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죽은 줄 알았던 괴물들이 때가 되어 다시 일어났다. 이 괴물들의 특징은 죽은 척하기를 잘한다는 점이다. 또한 이 괴물들은 자기가 괴물인 줄을 모르거나 모르는 척하기를 좋아하기도 한다. 잔꾀가 아주 능한 이 괴물들은 잘잘 흐르는 시냇물을 거대한 강이라 우기고, 잣대 하나 들고 볼펜으로 그어놓은 선 하나를 절대불변의 진리라고 우기며, 사람은 모름지기 넓은 세상을 좁게 살아야 한다고 박박 우겨대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기들도 그렇게 넓은 세상을 좁게 사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자기들은 특권층이고 지도층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못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괴물이다. 괴물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고, 비열하며, 파렴치한 괴물들이다. 이 비열한 괴물들은 이른바 민심이란 것을 먹고 산다. 한 번 배를 채우면 넉넉잡아 사 년여 정도는 포만하게 잘 살아간다. 크고 작은 실수가 있어서 정체가 살짝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납작 엎드려서 죽은 척만 잘하면 민심은 이내 괴물을 잊어버린다는 경험법칙을 그들은 숭상한다.

 

▲ 황소개구리와 들쥐의 먹잇감들

 

우리 집 마당 한쪽 옛 우물터에 연못을 파고 물고기를 넣었는데 가끔 황소개구리가 나타나서 패악을 부리곤 한다. 이놈들은 소리도 흉측하거니와 겨울에도 잠잘 줄을 모르고 살금살금 기어 다니며 겨울 한철 휴식 중인 물고기들을 잡아먹는다. 토종 개구리와는 달리 멀리서 사람 기척만 나도 재빨리 훌쩍 달아나는 이 괴물 같은 녀석들의 특징은 음습한 느낌의 구멍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어부들이 통발어로에서 사용하는 통발을 연못 속에 넣어두면 그 안으로 쏙 들어가는데 일단 들어가면 나올 길을 찾을 수 없어서 어쩔 줄을 몰라 한다.

통발을 들어 올리면 기가 막히게도 녀석은 나는 방금 전에 죽었어요, 하는 투로 납작 엎드려서 눈도 한 번 깜짝을 안 하는데 그렇게도 음흉해 보일 수가 없다. 그래도 생명이라 모질게 짓밟아 버리지는 못하고 몇 대 때리면 녀석은 정말로 죽어버린 것처럼 혀까지 쏙 빼문다. 혀까지 빼물고 납작 엎드려 있는 황소개구리가 정말로 죽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정말로 죽은 걸로 착각하고 물러났다가 잠시 뒤에 다시 가서 보면 녀석은 이미 달아나 버렸기 십상이다.

“맞아, 죽일 때 확실하게 잘 죽여야 해.”

박근혜 덕택에 빨리 도래한 선거 정국을 틈타 부활하기 시작한 괴물들의 준동을 보면서 우리는 ‘살해’를 모의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잘 죽이려면 제대로 잘 죽여야 할 상대를 제대로 잘 선별해야 한다. 잘 선별하자면 의심은 필수 항목이다. 누가 어디에 무슨 발톱을 숨기고 있는지, 향기도 괜찮고 색깔도 그럴싸한 꽃을 들고 흔들어대는 그 꽃 속에 혹시 취생몽사하는 마취제 같은 것은 숨겨 있지 않은지 살펴보자면 우선 의심부터 해야만 한다.

굳이 대선 정국이 아니라도, 사실 그녀와 나는 의심하기를 좋아한다. 의심이란 좋은 취미라고 보기 어렵긴 하지만, 거짓말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나마 우리들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의심을 하고 또 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쪽으로도 생각하고, 저쪽으로도 생각해본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수많은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분석해보는 노력 또한 게을리 하지 않는다. 가능한 한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가능한 한 합리적인 답을 도출해내기 위해서, 의심과 분석을 반복하고 있노라면 우리 자신도 놀랄만한 가설이 불쑥 뛰쳐나오기도 한다.

“책이 너무 안 팔려서 책 팔아먹으려고 그랬나?”

“아니면 다른 후보와의 밀약?”

