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자연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남자 박시도 이야기-세번째

 

섬진강변 어디에 메기탕집이 있는데 그 맛이 엄청 좋다더라, 하는 얘기를 박시도씨가 어디서 몇 번 들었던 모양이다. 들리는 얘기라서 그저 듣기만 했을 뿐 직접 먹어보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하고 있었다기보다 그런 계기가 없었다고나 할까. 우리가 찾아가던 날 밥 먹을 시간이 됐을 때 아 그거다, 하고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 유명하다는 메기탕 집을 돌고 돌아서 찾아갔지만, 메기탕은 구경도 못하고 주차장에서 사람 구경만 실컷 하고 돌아 나와야만 했다.

 

▲ 이 모든 나뭇가지들이 차 나무를 보호하는 거예요.

 

“야아 이건 뭐 외식 공장이네, 공장이여 잉?”

돌아 나오면서 우리는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조금은 감탄스런 목소리로, 그리고 조금은 허탈한 패배자의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하늘을 보고 있을 때 경적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자동차를 세워둔 채로는 잠시라도 머뭇거려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메기탕 집이라기보다는 중고 자동차 시장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자동차가 주차돼 있는데도 자동차는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본래의 건물은 일반 주택 정도로 작은데 그보다 몇 배는 커다란 비닐하우스 두 채가 지어져 있고, 그 앞에 손님들은 줄지어 서서 하품을 하거나 장보기를 하고 있었다.

매운탕 집을 중심으로 반경 이백여 미터 이내는 논이건 밭이건 태반이 주차장화 돼버렸고, 인근 마을의 할머니들은 텃밭에서 뽑아낸 각종 남새들을 머리에 이고 나와서 팔고 있었다. 남새뿐만 아니라 골이 깊은 산에서 나오는 각종 약재도 있고, 손으로 만든 작은 바구니 같은 것들도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머잖아 이런저런 생선이며 떡이며 공산품들도 등장하게 될 것 같았다.

“오호, 지금 막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중이네? 이게 바로 시장의 초기 형태인 것이여 잉?”

소가 뒷걸음질 치다가 쥐를 잡는다고, 얼떨결에 또 한 가지 큰 공부를 했다. 인생살이란 이렇게도 설렘이 있으면 실망이 있고, 실망 뒤에는 다른 차원의 설렘이 대기하고 있기 마련인가보다. 어쨌든 뜻밖의 상황에서 하는 뜻밖의 대단한 공부는 사람을 신명나게 한다. 우리는 비록 메기탕은 구경도 못했고, 손에 쥐어진 것 또한 아무것도 없지만, 대단히 큰 뭔가를 얻었다는 기분으로 씩씩하게 뼈다귀 해장국집으로 달려가서 값도 싼 오천 원짜리 뼈다귀 해장국 한 그릇씩을 비우고 섬진강변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 이끼를 따라서 잘잘 흐르는 물을 받는 박시도 씨.

물고기들이 톡톡 튀는 느낌의 비단결 같은 섬진강 상류를 끼고 달리다가 옆으로 살짝 빠지면 풍경부터가 확 달라 보이는 비탈길이 나온다. 등에 진 나뭇짐이 버거워서 아리랑 노래라도 흥얼거리지 않을 수 없는 나무꾼의 팍팍한 발걸음이 얼밋설밋 떠오르기도 하는, 그야말로 아리랑 고개 같은 비탈길을 따라서 오르고 또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코끝에 와 닿는 느낌이 내 가슴을 술렁거리게 할 정도로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달라진 이 느낌은 무엇인가. 무엇이 있어 나를 이렇게 설레게 하는가. 보이는 것은 나무와 바위와 돌과 칡넝쿨 같은 것들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저기 어디에서는 이끼와 돌들 사이로 물이 흐르고, 그 물을 마시러 나온 토끼와 노루와 고라니가 있을 것이며, 그 토끼와 노루와 고라니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이 있을 것이고, 그 배설물을 먹고 탐스럽게 자란 도라지며 더덕이며 하수오 같은 것들이 각자 저마다의 독특한 향기를 방출하고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합작해서 만들어내는 거대한 설렘의 원천, 설렘의 공장 속으로 우리는 바야흐로 들어와 있어버린 것이다.

어쩔 것인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뿜고 들이마시기를 몇 번이나 하고 있노라니 문득 한숨이 나온다. 우리는 어쩌다가 이렇게도 맑은 공기, 자연 그대로의 공기를 선망하게 되었는가. 생수 수입은 오래 전부터 진행돼 왔고, 머잖아 공기도 수입해야 할지 모른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회자되는 지금, 무엇을 깊이 생각하고 어쩔 것도 없이 지구의 미래는 어떤 색깔의 무슨 형태일까 하는 의문이 슬쩍 일어난다.

