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며칠 전 미용실을 다녀왔다. 줄곧 짧은 커트 머리를 유지하다가 한동안 내버려 두었더니 덥수룩하고 어정쩡한 길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미용실을 갈까 말까의 고민과 머리를 길러 볼까 말까의 고민사이에 봉착하는 동안 머리카락은 자유분방하게 제 멋대로 삐쳐나가고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소싯적에는 허리까지 기른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나름 멋을 부리고 다녔다. 가끔은 어느 연예인이 유행시킨 사자머리 펌을 하기도 하고 와인칼라의 코팅을 해 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짧은 머리가 그리워질 때면 긴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서 두피에 밀착시키고 커트 머리의 가발을 뒤집어썼다. 긴 머리에서 짧은 가발로 변신을 하면 왠지 기분도 전환되는 것 같았고 또 주변 사람들을 감쪽같이 속여 먹는 재미도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머리를 잘라 낸 줄 알고 몹시 놀라워했다. 그중에는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도 있었다. 허리춤까지 오던 머리칼이 하루아침에 댕강 잘린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그럴 만도 했을 것이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고 하지 않던가. 가발로 한 이틀 위장하다가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은 짧았던 머리카락이 왜 갑자기 늘어났냐며 한 번 더 놀랬다.

긴 머리와 짧은 머리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다 보니 나이가 들고 주름도 생겨서 긴 머리는 거추장스러워졌고 추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숱도 빠지고 예전처럼 변신이나 관리에 투자할 여력도 없어지면서 자연스레 짧은 커트 머리를 선호하게 되었다.

생애에 마지막으로 긴 머리를 커트하던 날은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변신한 내 모습을 맞닥뜨릴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대처해야 하는 부담감도 컸다. 놀란 토끼눈을 뜨고 무슨 일이냐며 마치 없던 일도 있는 것처럼 만들어내고야 말겠다는 폭증하는 관심의 표명은 긴 머리를 숨기고 짧은 가발을 뒤집어썼을 때의 아슬아슬했던 감정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왜 사람들은 여성들이 심경에 변화가 생겼을 때 머리를 자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분위기를 전환해 보고 싶거나 혹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냥 자르고 싶을 때 미용실을 가기도 하는데 말이다.

나는 짧은 커트 중에서도 오른 쪽보다 왼 쪽 머리가 조금 더 긴 언발란스 형태의 헤어를 선호하는 편이다. 기이하다 싶을 정도로 오른 쪽 머리는 귓불 위에서 짧게 커트하고 왼쪽 머리는 얼굴을 덮을 만큼의 길이를 유지하는 디자인이다. 머리를 잘라 주시는 미용실 직원도 두 서너 번은 되묻곤 한다.

“이렇게 짧게요? 이상할 것 같은데...”

나름의 이유가 있긴 하다. 우선은 나의 얼굴 생김새와 풍기는 외적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편이고, 무대에서 난타 공연을 할 때 왼쪽 머리를 흔들면서 북을 치면 타(打)의 표현을 극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은 언발란스 머리를 수 년 째 유지하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머리를 다듬기 위해서 미용실을 다녀와도 조금 단정하고 깔끔해졌다는 느낌이 드는 정도일 뿐 크게 달라진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다. 간혹 눈썰미가 좋은 누군가가 알아보기는 해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으니 그 또한 불편하지 않다. 무엇이 됐든 나를 향한 관심이나 변화에 대한 반응을 몹시 불편해 하는 까탈스러운 성격 탓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길러보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면서 미용실을 갈까 말까의 고민과 머리를 길러 볼까 말까의 고민사이에 한동안 봉착하다가 며칠 전 자유분방하게 제 멋대로 삐쳐나가던 머리를 정리하고야 말았다. 덥수룩한 모양새였던 머리는 깔끔하게 다듬어졌고 주변에서도 과하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아는 체만 해 주어서 좋았다.

미용실을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동네 마트를 들렀다.

마트에 들어서면 카트를 끌고 무의식적으로 야채 코너를 향해서 간다. 그곳에는 야채를 정리해서 진열하기도 하고 무게를 달아서 가격표를 붙여주는 직원들이 있는데 그 중 남자 직원 한 분은 고객이 다가가면 먼저 인사를 건네며 세일하는 품목이나 상태가 좋은 야채를 권해주기도 한다. 나는 특별히 눈을 마주치지 않고 가볍게 목례를 하며 권해주시는 야채들이 필요하면 카트에 담고 그렇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그냥 지나쳐 가는데 그런 이유 때문에 그 남자 직원의 얼굴 생김새도 잘 모르고 일면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사이(?)이다.

