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가톨릭뉴스지금여기 장영식]

비엣남 서북부 소수민족 여성들은 강인했습니다. 그들은 중국과 몽골, 일본과 프랑스와 미국의 침탈에 저항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비엣남은 구리와 주석, 고무 등의 천연자원과 군사적 요충지로서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야 했습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북부의 거친 산악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지형입니다. 비와 바람의 영향으로 카르스트 지형은 칼날처럼 날카로왔습니다. 쌀농사가 불가능한 그 바위들 틈을 개간하여 옥수수와 채소 등을 심고, 자급자족했습니다. 손이 모자라면, 품앗이를 통해 부족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 부족들은 특유의 문화를 형성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옷과 집의 구조였습니다. 비엣남 서북부의 소수민족들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녹아 있었습니다.

비엣남 공산당 초대 주석이었던 호치민은 비엣남 소수민족의 문화를 존중했습니다. 교사를 파견할 때도 그 지역 소수민족들의 전통과 문화를 학습한 교사를 파견했습니다. 프랑스와 일본, 미국 등의 제국주의와의 해방전쟁 때도 여성들을 존중했습니다. 여성들에게 비엣남 정부의 중요한 지위를 개방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비엣남 서북부 소수민족들의 여성들과 어린이들은 건강과 노동 문제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열악한 주거 문제와 조혼 그리고 농업에 투입되는 노동 문제는 개선되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옥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영양 문제는 산악지대 어린이들의 성장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발병 이후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북부 지역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라오카이 등은 중국과의 국경이 폐쇄되고, 경제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서북부 소수민족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열악한 주거 문제와 식수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현재 소수민족들은 인민의 나라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여성들의 투혼은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여성들의 투혼에 소수민족들의 미래를 맡길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수민족들의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해서라도 산악지대 소수민족들의 빈곤 문제와 식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여성들의 조혼 문제와 어린이들의 영양 문제도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가난한 여성들과 어린이들의 생존 문제이며, 인권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