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세월의 저편에
기억은 세월의 저편에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3.01.19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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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방학을 맞아 집에서 하릴없이 뒹굴 거리던 딸아이가 어느 날 뜬금없이 한 마디 던진다.

“엄마, 외할머니 뵈러 안 가?”

여느 대학생들처럼 알바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친구들을 만나러 바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공 학업에 매진하는 것 같지도 않고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것이 내심 한심해 보였는데 가끔은 저렇게 입바른 소리를 툭 던질 때는 나보다 낫구나 싶기도 하다.

엄마를 면회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자가진단키트를 준비해 가서 검사를 해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번거로움이 있다. 물론 요양원에 있는 부모님을 면회하러 가는데 그 정도의 불편함과 번거로움은 감수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속 깊은 정을 나누던 모녀사이가 아니어서 그런지 내게는 번거롭고 지난한 과정이다. 더구나 며칠 전에 아들의 대학 합격소식을 알리고자 엄마와 영상통화를 했기 때문에 면회를 가는 것이 무관심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젊은 시절 나에게 좋은 대학을 가라고 채찍을 휘두르던 때와 달리 무덤덤했다. 오히려 주변의 직원들이나 옆자리의 할머니들이 더 기뻐해 주었다. 환호나 큰 칭찬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금방 주고받은 대화내용도 기억하지 못 할 때가 많으니 무덤덤한 반응을 이해한다. 하지만 내심 서운한 마음이 스미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딸아이에게 외할머니의 기억은 나에게 엄마였던 기억보다 더 따뜻하고 포근할 것이다. 딸아이는 엄마에게 첫 손주였다. 칭찬과 격려보다 채찍으로만 나를 키우던 때와는 다르게 엄마는 딸아이에게 사랑을 퍼부었다. 뭘 해도 예뻐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었다. 마치 내게 전해주지 못한 사랑들까지 사그리 딸아이에게 쏟아 붓는 듯 말이다. 그러니 딸아이의 기억에 존재하는 할머니는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딸아이가 외할머니를 챙기고 그리워 할 때만큼은 엄마가 고맙고 감사한 생각이 든다. 나의 소중한 아이들에게는 예전의 나처럼 대해 주지 않아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따뜻한 할머니의 기억으로 남아 주어서이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차갑고 무겁다.

바깥의 날씨가 아무리 쾌청하고 맑아도 차 안의 공기는 부유물이 잔뜩 가라앉은 심해의 바닥마냥 어둡고 침울하다. 초록 빛깔들이 너울거리는 따스한 계절에도 엄마에게 가는 길은 외롭고 허전하다. 황량한 겨울 들판에 하얀 눈이 내려 흑백의 조화가 한껏 어우러져 있으면 엄마에게 가는 길은 더욱 춥고 서럽다.

얼마나 더 변했을까. 나에 대해서 얼마나 더 잊어버렸을까를 생각하면 두렵다.

엄마가 수년째 거주하고 있는 요양원은 약 한 시간 거리의 수도권에 위치해 있다. 시골동네라 공기도 좋고 매우 한적한 곳인데 그래서인지 엄마는 요양원에서 지낸 이후로 더 좋아진 모습이다. 일정한 시간에 식사를 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피부도 맑아지고 머리숱도 많아졌다. 병원 검진이며 소소한 변화에도 민감하게 대처를 해 주니 엄마의 신체적 건강은 확실하게 좋아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신체적인 건강이 호전된 만큼 기억력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한 번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던 엄마는 마스크를 내린 내 얼굴을 한참동안 바라본 뒤에야 살며시 웃음을 보였다. 주고받던 대화는 필담으로 바뀌었다. 미니 보드판과 보드마카를 손에 쥐고 간단한 대화를 더 간단한 문장으로 바꾸는 동안 내 목울대는 서글픔에 끊임없이 꿀렁이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는 내게서, 현실에서 또 저만치 한 발자국 뒤를 향하고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위클리서울/ 김일경