하지만 너무 무겁다. 맙소사. 내 코가 석 자인 주제꼴에 지구의 미래라니. 다시 또 한 번, <오래된 미래>가 첩첩산중에 겹쳐 보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눈길을 돌리기로 하자. 다람쥐가 보이면 다람쥐에 집중하고, 옹달샘이 보이면 옹달샘에 충성하고, 멧돼지의 흔적이 보이거든 잡지도 못할 멧돼지 꽁무니라도 따라가 보며, 소탈하게 ‘미친놈’처럼 그냥 웃어나 보자.

 

▲ 멧돼지 방어용 울타리 옆이 길이다.

 

드디어 마을이 보인다. 돌담이 보이고, 집집마다 쌓아놓은 장작더미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이름이 강경이란다. 강경 마을. 산을 내려가면 강이 있다고는 하지만 강은 보이지도 않는데 물강(江)자를 쓰고, 게다가 볕경(景)자를 붙여 짝을 지었다. 강도 없고 볕도 적은 산골에서 이런 작명은 아이러니일까? 아니다. 첩첩산중에서 강과 볕은 아마도 선망이요 소망이었으리라.

그렇다. 야생차 전문가 박시도씨가 독거하는 강경 마을에는 태양과 직접 대면할 만한 땅이 거의 없다. 산이 있는 곳에 땅이 없을까마는, 산과 산이 서로의 손을 잡고 강강수월래라도 하는 형국인 첩첩산중 그 마을에서는 땅이라 할 만한 땅을 찾아보기 어렵다.

산은 가파르고, 그나마도 바위와 돌과 자갈들이 태반이어서, 바위와 돌들 사이로 간신히 뿌리를 내리며 자라온 오래된 나무들은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날이면 자신의 덩치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그냥 푹, 뿌리를 온통 드러내며 쓰러져 버리기도 한다. 주민들은 쓰러진 고목을 토막내서 끌어다가 뽀개서 장작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장작은 일 년을 쓰고도 남아서 매년 쌓여간다. 그 색깔이 마치 세월을 고스란히 끌어안은 골동품을 연상케 한다.

평지가 거의 없다 보니 마을은 도시의 달동네처럼 윗집이 아랫집을 내려다볼 수 있는 형태로 구성되었다. 깊은 산골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단식 논마저도 발견하기 어려운 이 마을의 특징 하나를 꼽으라면 도대체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 왔을까, 하는 의문이 매우 강렬하게 든다는 점이다.

 

▲ 바다의 그물 같은 울타리

 

전라도 말로 ‘뙈갱이밭’이라고 하는, 우스갯소리로 ‘미친년 엉덩짝’만한 밭뙈기가 여기에 조금, 저기에 조금 하는 식으로 산재해 있기는 하다. 트랙터가 아니면 농사 못 짓는다는 소리가 거침없이 나오는 현대를 살면서도 강경 마을 사람들은 호미나 괭이로 깔짝깔짝 하는 방식의 농사를 짓는다. 더러 경운기 정도가 있긴 하지만 그 기계 한 번 운용하자면 강파른 비탈을 오르내려야 하니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비용도 많이 들어서, 차라리 그냥 지게로 지고 가서 손으로 깔짝깔짝하는 게 나을 정도이다.

그렇게 수고롭게 농사를 지었다 해서 그것이 모두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도 아니다. 멧돼지며 고라니 같은 녀석들이 자신의 식량창고 쯤으로 여기고 무시로 드나드니 이게 참 난감하다. 그러자, 나눠먹자, 하고 그대로 두면 계획 없이 살아가는 동물들의 특성상 식량창고 자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게 뻔하고, 방어를 하자니 농사에 드는 비용이 곱절로 들어간다. 굵은 쇠파이프를 사다가 울타리를 두르고, 바다에서나 쓰는 질긴 그물을 사다가 빙 둘러 쳐놓으면 그나마 반타작은 하는데 그것들을 구입하느라 드는 현금이 애들 과자 값 정도가 아니고, 그것을 설치하는 데 받쳐야 하는 고생스러움이 또한 보통이 아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인구도 적었는데 이런 깊은 산골에 집을 짓고 살겠다는 생각을 어째서 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갖고 이것저것 뒤적이다 보면 민주, 공정, 자유 등등 관념적인 단어들이 왜 소중한가 하는 발견을 새삼 하게 된다.

