한 마리는 보물찾기 놀이에서의 보물찾기보다 골라내기가 어렵다.

죽은 조개가 그냥 죽은 것이기만 하다면야 뭐 그리 큰 문제랄 것도 없다. 조개는 생명이 끊어지면 두 쪽으로 갈라져서 자신의 죽음을 만천하에 알리기도 하지만, 어떤 녀석은 죽었으면서도 마치 안 죽은 것처럼 내부에 펄을 가득 머금은 채로 딱 붙어 있기도 한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기 때문에 육안으로는 식별이 잘 안 된다.

만져본다고 해서 금방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딱 집어내서 비교해 보면 색깔이 약간 달라 보이긴 하지만 수천, 수만 마리와 섞여 있을 때는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아 보이기 마련이다. 게다가 바지락은 그 문양과 색깔의 농도가 마치 사람의 지문처럼 슬쩍 보면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같은 게 하나도 없다. 때문에 죽은 녀석도 살아 있는 다른 조개들과 동급으로 취급되기 십상이다. 천 마리의 바지락 중에 단 하나만 죽은 것이 있어도 그 맛은 바지락 본연의 맛과는 전혀 다른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통째로 버려야 한다.

오래 전에 죽었으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안에 펄을 가득 채운 채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녀석을 공탕이라고 하는데 단순하게 그냥 죽어 있는 녀석을 골라내기보다 열 배는 어렵다. 한 알의 공탕을 골라내기 위해서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의 병사처럼 두 눈을 부릅떠야 하고, 긴장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손가락의 유연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려 활용해야 한다. 한 사람도 아니고 두 사람, 세 사람, 심지어는 네 사람이 붙어서 한 알의 조개를 반복적으로 밀어보고, 당겨보고, 굴려보고, 손톱으로 툭툭 쳐보기도 한다.

바닥에 쏟아놓고 굴리면 살아 있는 조개는 가볍게 명랑한 소리를 내지만, 오래 전에 죽어서 안에 흙을 가득 품고 있는 녀석은 무겁게 우울한 소리를 낸다. 소리는 귀에 들리기도 하고 손가락에 감지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완벽하게 다 골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꺼번에 쏟아놓고 굴려본 다음에는 일일이 하나씩 손톱으로 두드려본다. 손톱으로 탁탁 치면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가 맑지 못하고 둔탁하면 그것이 안에 흙을 가득 품고 있는 공탕이란 녀석이다.

이런 식의 선별 작업은 품이 많이 들어서 비경제적인 노동 같지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그 어떤 기계도 살아 있는 것과 똑같은 형태로 죽어 있는 조개를 골라내지는 못한다. 최첨단 촬영기기 같은 것으로 찍어서 판독하는 방식으로 하자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렇게 하자면 비용이 많이 들어서 조개 가격을 대폭 올려야만 한다. 답은 역시 사람이다. 인건비가 높다고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이 세상 모든 일은 어차피 사람이 살자고 하는 일이다.

 

▲ 가장 싱싱한 상태의 바지락
▲ 선별이 끝난 동죽

 

사람이 살자고 하는 일에서 사람이 아닌 돈을 최우선으로 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란 것은 돈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불안한 미래임이 분명해 보인다. 그들은 사람을 이용하고자 하는 자신들의 전략을 감추기 위해 사람의 편리를 강조한다. 그들은 사람의 깊은 내면에 대해서는 제대로 잘 알지 못하고,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는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오직 하나 어떻게 하면 인건비 등의 비용을 최대치로 낮출 수 있는가 하는 것일 뿐이다.

물론 이 세상 모든 기업인들이 다 그렇게 사람을 이용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와는 영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내가 기뻐할 일이면 다른 사람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내가 슬퍼할 일이라면 다른 사람도 슬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인간 사회가 야수의 사회로 추락하지 않고 그나마 균형을 유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의 성 이씨와 부인의 성 조씨를 따서 이름을 붙인 이조수산 대표 이기형씨는 사람이란 무엇이고 왜 사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제대로 잘 아는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이기형씨 자신이 고생을 많이 한 까닭에 고생하는 사람을 보면 “그냥 매급시 짠해진다”고, 그래서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하고자 하는 것일 뿐이라고 하지만 청춘을 고생스럽게 보낸 사람이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좋은 일은 몸이 고생스럽다. 이런 말은 제법 근사해서 아무나 입에 올리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그렇게 살아가지는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서 풀뿌리를 캐먹던 시절을 즐겁게 회고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난이 징글징글했다고 이를 가는 사람도 있듯이, 청춘의 고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으로 내면에 가득 적대감을 품고 마치 세상을 상대로 전쟁을 하듯이, 복수를 하듯이 온갖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사람도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다.

