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금실 지음/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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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이주리 기자]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한계 상황에 내몰린 지구를 위해 변론에 나섰다. 첫 여성 법무부 장관, 첫 여성 로펌 대표, 첫 여성 서울 시장 후보 등을 역임하면서 법조인이자 정치인으로 엘리트 코스를 개척해온 강금실 전 장관이 이제 기후위기와 생태붕괴에 맞서 지속가능한 지구 공동체로의 전환을 제언한다. 2008년 정치권에서 법조계로 돌아온 뒤 가톨릭대학교 생명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문명과 생태 공부를 시작한 그는 2015년부터 지식 공동체 ‘지구와사람’을 창립해 생태대 문명 패러다임 연구와 전파에 힘쓰고 있다. 이 책은 강금실 지구와사람 대표가 지난 10년간 공부하고 사유한 생태적 세계관과 지구 거버넌스의 핵심을 압축적으로 제시한 문명 전환의 지침서다.

“세계 평균 기온은 산업화(1850~1900년) 대비 1.09도 높아졌으며, 1.5도 도달 시점은 2021~2040년으로 예상된다.” 2021년 8월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IPCC)가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은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IPCC가 불과 3년 만에 1.5도 도달 시점을 10년이나 앞당겨 예측한 것이다. 2021년 1.5도에 도달한다는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에 따르면 당장 내일 재앙이 닥쳐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지구 곳곳이 이미 폭염, 대형 산불, 대홍수 등 이상 기후가 몰고 온 재난 상황으로 속수무책 곪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지질학적으로 신생대 제4기의 마지막 시기인 홀로세에 속한다. 인간의 과도한 영향력으로 홀로세를 이미 벗어났다고 보는 학자들은 지금 시대를 ‘인류세’라고 바꿔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과 화석연료의 결합을 기반으로 거침없이 달려오던 산업문명이 전염병, 기후위기 등 복합적 부작용을 맞닥뜨리면서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심대한 국면에 접어든 것이다.

‘지질시대의 깊은 시간’이 우리의 생존이 가능한 삶의 시간적 좌표라면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는 공간적 한계다(54쪽). 한 번 선을 넘어가면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환경 변화를 유도할 만한 ‘잠재적 경계선’인 행성 경계는 기후변화, 오존층 파괴, 생물 다양성 손실률 등 아홉 가지로 정리된다. 행성 경계를 정의하고 정량화하려는 새로운 시도는 인류에게 지구와 공생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과학적 한계 기준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시대 가장 중요한 과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환경과 기후문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탄소중립, ESG경영 등 국가와 기업 단위로 변화를 위한 모색이 활발하다. 하지만 인류 생존과 문명의 위협에 맞서는 종(species)의 각성이 담긴 행동은 ‘미래 세대’에게서 더욱 절실하게 발견할 수 있다. 2018년 8월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를 위한 수업 거부’ 1인 시위에서 촉발된 학생과 청년들의 다양한 운동이 각국 정부, 기업, 민간 영역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자연의 법칙과 조화를 이루고 유지되는 삶’이자 ‘현세대와 미래 세대 사이의 조화’이며, 생명과 생태 시스템에 대한 통합적이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비로소 가능하다.

인간은 홀로세의 주어진 한계 내에서 ‘자연스러운’ 삶을 살았지만, 지금은 인간이 지질시대를 변형시키고 단축시킬 우려가 매우 큰 ‘부자연스러운’ 삶에 진입했다. 이 삶을 앞으로 어떻게 펼쳐나가느냐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 있다(51쪽). 이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하나의 커다란 질문이 똬리를 틀 것이다. “우리는 지구와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저자는 현재가 홀로세냐 인류세냐를 다투는 것보다 이미 변해버린 세계를 신생대 다음 지질시대인 ‘생태대(Ecozoic Era)’로 인식하고, 그에 따른 문명적 대응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깊은 생태학도 지구법학도 모든 존재는 상호 관계적이며 상호 증진적인 ‘생태대 문명’의 맥락에서 펼쳐진 새로운 삶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자연을 파괴하던 지배자에서 자연의 권리를 지키는 대변자로 진화해야 한다. 이제 새로운 윤리, 새로운 법,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엄청난 다양성 속에서 친밀하게 연결된 생명의 공동체, 모든 생명이 존중받고 공존하는 지구 공동체는 지구법학이라는 새로운 법 체계 안에서 새롭게 열릴 것이다. 2050년 탄소제로를 목표로 하는 기후위기 시대, 패러다임 전환은 숙명이다. 하늘에도 나무에도 강에도 권리가 있다. 침묵하는 지구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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