이른바 송민순 쪽지 폭로라는 것이 나왔을 때도 우리는 그렇게 의심부터 했다. 때가 때이니 만치 순수한 의도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송민순 폭로의 핵심 내용은 북한인권법을 유엔에서 표결 처리하는데 한국의 입장이 난감하다고, 북한 측의 입장은 어떠한지 한국의 정부 당국자가 물어봤다는 것이다. 그러한 질문을 실제로 누군가가 했는지 안 했는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도 없건만, 아전인수를 좋아하는 괴물들은 그러한 질문이 적과의 내통이라는 둥, 한국의 정책결정을 북한에 물어보고 했으니 북한이 상전이라는 둥 입에 거품을 물고 날뛰기 시작했다.

 

▲ 황소개구리가 좋아하는 통발구멍

 

국제간 협약에 선전포고라는 것이 있다.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한다면 사전에 통보라도 해서 당하는 쪽의 억울함이나 분노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덜어주자는 것이 선전포고 제도의 기본취지이다. 짐승 같은 짓을 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할 때 사전 통보도 없이 기습을 했다 해서 많은 비난을 받았듯이, 남의 것을 빼앗고자 하는 인간이 그나마 인간으로서의 체모를 유지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전포고 제도이기도 하다.

인권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 당국자들에게 있어 유엔에서의 인권법 제정은 아마 선전포고에 준하는 폭발력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언어와 민족이 남한과 같고, 생활 풍습 또한 다름보다 같음이 많은 북한 당국자들에게 남측이 그들의 입장을 물어보는 것은 형식상으로나 예의상으로나 마땅하다. 북한 정권이 용서할 수 없고 용서해서도 안 되는 적이라고 해도, 그들의 자존심까지 박박 긁어댈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북한은 적지이기에 앞서 한국의 영토이고, 지금은 비록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지만 언제인가는 통일을 해서 형제의 우의를 다져야 하는 당위적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들이다. 남으로는 제주도 남단 일본 접경 마라도에 이르고, 북으로는 러시아 접경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나진, 선봉과 중국 접경 신의주, 초산, 만포, 해산에 이른다. 아니 뭐 굳이 헌법 조항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반도는 반도일 뿐 일본 같은 섬나라는 분명 아니다. 북한에서 국경 하나만 넘어서면 중국 대륙이요 유럽 대륙이다. 부산이나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혹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몇날며칠을 아니 몇 달 몇 년을 달려야 하는 여행을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나설 수 있는 대륙에 속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벌써 칠십여 년째나 스스로를 가둬놓고 있다. 비행기나 선박이 아니면 해외여행을 꿈도 꿔볼 수 없는 감옥 같은 섬나라를 만들어놓고 벌써 칠십여 년째나 아웅다웅 도토리 키 재기 놀음이나 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가. 이런 상태가 앞으로도 몇십 년간 지속된다면 다음 세대들은 아마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원래 이렇게 섬처럼 작게 갇힌 나라였다는 것으로 인식할 것이고, 북한은 같은 민족이 아니라 태생부터 원수였다는 식의 상식 아닌 상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이런 거대하게 심각한 상황을 고려하면서 생각해볼 때 송민순이 폭로한 쪽지란 것은 참으로 하찮기 짝이 없는 것일 뿐이다.

문제는 그가 왜 이 시점에서 그런 하찮은 쪽지를 흔들어대고 나섰는가이다. 나와 나의 그녀가 농담 삼아 지껄인 책 팔아먹기 위해서? 설마 그렇게까지 질 낮은 전략은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기억한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다고 울부짖듯이 외치던 김무성이 비 오는 날 부산에서 흔들어대었던 출처 불명의 엉터리 문서 쪼가리를 기억한다. 송민순의 쪽지는 크게 보자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잘한 것을 좋아하는 괴물들의 눈으로 보자면 김무성이 흔들어댄 엉터리 쪽지 이상의 폭발력을 지닌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송민순은 지금 혹시 제2의 김무성이 되고자 하는 것인가?

