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처음 그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그랬다. 거의 모든 것이 자동화된 디지털 시대에 마당을 뒤뚱뒤뚱 아날로그 식으로 걸어 다니는 실제의 닭을 보게 됐으니 이게 무슨 행복이냐 싶었다. 암탉 특유의 알 젓는 소리를 내며 두 발을 열심히 놀리는 모양새는 너무나도 서정이 풍부해서 내 마음이 그냥 스펀지처럼 푸근푸근해져 갔다. 지나가던 개가 닭을 발견하고 왁, 소리를 내며 달려들 자세라도 취할라치면 펄쩍 뛰는 암탉의 신속대응에서 느껴지는 스릴과 서스펜스 그리고 조마조마, 아슬아슬함이 또한 내 가슴을 오지게도 펄떡펄떡 뛰게 함과 동시에 쫄깃하게 해주었다.

 

닭장을 탈출한 암탉
닭장을 탈출한 암탉

어느 순간 나는 밥공기에 쌀을 퍼 담아 들고 구구구, 구구구, 한껏 다정한 소리를 내며 한 걸음, 두 걸음, 조심스럽게 다가서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만 했다. 그날의 그 일은 몹시도 허무하고 우스운 장면이어서 잊을 수가 없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길 잃은 어린 고양이에게 우유도 주고 생선도 주고 해서 내 가족을 만들었듯이, 닭도 그렇게 하면 나를 적이 아닌 동지로 인정해 주려니 하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믿음이 깨진 것은 순간이었다. 닭과 나의 거리가 십여 미터 정도로까지 좁혀졌을 때 나는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도 요란하고 시끄럽고 화급함이 느껴지는 비명 소리를 듣기는 처음이었다. 내가 무슨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도 덮치려 하다가 들킨 것만 같았다. 말로는 다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창피함 그리고 누가 듣고 달려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후딱 얼른 방구석으로 숨어들고 말았다.

“우와 세상에 뭐냐 이거 뭐야 응?”

방구석으로 숨어든 나는 펄떡펄떡 뛰는 가슴을 달래고자 심호흡을 몇 번이나 했다. 암탉은 그 뒤로도 십여 분 이상을 꽥꽥 소리를 질러대며 여기저기 사방천지로 갈팡질팡 뛰어다니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천장을 쳐다보며 흐뭇한 기분으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하긴 저도 처음 본 내가 낯설고 무섭고 황망해서 가슴이 벌렁벌렁 뛰었겠지. 그러니까 두 번, 세 번,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유혹을 하다 보면 두려움은 사라지고 낯섦은 친근감으로 전환되지 않겠어?

아마 한 오륙 년쯤 됐을 것이다. 누가 어디서 누구한테 무슨 얘기를 듣고 그런 유행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 수는 없었다. 어느 날 문득 수탉 소리가 들린다는 것을 인지하고 알아보니 아랫집에도, 옆집에도, 뒷마을에도, 앞마을에도 이미 유정란 바람이 불어 있었다. 그야말로 시도 때도 없이 수탉의 꼬끼요 소리와 암탉의 꼬꼬댁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거였다. 암탉의 꼬꼬댁 소리야 뭐 자기가 알을 낳았다는 기쁨을 자랑하는 소리려니 하는 해석이라도 가능했지만, 이구동성으로 질러대는 수탉의 꼬끼요 소리는 도대체 이해가 안 되었다.

일단 한 번 수탉 소리가 들렸다 하면 그에 호응을 하듯이 이쪽에서도 들리고 저쪽에서도 들린다. 왼쪽에서 들리면 오른쪽에서 들리고, 앞에서도 들리고 뒤에서도 들리는 것이어서, 내가 완전히 사면초가 형국으로 포위돼 있다는 느낌이었다. 수탉이 울면 곧 날이 샌다는 말도 있지만, 오늘날의 수탉은 시간을 가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한밤중에도 내키면 소리를 질러대고, 초저녁에도 질러댄다.

 

오래 전의 수탉
오래 전의 수탉

그야 어쨌든 면소재지 골목 시장 상인들은 신바람이 났다. 농협에서 운영하는 대형마트 때문에 언제 문을 닫을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져 있던 작은 가게들이 너도나도 닭 사료를 산처럼 쌓아놓고 있으니, 역시 죽으란 법은 없구나 싶기도 했다.

닭이라면 나도 경험이 제법 있었다. 해마다 봄이면 어머니가 닭들과의 전쟁을 치르곤 했던 까마득한 유소년기의 수많은 일화는 일단 접어둔다 하더라도, 이십여 년 전 내가 이 집으로 이사를 들었을 때 붓글씨 가르치는 일로 먹고사는 선배가 집들이 선물이라고 뜬금없는 수탉 한 마리를 가져왔다.

“이거 완전 오리지널 토종닭이란 말이거든?”