그날도 나는 사고 싶은 야채를 고르고 있었고 여느 때처럼 남직원이 인사를 건네 길래 가벼운 목례를 하면서 고르던 야채를 카트에 담은 뒤 지나가려고 하던 찰나였다.

“어! 뭐가 바뀌었는데? 어...뭐지? 뭐가 달라졌는데...”

남직원은 혼자 말인 듯, 아닌 듯, 제법 큰 목소리로 중얼거렸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수 년 간 그 마트를 다녔어도 남직원의 얼굴은 그날 처음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뭔가가 달려져 보이지만 그것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니까 옆자리에 있던 아주머니가 한마디 덧붙인다.

“뭐겠어? 여자들이 바뀌면 머리한 거지. 미용실 다녀 오셨나보네.”

나도 참 웃긴 여자다. 일면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사람 앞에서 왜 입 꼬리가 실룩이며 올라가느냐 말이다. 매일 혹은 자주 만나고 교류하는 지인들이나 알아차릴 법한, 티 나지 않은 변화를 눈치 채고 아는 척 해 주는 것이 몹시 놀라웠다. 그러나 속으로는 오만가지 생각과 두려움이 등골 마디마디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 분들이 나를 어떻게 알지? 더구나 머리를 다듬은 그 조그마한 변화를 눈치 챌 정도면 내가 혹시 이 마트에 진상고객인가? 혹시 예전에 가격을 깎아 달라고 떼를 쓴 적이 있나? 물건을 들었다 놨다만 반복하다가 사지도 않고 매대만 어지럽히는 무매너 아줌마였나?

갖가지 추측과 경우의 수를 되짚으면서 올라간 입 꼬리에 물꼬를 텄다. 머리를 조금 잘랐고 그걸 어떻게 아시는 거며 저를 또 어떻게 아시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알고 있다는 거였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갈 텐데, 더구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나다니는 나 같은 사람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나의 사고방식 범주 내에서는 아이러니다.

내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 관심을 받은 적이 최근에 한 번 더 있었다.

수업의 내용을 정리하며 일지를 쓰고 있었는데 그러한 나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맞은 편 센터 직원이 한마디 던지셨다.

“어쩌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요.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그 직원의 얼굴도 그날 처음 바라보게 되었고 솔직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선 얼굴이었다. 몇 년 전에 이 센터에서 근무를 했다던 직원은 한동안 타 센터에 있다가 다시 발령을 받아 왔다며 나의 모습이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고 했다. 어찌 변한 게 없겠는가. 주름도 늘었을 것이고 늙어가는 세월의 흔적도 묻어있었겠지만 몇 년 전의 난타 강사가 바뀌지 않고 여전히 재직 중인 것에 반가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그 또한 관심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했을 것이고 그런 소소한 관심의 표현이 그 직원과 나와의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을 해 주는 것 같아서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것이 사고방식이나 가치관 등을 포함하는 내적인 것이든, 학벌이나 재력, 외모를 나타내는 외적인 것이든 간에 나와 특별히 관계되지 않은 이상 타인에 대한 관심은 그냥 없다.

생애에 마지막으로 긴 머리를 커트하던 날, 시원섭섭하기도 했지만 변신한 내 모습을 맞닥뜨릴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대처해야 할 부담감을 가진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내가 타인에게 관심을 두지 않듯이, 타인들도 내게 관심을. 가져 주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 컸다. 서로 관심을 가지고 표현하는 일이 번거롭고 피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많은 마트 고객 중 있는 듯 없는 듯 지나다니는 나 같은 사람의 작은 변화를 알아봐 주는 마트 직원이나 몇 년 전에 봤던 얼굴을 기억하고 말 걸어 주는 센터 직원의 작은 관심은 뜻하지 않은 기쁨이었다. 나 편하자고 그어 놓은 보이지 않은 선 안에서 안주하던 나의 이면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였다.

평가하거나 단정 짓는 관심이 아니라 사소한 주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또 그것을 표현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변화된 모습을 보일 순 어렵겠지만 마음의 눈을 크게 뜨고 보이지 않게 그어 놓았던 너와 나 사이의 선들을 하나씩 지우도록 노력을 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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