 

▲ 통발에 걸려든 황소개구리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안철수의 발언도 위험수위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추진한 햇볕정책이 잘한 것만은 아니라는 식의 이른바 보수층을 겨냥한 아부성 발언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하는 등의 괴물들이 즐겨 사용하는 언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도 혹시 괴물 중에 한 사람으로 편입되기를 소망하는 것인가. 아니 어쩌면 벌써 전에 이미 괴물 그룹에 속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선거 정국에서 주적 논란의 주인공으로 등극한 유승민은 헌법 조문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을 환기시켜 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사람이다. 그래서 내 옆의 그녀는 유승민 대통령 시대를 앙망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 사람의 입에서 주적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왔을 때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역시 괴물의 속성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잠시 잊고 있었다. 사드 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외친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유승민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면서도 모르는 듯이 살짝 눈을 감고 있었다. 사실 유승민은 안보 전문가를 자임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쳐들어오는 적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만 열중하고 있을 뿐 그 적을 어떻게 하면 내 친구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는 고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통일시대에 관한 언급 또한 그의 발언목록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과거의 어느 한 지점에 발을 담근 채 허우적거리고 만 있을 뿐 미래와는 연을 맺지 않으려고 하는 형국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해석의 여지는 무한하다. 미래는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지만 아직 경험하지 않은 세계라서 해석의 한계가 있다. 해석이 무한한 과거를 임의로 해석해서 그것이 진실이요 진리인 양 물고 늘어지는 괴물들의 의도가 무엇인가 정도는 우리 집 개도 안다. 문제는 그 전제가 크게 아주 크게 잘못 됐다는 점이다. 통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전제가 서지 않고는 과거를 그렇게도 편협하게 해석해서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라는 둥 멋대로 떠들어댈 수는 없다. 도대체가 그렇게도 입만 열면 적, 적, 해서 어떻게 통일 시대의 문고리를 잡아당길 수 있단 말인가.

 

▲ 들쥐도 연못을 노린다.

 

일본의 총리라는 사람은 한국에 전쟁이 터지면 피난민을 선별해서 받겠다는 등의 기막힌 발언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중이다. 중국의 시진핑을 만난 미국의 트럼프는 한국이 과거 한때 중국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고 자신의 무식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이제 머잖은 어느 날 한국은 일본의 일부였다는 발언도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올 것이다. 아니 어쩌면 과거 삼십육 년 동안 일본 국민들이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축적해둔 한국 내의 재산을 한국 정부가 적산이란 이름 아래 강탈해 갔으니 이제 그것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본 정계에서 제기될지도 모른다.

이렇게도 모두가 자기 나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이 냉엄한 국제사회 속에서 우리나라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자들은 그지없이 한가롭기만 하다. 대통령 후보들 간의 토론이라면 최소한 트럼프와 시진핑이 만나서 무슨 비밀 얘기를 나눴는지, 비밀 이야기 중에 한국과 관련된 내용은 무엇인지, 추론 가능한 내용들을 뽑아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그 방법론을 놓고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게 온당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북한 주적 어쩌고 그런 개 풀 뜯어먹는 소리나 지껄이는 괴물들에게 발목이 잡힌 채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물론 괴물들도 괴물 나름의 생존방식은 있을 것이다. 그 방식이란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저 유명한 물귀신 작전이다. 나만 썩었냐, 너도 썩었잖아, 하는 것. 국민들로 하여금 그렇게 믿게 하는 것. 그래서 살아있는 한 배 고프지 않게, 폼 나게 살다가 죽는 것.

괴물들의 이런 비열한 전략에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이도 당해 왔다. 민족의 과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미래까지도 손아귀에 쥐려 하는 괴물들의 이런 비열한 전략에 우리는 이번에도 또 당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 생명이 가련하긴 하지만 이번에는 죽여야 한다.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거의 매일 밤마다 호롱불 앞에서 이를 잡으셨다. 손톱으로 톡, 톡, 그렇게 밤새도록 죽여도 죽여야 할 이는 남아 있었다. 서캐는 아예 손톱으로 죽일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호롱불에 대고 마치 미싱을 하듯이 쓰윽 내리곤 했다. 그러면 서캐 타죽는 소리가 트트트트, 하고 들렸다. 어린 우리는 서캐가 타서 죽는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알고 잠이 들곤 했다. 바로 그것, 이를 죽이듯이, 서캐를 죽이듯이 촛불에 태워 죽인다면 생명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괴물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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