선배는 이상하게도 물음표를 붙이는 방식의 설명을 했다. 깃털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등 제법 볼만한 수탉이다 싶기는 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순수 토종닭이란 말인가? 하는 의문이 살짝 들기는 했지만 선배가 미리서 붙여놓은 물음표가 바로 그 문제 때문이려니 여기고 입을 다물었다.

수탉은 나를 완전한 자신의 친구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면서도 그런대로 잘 따라주기는 했다. 손으로 만지려 하면 바람처럼 홱 빠져 나가면서도 모이를 들고 구구구, 소리를 내면 네, 하고 답이라도 하는 듯이 달려와 주었고, 내가 마당에서 뭔가 일을 하고 있을라치면 잘 보이는 곳에서 얼쩡거리는 등 나름 애를 쓴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기쁨의 기간은 화무십일홍처럼 열흘이 채 안 돼서 끝나고 말았다. 목욕탕에서 머리에 비누 거품을 잔뜩 내고 있는 중인데 무슨 요괴라도 들이닥친 것 같은 소리가 마당에서 들려왔다. 그대로 그냥 뛰쳐나가 보니 낯선 개 한 마리가 거품을 질질 흘리며 지붕을 쳐다보고 있고, 지붕에서는 닭이 꼬꼬꼬 소리를 긴박하게 질러대고 있었다.

지붕으로 날아 올라간 닭은 아마도 여기서는 못 살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모양이었다. 내가 마당에서 보고 있는데도 녀석은 지붕 뒤쪽의 대나무 꼭대기로 훌쩍 이동하는가 싶더니 또 다른 대나무 꼭대기로 옮겨 다니기를 몇 번이나 하다가는 사라져 버렸다. 무협영화라도 보는 것 같은 그 황당한 사태 앞에서 나는 어안이 벙벙하기만 했다. 그러면서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말이 매우 실감돼서 기쁘기도 하고, 엄청난 보물이라도 갖게 된 것처럼 뿌듯하게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그런 기분은 곧 불안과 걱정으로 치달아갔다.

해가 지고 어둠이 쓱쓱 밀려오는데도 닭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침에 나가 보면 돌아와 있으려니 했지만 그런 예상도 틀렸다. 대나무 꼭대기에서 다른 대나무로 건너뛰기를 거듭하다가 결국은 산으로 들어가 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산속을 뒤져보기로 했지만, 사람을 백여 명 이상 동원한다면 모를까 나 혼자서는 어림도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아야 했다.

이제 끝났다. 나는 그 예쁜 수탉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리고 난 뒤의 상실감이 아마 제법 컸던 모양이었다. 그 상실감이 나로 하여금 병아리를 발견하게 했을 것이다. 시장에 갔다가 병아리를 상자에 가득 넣어놓고 쪼그려 앉아 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무려 열 마리나 사버렸다.

 

철망 안에서 알을  낳는 오리
철망 안에서 알을 낳는 오리

그런데 이건 또 뭔가. 귀여운 병아리가 못 생긴 중병아리로 자라났을 무렵부터 한 마리, 두 마리,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싹 다 없어져 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마술인가. 어디서 무슨 악귀라도 나타났는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날이면 날마다 마당으로 대숲으로 단서를 찾아 헤매던 어느 하루 마침내 그 악귀를 찾아냈다.

아니다. 내가 자력으로 찾아냈다기보다 그들이 나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내 옆으로 휙 지나갔다. 둘이었다. 하나가 지나갈 때는 바람 같아서 미처 의식도 못 했지만, 두 번째 지나갈 때는 내 눈에 똑똑히 보였다. 앞에 녀석은 벌써 감나무를 타 오르고 있었고, 뒤에 녀석도 역시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데 몸통이 길면서도 홀쭉하고, 꼬리는 몸통보다도 더 길었다.

내가 족제비를 가까이서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쫓고 쫓기는 방식의 달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녀석들의 정체는 분명 족제비였다. 사람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쫓고 쫓기는 놀이에 빠져 있는 녀석들을 멀뚱한 심사로 보고 있노라니 문득 ‘사랑에 빠지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저 유명한 잠언이 떠올랐다. 어디선가 나 잡아봐라,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흠흠, 그러니까 족제비 너희들이 지금 내가 기르던 병아리를 다 잡아먹고 그 에너지로 새끼를 낳겠다고 응? 연애질에 흠뻑 취해서 사람이고 뭐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다 이거지? 그렇다면 좋다. 내가 너희들 무서워서 뭘 못 할 것 같으냐?

