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이호준의 ‘사진 이야기’-7회

ⓒ위클리서울/ 이호준

[위클리서울=이호준]  어쩔 수 없는 생업이 아닌 이상, 의미 있는 삶을 위한 일에는 즐거움이 깃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이 사라지면 그 일을 계속하기 힘들고 지속할 동기도 찾기 어렵다.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도 마찬가지다. 즐거움은 욕망이나 만족감을 느끼는 쾌락과 그것을 추구하는 제반 활동이다. 쾌락은 육체적인 것을 포함하지만, 여기서는 일상에서 느끼는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는 정신적인 측면을 가리킨다. 즐거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관여함으로써 얻어지는 적극적인 활동이다.

아마추어에게 사진은 즐거움이어야 한다. 취미로 하는 사진이야말로 즐거움이 생명이다. 주변에서 사진에 전념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열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의아한 일이다. 그렇게 열심이던 사진을 힘들어 하고 카메라를 멀리하는지 말이다. 그 사람들은 한때 사진을 인생의 동반자라고 말하곤 했다. 이유는 딴 데 있지 않다. 바로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잃는 순간 쾌락도 만족도 의미도 없어진다. 계속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취미 사진에서 즐거움은 기본 토대다. 좋은 사진을 찍는 건 그 다음 문제다. 전업 작가라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아마추어에게 사진은 즐거움의 대상이어야 한다. 즐거움을 잃지 않도록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 노력해야 한다.

그럼 사진에서 추구하는 즐거움이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들인가? 재밌게 사진 찍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재미란 원래 익숙해지거나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다.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중요도의 무겁고 가벼움은 없지만, 다음 네 가지 정도의 즐거움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 첫째, 텍스트의 즐거움이다. 여기서 텍스트는 책이나 문자가 아니라 사진을 말한다. 사진 자체에 매력을 느껴야 한다. 내가 찍은 사진뿐만 아니라 남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흥미와 호기심, 그리고 바라봄의 쾌락을 만끽할 줄 알아야 한다. 인화지 또는 모니터에 떠오른 사진 이미지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행위의 즐거움이다. 사진은 찍는 이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야 완성되는 촬영의 결과물이다.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둘러메고, 좋은 피사체를 찾아다니는 활동이 즐거워야 한다. 실내 촬영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를 세팅하고 미장센, 즉 인물이나 조명, 장식, 가구 등을 배치하는 행위가 즐거워야 한다.

셋째, 소통의 즐거움이다. 사진은 예술이면서 커뮤니케이션 매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독한 예술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사진을 골라 보여주는 게 즐거워야 한다. 과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세상과 담쌓고 할 수 있는 취미생활이 아니다. 상황에 맞게 교류하고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즐거움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결국 사진은 혼자 하는 작업이고 놀이다. 누구랑 같이해도 좋지만 혼자 하는 게 즐거워야 한다. 홀로 출사지를 정하고, 집에 돌아와 사진을 정리하고 편집하는 재미가 있어야 사진생활을 오래할 수 있다. 이상의 네 가지 즐거움은 단계적으로 습득되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가급적 네 가지 모두를 얻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그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쳐 사진의 즐거움이 사그라질지 모른다.

그런데 모든 감정이 그러하듯 즐거움이라는 감정도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즐거움을 받아들이기 위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즐거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설픈 지식을 가진 자의 손아귀에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취미는 언제나 변함없이, 참을 수 없을 만큼 굉장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간결하지만 가슴에 와 닿는 말이다!

요즘 고화질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전 국민이 사진가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이 됐다. 그만큼 사진은 보편적인 취미생활이자 문턱이 낮은 예술 활동이다. 사진을 가르치는 아카데미도 많고 전시회도 어렵지 않게 개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사진에 입문한지 얼마 안됐는데 ‘작가’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작가란 일종의 직업이다. 즉,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사진과 관련된 것으로 채우는 사람을 일컫는다. 따라서 본업은 따로 둔 채, 전시회 한두 번 참여했다고 작가네 하는 것은 어색하다. 허세다. 작가가 됐으니 전문가를 자처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면 어느덧 아마추어의 순수한 열정은 사라지고 배움의 자세는 흐트러진다. 사진 외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좇기도 한다. 그에 비례해 사진의 즐거움은 갈수록 옅어진다. 전업 작가가 아니다 보니, 사진에 대한 열정과 몰입도는 갈수록 약해진다. 결국 다른 즐거움을 찾아나서는 경우도 생긴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건 사진을 좋은 취미로 오랫동안 할 생각이라면 아마추어의 즐거움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전업 작가로 나설 것이 아니라면, 어설픈 애호가로 남는 게 사진생활을 즐겁게 지속하는 비결이다. 늘 아마추어의 심정으로 배움을 멈추지 않고, 사진의 매력을 탐구하자. 실력이 더디 늘어도, 인생 샷을 자주 찍지 못해도 답답해 할 필요 없다. 아마추어의 축복은 시간과 여유다. 천천히 길게 가자. 즐기면서 말이다.

 

이호준(facebook.com/ighwns)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항공 여행사진 공모전에서 2회 수상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3회를 개최했다. 월간지 <SW중심사회>에 사진에세이를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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