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방충망 사이를 뚫고 들어 온 빗소리는 이른 새벽, 희뿌연 내 의식을 두드려 깨운다. 땀구멍마다 내리 꽂히던 한 여름 날카로운 더위 대신 소름이 돋아 오른다. 발치에 휘감긴 이불 끝자락을 끌어 왔다. 회색빛 허공 어딘가에서 부터 날라 댕기다가 지상으로 처박히는 투명한 화살들은 나의 관절 관절마다 도사리고 있는 통증들을 건드린다.

이곳저곳 몸땡이가 아파오기 시작한 건 십 수년 전 부터이다. 시작은 어깨였다. 팔을 들어 올리는 것이 버겁고 욱신거리던 어느 날,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통증으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이송된 적이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정확한 병명도 없이 그저 팔을 많이 쓰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 것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오로지 신선놀음이나 하고 있으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눈에 띄는 집안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한창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의 두 아이들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정 시간에 출근을 하고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나의 사회적 역할 또한 가볍게 치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죽으나 사나 이놈의 통증들을 여생의 반려자라 생각하고 같이 가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깨를 시발점으로 해서 해를 거듭할수록 통증의 부위가 점차 확대되기 시작했다. 어느 해는 팔꿈치에 전기가 통하는 듯 한 짜릿함이 들이 닥쳤다. 살을 좀 빼 보겠다고 헬스를 등록했지만 출석하는 날은 손가락에 꼽기 조차 민망할 만큼 일생을 운동이라고는 담을 쌓고 사는 게으른 인간인데 팔꿈치 통증의 수위로 보면 수준급 이상의 테니스 실력과 골프 정타율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지만 크게 나아진 건 없다. 팔을 많이 쓰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 것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역시나 신선놀음을 권유받았을 뿐이다. 팔꿈치 통증은 아무래도 직업병으로 예상된다. 난타를 하면서 스냅을 이용한 팔 동작이 팔꿈치에 무리를 가한 것 같다. 북을 치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면 보나마나 당장에 그만두라고 협박할 것 같아서 의사에겐 말하지 않았다. 그러니 은퇴를 하거나 북 채를 내려놓기 전 까지는 팔꿈치 통증 또한 파트너로 옆에 두어야 할 일이다.

최근 들어 관절관절마다 통증의 최고점을 찍는 중이다. 어깨에서 출발하여 팔꿈치를 찍고 손가락 마디에 도착하더니 무릎을 지나 심지어 발가락까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참으로 다양하게 온 몸을 섭렵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예측 불허의 공격을 받고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와중에 야금야금 내 몸뚱이가 점령당하고 있는 느낌이다.

지금껏 살아 온 시간들만큼이나 앞으로 더 살아내야 하는데 벌써부터 골골해져 간다는 것이 화가 나기도 하고 서글퍼지기도 한다. 제법 건강한 삶을 살아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싶은 자책도 들고 무엇보다 골골한 나의 몸 상태를 주변에서 알게 될까봐 걱정도 된다.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 때문이다.

아직은 젊다고, 젊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아파도 안 아픈 척 어슬픈 연기를 하고 미련하게 버티다가 급기야 얼마 전엔 등골 싸늘한 실수를 해 버렸다.

평소 SNS를 즐겨 한다. 페이스 북이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네트워크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관심분야의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소통을 이어 오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 친구를 맺기도 하지만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과도 서로 팔로우를 하며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답글이 달리지 않는 것이다. 팔로워들이 업데이트하는 피드에 나의 의견을 댓글에 표현하면 대부분의 경우 답글을 달아주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피드에 댓글을 달아 준 팔로워들에게 답글을 달아주는 것은 SNS 활동의 기본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평소와 다르게 간혹, 때때로, 종종 발생하는 무반응 대댓과 홀연히 사라지는 댓글에 의아함을 느끼며 그날도 언제나처럼 업데이트 된 피드에 댓글을 달고 있었는데 이것이 갑자기 메시지 창으로 가버린 것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동안 사라진 댓글이나 무반응 대댓들은 모두 메시지로 가버린 것임을 알게 되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노안이 와서 화면 속 글자가 흐릿하게 보여 진 탓에 이것이 댓글 달기인지, 메시지 모양인지를 분간도 못하고 흰 것은 화면이요 검은 것은 글자려니 했다. 열심히 자판 두드려서 개인 메시지 창으로 휙 보내버렸으니 뜬금없이 메시지를 받은 상대방의 당혹스러움을 상상하면 아무리 일면식이 없다 하더라도 낯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앞에 구석구석 망가지는 몸땡이 수선도 하지 않고 이리 버티고 있으니 댓글인지 메시지인지 구분도 못하는 지경이 되버렸나보다.

아직 젊다고, 젊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은 그 알량한 자존심은 핸드폰의 활자들을 확대시키는 것에 아직 허락을 할 수 없었고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돋보기가 두 다리를 벌리고 있어도 절대 취하지 않으며 미간에 주름이 두 줄 세 줄 겹치고 눈살을 찌푸릴지언정 노안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의도치 않게 메시지를 받게 만든 팔로워들에게 제대로 된 메시지를 보냈다.

돋보기 쓰는 게 정말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다고. 사심은 1도 없으니 놀라지는 마시라고.

늙어가는 것은 순리이지만 서글프고 서럽다. 언뜻 거울에 비춰지는 내 모습이 흉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자꾸만 도드라지는 팔자 주름, 한껏 처져가는 피부 그리고 군데군데 짙어지는 세포들을 처다 보고 있노라면 언제 저렇게 늙었을까 싶다. 늙지 않았다고 발버둥치는 것도 애처로운 일이지만 아직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의 노화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듯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장육부에 큰 탈이 없고 아직은 삶을 버리지 않을 건강한 정신과 따뜻한 마음이 남아있다. 비록 주름이 자글자글 하고 꼬부랑 할머니가 된다 하더라도 가족을 알아보고 주변에 폐 끼치지 않을 만큼 건강한 정신과 마음만 잘 간직한다면 늙어감에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나의 메시지를 받은 SNS 친구들은 오히려 나를 다독여 주었다. 본인들도 그러한 경험이 있으며 비슷한 메시지를 가끔 받기도 한단다. 그러니 개의치 말고 즐겁게 살자고 한다.

니들은 평생 젊을 줄 아느냐고 말하던 어르신들의 서운함이 이제야 느껴진다. 평생 젊을 줄 알았던 나의 어리석음과 둔함이 관절마다 꽂혀서 되뇌게 만든다.

두 다리를 벌리고 자빠져 있는 돋보기를 데려와서 콧잔등 위에 올려놓고 어딘가 내던져 두었던 무릎 보호대를 찾아와서 다시 둘렀다. 건강하게 늙어 갈 준비를 차곡차곡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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