 

▲ 골동품을 연상케 하는 장작더미

 

깊은 산골에 들어선 마을은 대개 그 역사가, 그 시작이 눈물겹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 해서 역적으로 몰렸던 이의 후손들은 살아남기 위해 산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포악한 주인의 허벅지를 물어뜯은 ‘종년’이나 ‘종놈’들 또한 깊은 산속이 아니면 살아날 길이 없었고, 가렴주구밖에 모르는 지방 수령에 대항하다 실패한 평민들 역시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했고, 터무니없는 소작료에 고리대금까지 뜯어가는 지주의 탐욕을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보자, 하고 길을 나선 소작인들 또한 산속밖에는 길이 없었고, 심지어는 초기의 불교나 천주교처럼 믿음이 새롭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며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람들 역시 산속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마을을 일구었다.

가슴에 슬픔을 가득 안고 정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수준 높은 위로와 마음공부가 필요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종교가 사람을 따라서 들어온 것인지, 사람이 종교 옆에 새로운 터를 잡은 것인지 그 선후관계를 따지기는 어렵지만, 깊은 산속에 자리한 마을 인근에는 종교 시설이 많았다. 이른바 민간신앙이라는 무속은 물론이고, 도교도 더러 있었겠지만 그 특성상 뚜렷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반면 불교는 마치 내가 여기 있었더니라, 하고 증언이라도 하듯이 많은 흔적을 남겨 놓았다.

사찰이 있는 곳에는 거의 예외 없이 머위나물 밭이 있다. 조릿대를 포함한 대나무도 있고, 감나무와 배롱나무 그리고 더러 차나무도 있다. 깊은 산속에서 대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차나무를 발견했다면 그 주변 어딘가에 반드시 절터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 다람쥐가 퍼뜨린 어린 차나무

 

박시도씨가 발견한 강경 마을 앞 불암산 자락 아래 차나무 군락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깨진 기왓장들이 도처에 흩어져 있는가 하면, 궁궐 같은 데서나 볼 수 있음직한 아름드리 주춧돌과 석축이 칡넝쿨 속에 묻혀 있고, 연륜을 상상해본다는 게 부질없다 싶을 정도로 오래된 감나무 고목이 군데군데 서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규모가 꽤 큰 사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차 나무 군락지를 박시도씨는 보물이라 주장하며 드나든다.

“아 이것이 보물이제, 보물이라는 것이 달리 또 뭐가 있겠냐고요.”

그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차나무는 실제로 보물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일종의 기호식품이면서도 요즘의 커피와는 영 다른 차원의 기호식품이었던 차와 관련된 이야기는 많기도 하다. 멀리로는 신농씨에서 달마대사를 거쳐 당송 시대의 시인 묵객들에 이르기까지, 가까이로는 정약용과 초의, 추사에 이르기까지, 차와 인간의 관계는 어쩌면 어패류와 인간의 관계만큼이나 인간 삶의 절실한 부분과 연결돼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에 큰 수고로움 없이 물고기와 조개를 잡아 단백질을 섭취했던 것처럼, 의료기술이 일천하던 시절에 차는 사람의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는 추론을 부안 현감 이운해가 썼다는 <부풍향차보>를 통해서도 대강은 해볼 수 있다.

한 잎의 차 속에 들어 있는 성분은 매우 다양해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서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맛도 향도 달라지고 뱃속의 반응 상태 또한 달라지는 차는 분명 약품이라 이를 만도 하다. 아니 약품이라기보다는 약물이라 함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약물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요새말로 치자면 소독약의 일종이라고나 할까. 아니 그보다는 차라리 백신이라고나 할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다루는 방식에 따라 성분이 달라지는 차는 오묘하다는 것.

수백 년, 아니 어쩌면 천 년도 훨씬 넘었을지 모르는 불암산 자락 아래 차나무 군락지의 차나무는 매년 그 개체수가 늘어나는 중이다. 차 씨는 알이 굵어서 새들도 물어 나르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해서 차나무가 이렇게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것일까. 혼자 중얼거리며 의아해 하고 있는데 박시도씨가 한 마디 거든다.

“다람쥐에요.”

아, 그렇구나. 다람쥐. 알밤이나 도토리만 물어다가 숨겨놓지는 않을 것이다. 차 씨는 맛이 매우 써서 먹기는 어렵지만 일단 물어다가 여기저기 도처에 숨겼을 것이고, 그것이 봄이 되어 비가 내리면 촉촉하게 젖어서 싹을 올리고 뿌리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면 커다란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워서 그 어린 것들을 보호하며 키워낸다. 뿐만이 아니다. 겨울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을 커다란 나뭇가지들이 받아서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차나무를 보호하기도 한다.

생태계의 어울림과 그 변화 양상이 한눈에 잡히는 듯이 보이는 이곳에서 박시도씨는 이끼를 타고 잘잘 흐르는 그야말로 생수를 받는다. 이 생수로 차를 우려 마시면, 금방 신선이라도 돼버릴 것만 같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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