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왜 모든 히피들은 비슷하게 말하고 웃나

인도의 남부 휴양지, 함피와 고아를 여행할 때에는 히피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그 날씨 좋은 들판과 해변에는 늘 서구권에서 온 젊은이들이 헐벗은 몸으로 어딘가에 걸쳐 누워 있었다. 때로는 그들의 몸을 감싸고 있는 누더기 같은 담요나 판초. 다 해진 천가방에 담긴 이름 모를 현악기. 몸에는 타투가 가득하고 눈빛은 아주 약간만 그윽하다. 길게 잘라 대충 묶은 머리에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요가와 삶의 의미를 잇대어 보는 그들. 세상 편하게 날씨를 즐기다가도 대화가 붙으면 삶에 대한 진지한 철학을 눈동자를 굴리며 이야기할 수 있는 그 사람들. 삶은 언제나 축복이고, 인간에게는 자유와 사랑뿐. 허식을 버리고 삶을 사랑하자. 형형색색의 그림들. 서로에게 대마초를 권하며 키스하는 연인들. 이 사람들이 바로 히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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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그저 그들을 히피라고 생각했을 따름이다. 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된 소위 히피 문화는 당시의 히피들이 너무 자라 노인이 되었을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새로 태어나는 젊은이들이 그 문화를 계속 받아내는지 여전히 흘러오고 있다. 히피는 특정한 풍조를 따르는 특정한 역사의 ‘사람들’이기도 한 동시에, 삶을 살아가는 어떤 방식이 되었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히피가 정확히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가 히피 같다고 느낀 사람들 중 누구도 자기 자신을 히피라고 주장하는 이는 없었다. 다만 여러 곳에서 내가 마주친 그들은 늘 비슷하게 굴었고 비슷하게 말했고 얕은 울림이 있는 철학을 공유했다. 그들은 나에게 삶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주는 것을 즐겼다. 삶이 왜 아름다운가? 왜냐하면 그저 아름답기 때문에. 이 아름다움의 동어반복 속에서 그들은 삶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보라고 말한다. 가슴을 열고 느껴봐. 이 거대한 아름다움을. 네 마음속의 내적인 평화를. 나는 간혹 그들의 말에 감동을 받아 귀를 열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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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든 히피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말하고 웃나.

어쩌면 세상에는 히피의 신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신이 쪼개져 숱한 사람들에게 깃든 것이 아닌가 싶도록 그들은 비슷했다. 터키에서도, 인도에서도,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비슷했다. 사실 이것은 우문이다. 비슷한 삶의 철학과 문화를 따라 살기에 한데 묶여 히피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니, 말과 행동이 비슷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때로 그들을 만나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각기각색의 개성을 뽐내며, 삶의 주인공은 나 자신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이 너무 닮아 있어서. 솔직히 나는 그들을 좋아하는 편에 가깝다. 좋은 말들 아닌가. 겉치레 없는 자유로움이 좋았고, 짐 질 것 없이 단출하게 다니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다.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던 나도 그들과 마음을 같이 했다. 그래도, 그래도, 내가 히피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히피의 신에게 잡아 먹힐 것 같아 무서워서.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철학을 진지하게 설파하고 쑥스럽게 웃고 싶지는 않아서. 그저 어디를 가도 가끔은 그들이 있어 만나면 반가웠을 뿐. 그중에 함피와 고아는 히피 문화를 좇는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모여드는 곳 중 하나여서 특히 더 많이 마주쳤다. 문신 없는 몸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던 고아의 해변과, 돌덩어리 사이 그늘에 누워있던 함피의 젊은 애들. 이상하게 그 애들을 생각할 때면 추억과 생각에 잠긴다. 꼭 누군가의 삶 한 켠에 끼워진 삽화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 같다. 나이 든 히피를 볼 때면 한층 더 멋져보였긴 해도 히피는 내게 젊음의 어떤 단면 같다. 물론 젊음이 꼭 나이에 국한되지 않는 점에서도 더더욱 그렇고. 오늘은 히피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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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름 예수

그는 자기 자신을 예수라고 소개했다. 정신없는 밤이라 그런지 긴가민가했다. 본명이 정말 예수인 걸까? 이미지로 접하던 예수의 외양과 비슷했다. 얼굴이 아래위로 긴 편이었고 약간 곱슬한 머리가 딱 예수만큼 길었다. 와인이 아니라 맥주에 취한 그는 맥락 없이 껄껄 웃었고 대화의 길은 빠르게 이어지다 휙휙 꺾여서 종잡을 수 없었다. 묵는 사람도 많이 없었던 게스트하우스의 마당에는 꽤 큼직한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몇 명이 둘러 앉아 이야기했고 예수는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하며 삶을 즐기고 있었다. 예수는 말하자면 내가 만난 가장 정신없는 히피였다. 아마 예수라고 한 것도 일종의 농담이었을 텐데 그의 본명이 무엇인지는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이름을 제대로 물어본 적도 없는데 아마도 그는 이름이 뭐가 중요하냐고 답하고 껄껄 웃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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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중부의 괴레메라는 마을이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열기구가 떠있는 장면으로 유명한 바로 그곳. 카파도키아, 라는 지역명으로도 여행자들에게 꽤 유명한 곳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갑바도기아’역시 이곳이다. 많은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으레 그렇듯이 그곳에도 값싸게 묵을 수 있는 도미토리 숙소들이 많았다. 이런 숙소들에도 분명한 유형이 있는데, 어떤 숙소는 좀 더 비즈니스적이고 깔끔한 반면 어떤 숙소는 말 그대로 히피 소굴 같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격의 없고 나쁘게 말하면 성의 없이 어질러져 있는 분위기. 숙소값을 안 내고 도망친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것 같은, 좋은 게 좋은 거지 분위기. 대충 누워있다가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 먹고 불 앞에서 노래 부르다 자는 분위기. 그래도 나는 이 소굴 스타일 숙소의 자유로움을 좋아하는 편이다.

