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2014년 3월 1일 아침 사상 최고라 할 만한 서릿발이 우리 동네를 강타했다. 내 생애 그렇게도 단단하고 날카롭게 표창처럼 느껴지는 서릿발은 처음이었다. 만지면 금방 손가락을 잘라버릴 듯이 날카로운 서릿발이 하얗게 마치 비밀병기처럼 대나무 숲을 뒤덮고 있는 것이 흡사 무슨 얼굴 없는 침략군이라도 몰려와 있는 것만 같았다.

알고 보니 우리 동네만 그날 그렇게 서릿발의 침공을 받은 게 아니었다. 대한민국 전역에서 추워죽겠다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넷에서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한참 보고 있자니 신음소리 같은 탄성 하나가 내 입에서 흘렀다.

 

꽃 같지 않은 꽃 미선
꽃 같지 않은 꽃 미선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올해 삼일절 기념행사는 무슨 뜻인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외계인의 언어로 기록되겠구나. 육십여 년 전에 무너뜨린 이승만 동상을 영웅의 모습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킨다고?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유쾌하지 않고, 유쾌하지 못해서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찬바람이 쌩쌩 부는 마당을 아무렇게나 오락가락 헤매기를 얼마나 했는지 모르겠다. 찬란한 태양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서 목덜미가 따뜻하다는 느낌을 어렴풋이 받고 있을 때. 그때 뭐가 어떻게 잘못 됐는지 마당 뒤쪽의 석축에 내 몸이 거칠게 부딪히면서 빠삭, 소리도 요란하게 커피 잔이 부서졌다. 그 순간 빈사 상태에 빠졌던 내 정신이 확 깨어나면서 그것을 보았다기보다 발견했다.

그것, 천연기념물이라 해서 어렵게 구해오긴 했지만 한동안 잊고 있었던 녀석이었다. 공식 명칭이 미선나무로, 볼 때마다 애린이 느껴지는 녀석이었다. 미선이라는 그 이름도 애린하고, 꽃이 피면 그 형태가 또한 애린하다. 하긴 그래서 그런 이름을 얻었을 게다.

미선을 나무로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덩굴식물인 것도 아니다. 형태는 나무이되 씩씩하게 훌쩍훌쩍 자라는 나무가 아니다. 십 년 이상 나이를 먹었어도 회초리처럼 가늘고, 자기 몸을 자기 혼자서는 꼿꼿하게 세울 수가 없어서 옆에 다른 작은 나무들과 팔짱을 끼듯이 엉킨 자세로 서 있거나 다른 나무가 없으면 풀잎처럼 축축 늘어져 버린다. 그러면서도 바람이 맹렬하게 차가운 날에 꽃을 피워내는 특이한 녀석이다.

꽃이 뭐 그렇게 눈에 확 띄는 것도 아니다. 색깔이 희미해서 주변 상황이 받쳐주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고, 형태도 얼핏 봐서는 죽은 나뭇가지에 생긴 곰팡이 종류 같아서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겨울이면 무성하게 새파란 잎을 자랑하는 상사화 계열의 알뿌리 식물 위로 가지가 늘어져 있어서 그나마 겨우, 간신히 발견될 따름이다. 그러니까 미선은 자기 자신을 일편단심으로 숨긴다고나 할까, 아니 어쩌면 존재 자체를 주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주장하는 역설의 삶을 이어간다고 해야 옳은지도 모르겠다.

미선은 왜 그렇게도 특이한 방식의 삶을 고수하는 것일까. 언제부터 왜 그렇게 살아온 것일까. 쓸데없는 고민에 빠져들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날도 바로 이것이다, 하는 투로 밤늦게까지 그 문제를 붙잡고 삼일절 행사라든가 이승만 동상 문제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 언제인가 무슨 느닷없는 조명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마당이 환하게 밝아지는가 싶더니 사람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뛰쳐나가 보니 마당 입구에 택시 한 대가 라이트를 켠 채로 서 있고, 그 강렬한 불빛을 배경으로 한 남자가 액션영화 속의 조폭처럼 우뚝 서서 여기가 누구네 집이 맞느냐고 묻는다. 창끝처럼 날카로운 불빛 때문에 공포와 짜증이 잔뜩 나 있던 와중에도 나는 그 조폭 같은 사나이가 내 이름을 불렀다는 것 정도는 의식할 수 있었다.