그날부터 향후 오년 여에 걸쳐 진행되는 족제비와 나의 전쟁, 이라기보다 나의 일방적인 바보짓이 시작되었다. 새끼 오리를 열 마리나 사 왔고, 토끼도 검은색 하얀색 그렇게 두 쌍이나 사다 놓고 진지구축에 심혈을 기울였다. 흙을 파서 기둥을 세우고, 철물점에서 철망을 사다가 몇날며칠이나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방어막을 친다고 쳤지만, 내 솜씨는 너무 엉성하고 족제비들의 기술은 너무 뛰어나다는 것을 곧 인정해야만 했다.

토끼가 새끼를 낳고 오리가 알을 낳기 시작할 즈음부터 한 마리, 두 마리 토끼가 사라지고 오리도 사라져 갔다. 토끼는 위험을 감지하면 자기가 낳은 새끼를 자기 입으로 물어뜯어서 죽인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를 실감하면서도 나는 뭐랄까, 아마도 일종의 오기 같은 것이 작동하고 있었을 것이다.

토끼는 포기하더라도 오리까지 포기할 수 없다는 심사로 새끼 오리를 다시 사 오는 한편 철망 보수작업을 끝도 없이 되풀이했지만, 족제비의 공격은 집요하고도 정교하고 섬세하며 야만스럽기까지 해서 나는 그만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오리 머리가 싹둑 잘려 있는 것을 발견한 날이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 군인들이 담력 훈련을 한다고 중국 사람들을 무작위로 잡아다가 장검으로 목을 치는 끔찍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일이 우리 집 마당에서 벌어진 것이었다.

오리는 아마 한밤중에 족제비의 습격을 받고 허둥거리다가 철망 사이에 머리를 넣었던 모양이었다. 족제비는 오리의 몸통을 물고 잡아당겼지만 안 빠지니까 그만 목 부위를 잘라서 몸통만 가져간 것 같았다. 그런데 족제비는 자신의 몸보다 최소한 세 배는 덩치가 큰 오리를 어떻게 무슨 기술로 물어간 것일까?

 

새끼오리
새끼오리

그때의 그런 의문을 나는 아직도 풀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새로운 문제 하나가 등장했다. 그때는 그렇게도 많던 족제비가 지금은 한 마리도 없다는 건가? 닭장을 뛰쳐나온 남의 집 암탉이 우리 집 마당에서 내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한 지도 한 달이 다 돼 가건만 왜 이렇게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는 거지?

그랬다. 나는 내심 족제비가 나타나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왜? 얄미우니까. 암탉의 행실은 정말이지 보면 볼수록 얄밉기만 했다. 마당에서 열심히 활동성 좋게 풀잎 같은 것을 뜯어먹고 있다가도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기척만 있으면 꼬꼬꼬꼬, 하고 무슨 비상벨이라도 울리는 것 같은 긴박한 소리를 내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내가 마당으로 내려서면 어림도 없지, 하는 투로 꼬꼬댁 꼬꼬댁, 소리를 마치 총탄이라도 발사하는 것처럼 연타로 질러대며 날개를 활짝 펴서 날아가는 듯이 달려가는 듯이 대나무 숲속으로 달아나 버린다.

게다가 암탉이 즐겁게 쪼아 먹는 풀잎들은 그냥 풀잎이 아니었다. 내가 된장국을 끓여먹고자 나름 신경을 써서 보호해온 작물들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쇠갈퀴처럼 억센 발톱으로 마늘밭을 끝도 없이 파헤치는 암탉의 저 못된 행실은 대체 뭐란 말인가. 물론 마늘밭에는 농약을 한 방울도 안 친 까닭에 닭들이 좋아하는 지렁이가 많기는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계산을 해보면 내가 키운 내 재산이었다. 내 재산을 그렇게 멋대로 마음껏 잡아먹고 뜯어먹으면서도 나만 보면 오랑캐를 대하듯이 달아난다? 에라 이 녀석아 족제비한테나 잡아 먹혀라.

그렇게 내심 저주의 악담을 퍼부어대고 있었지만, 한 달이 넘도록 족제비는 나타나지 않았다. 족제비 대신 눈이 펄펄 내렸다. 새하얀 눈이 마당을 완전히 덮어서 풀잎 하나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암탉은 어디서 추위를 피하고 있나,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음날도 보이지 않았다.

그 녀석이 기어코 족제비의 밥이 되었는가? 아니면 뛰쳐나온 닭장으로 그만 돌아가고 말았는가?

그러고 보니 매우 수상하다. 그 암탉은 그동안 왜 계란 하나도 우리 집 마당에 낳아놓지를 않았던 거지? 혹시, 혹시 닭장을 탈출한 게 아니라 우리 집 마당으로 출퇴근을 해 왔던 것인가? 그것을 알아차린 그 집 주인이 닭장을 완전히 봉쇄해서 더 이상은 탈출도 출퇴근도 불가능하게 된 것인가?

나는 이제 그것이 궁금하다. 풀리지 않을 줄 알면서도 궁금해 하고 있는 이런 내가 나는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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