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 수 없는 시간들
잠들 수 없는 시간들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2.07.15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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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적정한 수면은 몇 시간이면 될까?

연구 결과도 많고 그에 따른 의견도 분분 하겠지만 최소 여섯 시간 이상은 수면을 취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것이 개인적인 의견이다.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의 경우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는 성장 호르몬을 가장 많이 축적할 수 있는 시간이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을 권고한다. 깊은 잠에 들어 있어야 성장 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되니 말이다. 성장기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양질의 수면은 무척 중요하다. 숙면을 취함으로써 피로에 찌든 몸을 회복하고 건강한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으며 더불어 정신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수면 시간이 부족하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난 다음 날은 집중력도 떨어지고, 피부도 푸석하니 화장도 잘 안 먹는 것 같고,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할 영혼은 자유롭게 시공간을 유영하고 다니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을 비롯한 옛 어른들은 잠이 보약이고 밥도 보약이며 더불어 잘 자고 잘 먹는 것이 복이라 하였다. 가장 기본적인 생활 방식에 충실 하는 것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초라고 생각한 이유일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어린 시절 우리 엄마도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을 항상 요구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면 어영부영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대신, 내일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양치질을 후다닥 한 뒤 이불을 펴서 재빨리 누워야 했다. 숙제가 남아 있거나 조금이라도 미적 거리면 엄마에게 혼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아마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잠을 자는 대신 귀를 쫑긋 세우고 온 우주의 기를 모아 집중하며 듣는 부모님의 조용한 수다나 밤늦게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밤에는 놀거리가 많이 없었다. TV도 밤12시 근처가 되면 동해물과 백두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우리나라의 금수강산을 끝으로 화면은 작은 지진을 일으키며 쇳소리를 쏟아냈다. 주택가는 저녁 시간 이 후로 인적이 끊어지고 조도 낮은 가로등 불빛이 밤새 동네를 지켰다. 인적 드문 밤에는 식당이나 술집 같은 가게들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밤 10시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교문 밖을 나서면 학교 앞 길거리는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트리는 여학생들의 수다가 넘쳐 났다. 친구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하루 중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이다. 집에 전화가 있었지만 밤늦게 남의 집에 전화하는 일은 예의에 벗어난 행동이었으므로 귀갓길 버스 안에서 우리는 죽어라 떠들어 댔다. 어떻게 해서든 한 마디라도 더 떠들고 나서야 각자의 집으로 가는 정류장에 하차하면 도로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아버지들의 발걸음이 드문드문 있을 뿐이었다.

밤늦도록 공부하다 보면 배가 출출해 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잠든 엄마를 깨울 수도 없고 뭔가를 해 먹겠다고 덜그럭 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금이야 밤새 운영하는 편의점으로 쪼르르 달려가면 되지만 동네 구멍가게는 이미 문을 닫았고 라면도 귀한 시절이라 그냥 잠드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비록 놀거리는 풍부하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밤 풍경은 감미로웠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밤하늘 별들이 조곤거리는 이야기 소리도 들린다. 눈이 내리는 소리도 들린다. 풀벌레들의 떼창도 시끄럽진 않았다. 아무렇게나 끄적거려도 멋진 시 한 편은 탄생할 것 같은 그 밤에 공부를 하기 보다는 일기를 쓰고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하다못해 친구에게 쪽지라도 써야 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우리 아이들에게도 한 밤에만 분비 된다는 성장 호르몬의 혜택을 받아보고자 어떻게 해서든 일찍 재워보려고 애쓰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그러니까 나의 통제가 어느 정도 먹히던 시절에는 그나마 10시 이전에 누울 수 있었다. 잡다한 집안 일이 남아 있었지만 아이들을 재우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일단 제쳐 두고 함께 누웠다. 그러나 잠을 자야 할 아이들은 똘말똘망 해지는 것 같고 피곤에 찌든 나는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힘겹게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해가 갈수록 학업 양이 늘어나는 이유도 있겠지만 컴퓨터와 핸드폰의 등장은 수면의 최대 빌런이 되었다.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유혹하는 블루 라이트는 시간 개념을 깡그리 잊게 만들었다. 다행히도 우리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 내에서 컴퓨터 게임을 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리고 가끔은 나도 블루 라이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작은 화면 안에서 밤늦도록 허우적거린 적이 있다.

IT강국의 국민으로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종편 채널이 하나 둘 생겼을 때만 해도 정규 방송 이외의 채널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을 감출 수 없었는데 어느새 개인방송이 등장하여 누구나 콘텐츠를 제작하고 송출하는 세상이 되었다. 전 지구적 채널로 운영되는 유튜브는 카테고리만 해도 수 백 가지는 될 듯싶다.

최근에는 OTT 플랫폼이 등장하여 언제 어디서든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밤12시만 되면 동해물과 백두산을 내보내며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것을 권하던 방송사들도 이제는 서로들 앞 다투어 채널 경쟁에 뛰어 들었다. 나도 한 플랫폼을 통해 1박2일이나 신서유기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니 그 시절의 추억도 회상이 되며 뒤늦은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야식 문화와 배달체계는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주문하여 즐길 수 있다. 치킨과 함께 생맥주 배달이 가능하다는 광고에 놀란 때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검색만 잘 하면 생맥주뿐만 아니라 구운 삼겹살에 따끈한 찌개까지 코앞에 대령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렇듯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쳐나는데 잠들고 싶겠는가. 잠들지 않아도 되는 신체적 구조를 가졌다면 이 모든 볼거리와 먹거리들을 마음껏 누리고 싶을 만큼 흥미진진 해졌다.

세상은 점점 더 잠들 수 없도록 변해 간다. 야경이라는 미명하에 도시의 밤은 불야성이다.

20여개 이상의 한강 다리는 기간과 시간을 정하여 조명이 점등되고 관람용 분수가 형형색색으로 가동된다. 간선도로들 마다 환한 가로등과 자동차 불빛으로 도시의 밤은 찬란하다. 간혹 밤 운전을 할 일이 있어 한강 주변의 간선도로를 달릴 때면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이승인가 싶을 만큼 휘황찬란하다. 게다가 고층건물의 옥상에서는 야간 항공 장애를 염려하여 항공장애표시등이 점멸하고 고급 아파트들은 경관과 홍보를 위해서 갖가지 방법으로 외벽에 조명을 비추고 있다. 그야말로 여기저기서 번쩍거리고 있다.

성인이 된 아이들은 더 이상 일찍 잠들지 않는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친 후 잠깐의 귀갓길에서 전력을 다해 침을 튀기며 수다를 떨어댔는데 요즘 아이들은 휴대폰의 대화방에서 밤낮으로 손가락을 움직여 수다를 떤다. 나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때문에 자지 않고 버티는 건데?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 또한 이해를 할 수 없다. 왜 자야 되냐고 되묻는다. 밤 열두시가 되어도 아직 생생한 초저녁이란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길 바랄 뿐이다.

도시의 밤은 너무나 밝다.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들도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이다. 관광을 위해서, 도시의 위상을 위해서 여기저기 밝혀 놓은 조명들은 별빛을 집어 삼키고 있다.

감성 넘치던 오래 전의 밤이 그립긴 하지만 그러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방범에 취약했을 터이고 세상은 발전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명감을 인식하여 발전의 단계를 적절히 조절하고 자신의 건강한 밤을 위하여 스스로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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