성남시 중원구 단대동에서 삼십 년 이상을 살았다고 하는 그 남자였다. 삼십 년도 넘게 교류해 온 사람들이 지난 번 대통령 선거 당시 낙선목적의 선거운동을 자기만 빼놓고 비밀리에 해 왔다는 소문을 접한 이후 그동안 들었던 정나미가 한꺼번에 싹 떨어져버렸다고, 그래서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시골 생활을 작심했다고 하는 남자, 작은 컨테이너에 비상용으로 유선전화 한 대만 설치해놓고 있을 뿐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는 살림살이를 살고 있는 그 남자를 세 번째인가, 네 번째 만났을 때 나는 혹시라도 선운사 쪽에 갈 일이 있거든 내 집에도 한 번 방문해 달라면서 주소를 적어놓았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한밤중에 사채업자처럼 찾아올 줄은 정말이지 꿈에서도 몰랐다.

그는 다짜고짜 지금 당장 자기를 서울까지 태워다 달라고 했다. 택시를 대절해서 가고자 하니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그래서 유류비와 통행료 정도면 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나를 한밤중에 찾아왔다는 거였다. 이런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나도 같이 흥분하면 안 되겠다 싶어 일단 그를 진정시킬 방법을 찾기로 했다.

방으로 데려다 앉혀놓고 말을 시켜보니 그 내용이 황당하면서도 참신했다. 시골을 싫어해서 부득이 별거 중인 아내에게 남자 친구가 생길 것 같다고, 아내 자신이 비상용 유선전화로 연락을 해 와서 부랴부랴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 터미널을 경유, 성남시를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에 이상한 내용의 현수막을 보았다는 거였다.

그가 아내와의 별거 2년여 만에 고속버스를 탄 것은 아내가 원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말하길 자기는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아봤지만 아직도 남자를 모르겠다고, 그러니 과거에 정다운 남편이었고 지금도 법률상으로는 남편 신분인 당신이 그 남자를 만나봐 달라고,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이를테면 검증을 좀 해주길 바란다 해서 정신없이 그냥 고속버스를 탔다는 얘기였다.

만나 보니 일단 불쾌감이 별로 안 들더라고 했다. 보나마나 사기꾼한테 걸려들었겠지 하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던 그는 순간적으로 당혹스러웠다. 좋은 남자인지 여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아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술도 조금 마셨다. 말이 조금이지 그런 자리에서의 술 한모금은 금방 불이 붙는 인화물질이기 마련이었다.

 

침략군처럼 닥친 서릿발
침략군처럼 닥친 서릿발 ⓒ위클리서울/ 김수복 기자

그때까지 비교적 차분하게 냉정했던 그의 가슴은 펄떡펄떡 뛰었고, 머릿속에서는 회오리바람이 불었고, 주먹은 저절로 쥐어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하면서 엉덩이는 자꾸만 들썩거려졌고, 무엇보다 아내의 뒤를 쫓아다닌다고 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시간이 갈수록 정면으로 똑바로 응시하기가 어려워져서 자존감이 심하게 무너졌다.

한 마디로 말해서 그는 슬펐고, 부끄러웠고, 화가 나는데도 화풀이를 할 수 없어서 미칠 것만 같았다. 만약에 아내가 봐달라고 한 그 남자가 한눈에 척 봐도 날건달로 여겨졌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평생 고물장사를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을 접해온 그의 눈에 그 남자는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어 보였다. 목소리는 ‘두만강 푸른 물에’ 같은 노래를 부른 옛날가수처럼 듬직하게 낮아서 안정감이 느껴졌고, 가끔 지어 보이는 미소는 ‘네 마음을 내가 다 안다’는 듯이 온화하고 너그럽기만 할 뿐, 사기꾼이라면 미처 다 감추지 못하고 드러내 보이기 마련인 간교함 플러스 비굴함 같은 것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런데 이 여자가 어디서 저런 남자를 만났지?’ 그런 본질적인 의문조차도 잠시뿐이었고, 한껏 의기소침해서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그는 이제 고속버스 막차를 타야 한다는 이유를 내세우기로 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아내를 잠시 옆 자리로 데려가서 소곤거렸다.

좋은 사람 같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애들이 영민하니까 아들과 딸 모두를 불러서 보여주고 의견을 물어라. 요약하자면 그런 내용의 결론 같지도 않은 결론을 아내에게 들려주고, 정말로 고속버스 막차를 놓치면 큰일이라는 듯이 허둥지둥 자리를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서 태양이 아직도 서쪽 하늘에 걸려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거짓말을 아내와 아내의 남자친구가 이미 알아버렸겠구나 싶어서 또 한 번 자존이 뭉개졌다. 그 상태 그대로 어디를 얼마나 걸었는지, 무슨 버스를 어떻게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는지 하나도 기억할 수 없는 채로 그는 그것을 보았다.