예수가 정확히 뭐하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숙소의 주인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주인 같아 보이는 살집 있는 남자는 따로 있었다. 아마 예수는 그 숙소 주인과 친구인 것 같았다. 솔직히 예수가 터키인이 맞기는 했는지도 모르겠다. 공동 주인일 수도 있고, 친구가 개업한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여행 왔다가 그냥 눌러 앉은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예수는 그 넓직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제멋대로 살고 있었다. 진지함과 장난스러움 사이를 자기 마음의 속도대로 넘나들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기웃거렸다. 거대한 덩치와 쨍한 눈빛이 어쩐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같이 놀기에 즐거운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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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내게 또 그 히피 철학을 자주 설파하려고 했다. 그가 나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볼 때면 기이하고 좋고 무서웠다. 그의 말에는 논리와 깊이가 없는 대신 어떤 열의만 있어서, 그 열의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튀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함이 감돌았다. 그런 동시에 모종의 순수함도 간직하고 있는 이상한 히피 강론이었다. 한참 이야기를 한 후 술을 들이켜고 구석에서 넝마를 뒤집어쓰고 자는 예수를 보며, 사실 그냥 백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다. 철학이 있는 백수. 어쩌면 그것이 히피일지도. 그의 행동과 말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뚜렷하기도 하고 안일하기도 했다.

한번은 예수가 게스트하우스에 묵고 있던 중국인 여자애 후이에게 무례하게 굴었는지, 아침에 후이가 예수에게 한참 뭐라고 화를 내더니 짐을 챙겨 나가는 것을 보았다. 분명 예수의 잘못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말은 종종 수위를 넘나 들었고, 무엇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편하게 농담한 건데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이야? 분명히 이랬을 것이다. 나중에 후이를 터키땅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물어봤는데, 대충 맥락이 맞았다. 예수가 헛소리하는 게 조금씩 쌓여서 후이의 마음이 터져버린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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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평화를 그렇게 말해대더니. 자유는 마음대로 말해서 상처를 줄 자유이고, 평화는 자신만의 내적 평화인 건지. 예수를 꼬아서 보면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반쯤은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좋게만 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예수가 곧 히피라고 말하기도 조금은 어렵다. 진짜 히피 가짜 히피가 있겠냐만은, 적어도 그가 성숙한 히피는 아니었음은 확실하다. 히피 문화의 겉모습만 얕게 취해 행동하는 느낌도 강했다. 모르겠다. 예수를 비롯해 가끔 무례한 행동을 하곤 했던 히피 스타일의 젊은이들을 만난 이후로 히피 유형의 사람들에게 느끼는 나의 이중적인 감정은 더욱 커져 갔다. 그들의 자유로운 강단이 좋은 동시에, 지밖에 모른다는 생각. 아무튼 예수가 히피든 히피가 아니든, 깊든 얕든, 자유롭든 무례하든, 나의 인상에는 그의 얼굴이 깊게 새겨있다.

후이가 떠난 이후로 하루가 지났던가. 그날 아침에는 비가 많이 왔다. 모닥불을 피우던 마당과 나무 판자로 대충 만들어진 의자들 위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 앉아 차를 마셨다. 기암괴석들 위로 먹구름이 가득 찼다. 그 폭우 속에서 예수는 완전히 지친 기색으로 판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비를 맞고 있었다. 온몸이 흠뻑 다 젖을 때까지 아주 가만히. 명상하는 자세도 아니었고, 눈에 띄기 위한 기행 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기력이 다한 사람이 축 늘어져 있듯이 등받이에 기대어 비를 맞았다. 빗줄기 속에서는 그의 얼굴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표정이 없는 것처럼 보이던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고 있다가, 나는 그의 마음속에 있을 어떤 거대한 슬픔의 기미를 읽었다. 너무 커서 한 번에 쏟아낼 수 없는 슬픔. 그저 조금씩 졸졸 흘러나오는 슬픔 같은 것. 물론 이것은 그저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래도, 예수가 잠깐 드러냈던 그 슬픔의 얼굴은 다른 히피들을 만날 때마다 종종 떠오르곤 했다. 예수처럼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아볼 때도. 효진과 함피의 돌덩어리 그늘에 앉아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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