엄마와 단 둘이 있으면 어색한 분위기에 할 말도 금방 밑천을 드러내고야 말지만 아이들과 함께 오면 웃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딸아이가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잊어버리고 또 물어보기를 몇 번은 반복한다. 며칠 전에 전했던 아들의 합격소식도 기억하지 못했다. 필담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는 일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엄마는 손주를 향한 사랑 넘치는 미소만은 잃지 않는다. 내게는 잘 보여주지 않았던 따뜻한 미소들이다. 한 때는 그것이 원망스럽고 서럽기도 했지만 나에 대한 그릇되고 서툰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이제는 이해한다. 비록 그것들이 나의 성장기동안 생채기를 내고 아픈 기억들로 박제되어 심장 귀퉁이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가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날 때도 있지만 어리바리하고 뒤처진 나를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 본능적인 사랑을 숨겨왔음을 알 것도 같다. 당신의 손주들을 향한 미소는 어쩌면 나를 스쳐지나가고 있는 듯 하기 때문이다.

면회시간은 고작해야 삼십분 정도이다. 길지 않은 시간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필담을 해야 하니 폭넓은 대화를 할 수도 없고 이해나 공감을 주고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때마침 식사시간이 되어 면회를 종료해야 했고 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공허한 표정으로 식당을 향하였다. 잘 가라는 말도 잊어버리고, 너도 밥 먹고 가라는 통상적인 말도 잊어버리고 하다못해 헤어질 때마다 집에 언제 가냐고 물어보던 그 말조차 내던지고 밥을 먹으러 종종 걸음을 걸었다.

엄마는 먹기 위해 사는 것 보다 살기 위해 먹는다는 주장으로 평생을 먹는 일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 성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나도 먹은 일을 등한시하며 살아 왔는데 식사를 하러 가는 엄마의 종종 걸음이 낯설게 느껴졌다. 촌각을 다투며 자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하던 치열했던 엄마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엄마에게서 사라지는 것이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엄마의 음식은 더 이상 먹어볼 수 없고 엄마의 꾸중도 이젠 더 들을 수 없다. 엄마에 관한 대부분의 것들이 손가락사이의 모래알처럼 잡을 수 없는 가벼운 것들이 되어서 점점 사라지고 없어지고 잊혀지고 있는 것이다.

엄마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은 만나러 갈 때보다 더 춥고 서럽다.

바깥의 날씨가 아무리 쾌청하고 맑아도 차 안의 공기는 부유물이 잔뜩 가라앉은 심해의 바닥에 돌덩이 하나가 떨어진 듯 온통 흐리고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하다. 초록 빛깔들이 너울거리는 따스한 계절에도 엄마를 만나고 오는 길은 외롭고 허전하다. 황량한 겨울 들판에 하얀 눈이 내려 흑백의 조화가 한껏 어우러져도 엄마를 만나고 오는 길은 춥고 서럽다.

기억은 사라지고 있지만 본능은 남아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식사를 잘 한다고 하니 자식 된 입장에서 안심하고 다행으로 여겨야 할 일이다. 나를 기억해 내고 당신의 아들을 잊어버리지 않았고 본능적으로 손주들을 예뻐해 주고 있으니 이 또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문득 지금 엄마의 세계는 어떤지 궁금하다.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세월의 저편에 기억을 남겨둔 지금의 엄마는 행복할까. 살아오면서 살아내느라 힘들었던 일들, 나를 키우면서 속상했던 일들, 고단하고 아팠던 기억들만 잊어주면 좋겠다.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갈수록 잊어버리는 것들이 더 많아질 터이다. 엄마의 기억 끝에는 어떤 것들이 남아있을까. 그 기억의 끝에 나와 딸아이는 남아 있을까. 엄마의 생애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만 남겨지면 좋겠다. 그 순간들에 나는 없어도 좋으니 딸아이에게 향하던 따뜻한 미소처럼 아름답고 소중한 그런 기억들만 남아서 엄마의 여생이 한껏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들이었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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