<이재명처럼 살지는 말자>

다른 아무 것도 없이, 새하얀 바탕에 시뻘건 글자 열 개로 구성된 그런 현수막 세 장이 가로수와 가로수 사이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처음 그것을 발견했을 때 그는 거의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멀뚱히 보고나 있었지만, 안개 속처럼 흐릿한 의식이 점차 밝아지면서 이재명? 그렇게 살지는 말자고? 하는 의문부호에 뒤통수라도 가격당한 듯이 턱을 덜덜 떨었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는 그 현수막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이재명처럼 살지는 말자’고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고자 했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신호 대기 중이던 버스가 그 현수막을 버리듯이 뒤로 하며 쌩쌩 달리기 시작했고, 그는 벌떡 일어나서 차를 좀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고자 했지만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어쩌나, 어쩌나, 고민만 하다가 그만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고속버스가 원래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고속버스 막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서 있는 택시를 발견하는 순간 내 이름과 얼굴과 주소가 떠올라 와서 이것이다, 하고 달려오게 됐다는 얘기였다. 우리 집 주소가 비교적 간단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마치 손바닥에 적어놓은 것처럼 금방 기억해냈다는 게 나로서는 영 신기하고, 신기해서 그것 참, 그것 참, 하고 있는데 그가 불쑥 두 손을 내밀어서 내 손을 붙잡고 절규라도 하듯이 비통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은 내가 그때, 그 시절에 그런 생각을 했었단 말이거든요. 그때 말이에요 그때. 여동생이 화장실에서 죽었다는 얘기를 한참 뒤에 들었을 때 말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그렇구나, 싶었다. 성남 시장 이재명의 여동생이 화장실 청소를 하던 중에 쓰러져서 다시는 못 일어나게 됐을 때, 그런대로 친하게 지내 왔으면서도 죽음에 관한 사실조차 몰라서 장례식에도 못 가 보고, 가볼 수도 없는 채로 한참이나 지나서야 그 얘기를 우연히 접하고 난 뒤에 그는 남한산성을 헤매고 다니며 왜, 왜, 왜, 소리를 끝도 없이 중얼거렸다고 했었다.

그를 그렇게도 어리둥절하게 한 것은 전임 시장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정치는 ‘가족사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 전임 시장의 돈벌이 방식은 많고도 많아서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증인들까지 있는 아이템은 인사권이었다. 시장이 인사권을 자기 부인한테 넘겨서 급수에 따라 삼천, 오천, 팔천 하는 식의 가격표까지 정해놓고 돈을 쓸어 담았다는 소문은 너무도 요란하게 돌아서 성남 시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중에는 본청 직원뿐만 아니라 시 산하 각종 사업소까지 손을 댔다는 얘기도 있었다.

사람으로서 차마 그렇게까지 터무니없는 도둑질은 못 한다 해도, 자기 여동생 하나 건사하지 못 하고, 하다못해 청소반장 같은 자리라도 하나 만들어주었다면 그런 식의 비참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 간단한 손길 한 번 내밀어주지 않은 이재명, 이 사람은 대체 사람인가 냉혈동물인가 하는 그런 원망의 마음이 매우 크게 있었다.

정치에 뛰어들기 전의 이재명이 시민단체 활동을 했었고, 이때부터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의 집중관리 대상이 돼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해 왔다는 사실을 알고 비로소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의구심이 완전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일백 원짜리 동전 여덟 개 즉 현금 팔백 원 때문에 유죄 선고를 받은 버스 운전기사처럼, 작은 도둑은 크게 처벌받지만 큰 도둑은 상대적으로 처벌 같지도 않은 처벌로 오히려 더욱더 큰소리를 치게 돼 있는 현실을 이재명은 변호사씩이나 되면서도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혹시, 나중에 혹시라도 자기가 처벌받을까 두려워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도리를 다하지 않고, 또는 못 하고 여동생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냥 방치한, 알면서도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던 겁쟁이인가? 그런 일에 겁을 먹을 정도의 바보인 거야?

등등 그런 무거운 의문들이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그의 가슴을 암세포처럼 짓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처럼 살지는 말자’, 그런 현수막을 보고 나니 그만 돌아버릴 것 같다는 거였다. 그런 얘기를 듣고 나니 이제 내가 한 마디 해야 할 때가 됐다는 느낌이어서 한 마디 했다.

“이제 그만 도시로 돌아가시는 게 좋을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 그는 바로 그 말을 듣고 싶었다는 듯이 화들짝 반가운 소리를 내고 나섰다.

“그래야 할까요?”

“무슨 대단한 철학을 하자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익숙하지도 않은 시골 생활을 핑계로 정면 대결을 애써 피하면서 아내까지 잃어버릴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그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천장을 쳐다보고 있다가는 아, 음, 소리를 내며 옆으로 픽 쓰러져 버렸다. 생각해보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아침 일찍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가 다시 내려온 시간이 자정도 넘어 새벽 두 시를 달리고 있으니 스무 시간도 넘은 셈이었다. 스무 시간도 넘게 긴장해 있었으니 이제는 쓰러지는 게 너무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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