 

▲ 이조수산 공동대표

 

인생사 모든 것은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다. 자신의 고생을 공부라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다. 이런 아름다운 생각이 산골 소년 이기형을 조개 전문가로 거듭나게 해주었다. 소년 시절의 그는 이 세상에 바다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그런데도 그는 바다에서 나오는 조개 전문가가 되었다. 인생이란 이렇게도 아이러니하다고 말할까? 아니면 역설의 변증법이라고?

전라남도 장흥은 남쪽에 바다를 면하고 있지만 북쪽은 완전 첩첩산중이다. 바다는 없어도 하늘은 있었다. 하늘이란 것은 다른 아무 노력 없이 고개만 들면 그냥 보이는 미지의 세계였다. 버스도 안 다니는 산골 마을에서 뭔가 모자람이 느껴질 때 소년 이기형은 하늘을 보았다. 하늘에는 가끔 비행기가 떠 있곤 했다. 비행기, 떠 있는가 하면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비행기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렇게 그의 꿈은 형성되어 갔다.

가보지 않은 길이 가본 길보다 더 가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고, 해보지 않은 일이 해본 일보다 천 배 아니 만 배는 멋져 보이기 마련인 게 사람 마음 아니던가. 비행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산골 소년 이기형은 막연하게 그냥 비행기를 장래의 꿈으로 설정하긴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비행기에 관련된 학교를 다니자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충고나 해주는 게 고작이었고, 비행기와 관련된 직업을 갖는다는 것 또한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어렵다는 얘기나 해주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 길을 찾았다. 군대에 갈 나이가 됐을 때, 군인은 총만 쏘는 게 아니라 비행기를 조종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는 공군 부사관 모집에 참여해서 마침내 하사 계급장을 달기는 했지만, 그런데 이상했다. 부사관 계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다 계급 체계는 어찌나 엄격한지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비행기고 뭐고 그냥 직업군인의 길이나 걷자, 하고 눌러앉을 수도 있었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자신의 삶이 아닐 것 같았다. 먹고사는 문제는 일단 해결이 되겠지만 인간의 삶에서 먹고사는 문제가 전부인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맨땅에 헤딩을 하듯이 중사 계급으로 공군을 나온 그가 맨 처음 한 일은 배달이었다. 대기업에서 생산한 물건을 트럭에 싣고 달리는 그 일은 그야말로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물건을 싣고 어디로 가라 하면 그곳으로 가고, 이제 그만 가라, 하면 그것이 곧 해고 통보였다. 비참하기 짝이 없는 직업이었지만, 그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바로 그 배달에서 나왔으니, 인생이란 역시 아이러니의 연속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배달 인생 마지막 품목이 조개였다. 조개 배달을 하면서 그는 매우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것은 절대적인 어떤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 사람이 먹는 것을 자신의 이익과 직접 연결해서 생각하면 엉뚱한 욕망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 사람이 먹는 것을 다룰 때는 내 자신이 먹는다는 오직 그 한 가지 마음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는 마침내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

이조수산은 그렇게 세상 속으로 뛰어들었다. 욕심 많게 이것저것 마구 취급하지도 않고 바지락과 동죽 딱 두 가지로 특화시켰다. 그것만으로도 사실은 엄격한 정신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공산품은 대체로 규격화돼 있어서 변수가 많지 않고 개인의 창의력 같은 것이 끼어들 여지도 거의 없지만, 생물은 같은 이름인데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한 시간 전과 후가 달라서 개인의 창의적인 발상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생물 중에서도 조개류는 특히 그러하다.

이조수산의 거래처는 매우 다양하다. 일반 가정은 물론이고 식당, 학교, 회사, 협동조합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가 한두 명이 아니고 몇십 명 단위도 아닌, 수백 아니 수천 명의 단골손님들이 때로는 어쩌다 한 번씩 띄엄띄엄, 때로는 거의 매일 주문 문자를 보내오거나 조개의 상태에 관한 질문 전화를 걸어온다.

“우리는 중간 업자를 거치지 않고 그냥 소비자와 직접 거래를 해요. 중간 사업자를 거치면 판로 개척에 애를 먹을 필요가 없이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만 위험부담이 많거든요. 무엇보다 중간 사업자들은 생물을 직접 다루는 게 아니라 중개만 하다 보니 생물을 생물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물건으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물건과 돈이 결합되면 아무래도 진실성이 떨어지기 마련이란 말이거든요.”

한 마디로 말해서 판매를 목적으로 하더라도 그것을 내가 먹을 목적으로 하는 것처럼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정직한 마음으로 정직하게 사람을 대하면 사람은 그 사람을 알아보고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밀려드는 주문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내일도 바쁠 것이고, 모래도 역시 바쁠 것이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