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에게 있어 식량은 정말 중요한 것이다. 지금 세계는 도시 중심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도시 밖에서 생산되는 식량을 조달하지 못하면 그 어떤 도시도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에도 평생 도시인으로 살아온 나는 시장에 들어오는 온갖 식재료가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잘 모른 채 그저 돈 주고 사기만 했을 뿐이다. 시골에 사는 친척이 없어 농사도 구경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코로나 기간 동안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면서 나는 먹을 수 있는 채소도 집에서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지난해 우연히 ‘도시농부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좋은 경험도 하고 데이트도 할 겸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그 수업에 등록했고 그렇게 여름 7주간의 도시농부 실습이 시작되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첫 수업 날 우리는 공기 정화 식물 분갈이 실습을 했다. 도시농부학교의 커리큘럼은 내 예상과는 달리 실내 원예와 실외 텃밭을 모두 실습하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농부’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왜 관엽식물의 분갈이 같은 것을 알려주는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을 듣다 보니 이 커리큘럼이 식물 기르기에 관심이 있는 도시 사람에게는 최대한 현실적인 식물 재배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처럼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해가 드는 베란다도 먹는 채소를 기르기에는 광량이 부족하다는 것을 나는 수업에서 처음 배웠다. 특히 방울토마토 같은 열매 식물은 직접 쏟아지는 강한 햇빛이 필요하니 아파트에서는 결국 전기를 쓰는 식물조명을 이용하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다음 수업에서는 먹을 수 있는 채소, 허브, 꽃 등으로 꾸민 정원인 키친가든을 주제로 실습을 했다. 우리는 허브에 대해서 배우고 허브와 어린잎채소를 넣은 달걀 샌드위치와 애플민트 잎과 레몬, 라임, 사이다로 무알콜 모히토를 만들어 먹었다. 실제로 허브를 기르고 있는 내게 화분에서 기른 식물을 이렇게 요리로 만들어 먹는 것은 관엽식물을 눈으로 즐기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이었다. 내게 도시농부 과정이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이런 커리큘럼의 흐름 때문이었다. 방에 들여 늘 곁에 두고 볼 수 있는 수경 혹은 화분 식물로 시작해서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기를 수 있는 허브류, 그리고 텃밭이 있다면 거기서 기를 수 있는 식물들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수업 과정이 직관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내가 기르는 식물들 중 일부는 매일 내 눈을 즐겁게 하고 다른 식물은 공기를 정화하고 또 어떤 식물은 맛있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거기에서 처음으로 이해하며 체험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원예 혹은 그냥 ‘식물 기르기’는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조금씩 일상 속에 들여와 평생의 취미나 습관처럼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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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은 것이 하나 있다. “혹시 구입한 식물이 한 달 만에 죽더라도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그 시간 동안 우리가 그 식물의 모습과 향기를 충분히 즐겼다면 아까운 것이 아니지 않을까요? 필요하다면 또다시 구입하시면 돼요. 작은 화분은 그렇게 비싸지 않잖아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해주는 것이 식물이랍니다.” 그 말은 내가 가지고 있던 식물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사실 늘 여러 물건들을 구입하고 쓰고 버리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으면서도 식물 화분을 구입하는 데에는 유난히 마음이 가볍지 않았던 것은 내가 시드는 모습이나 죽는다는 생각에 너무 꽂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생각을 좀 바꾸어보기로 결심했다. 식물을 들이는 일에 너무 마음을 무겁게 갖지 말자, 내 삶을 좀 더 편하고 기분 좋게 해줄 양말이나 컵이나 샴푸나 비누를 사듯이 그렇게 식물도 마음 가볍게 사보자고 말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머니가 집안에서 오랫동안 가꾸고 계신 작은 실내정원과 베란다 화분들도 늘 그 모습 그대로였던 건 아니다. 어머니는 정이 많으셔서 한 번 들인 식물은 웬만해서는 품고 가려 하시는 분이다. 하지만 그런 우리 어머니도 벌레가 생긴 식물들은 다른 식물들에 피해가 가기 전에 가차 없이 처분하셨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시든 식물들도 미련 없이 정리하셨다. 그러고 보면 식물에 대해 무거웠던 나의 마음은 오히려 현실에서 내가 책임지는 식물 공간을 꾸준히 가꿔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에 갖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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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농부학교 커리큘럼의 나머지 절반은 각자의 작은 텃밭 상자에 상추와 오이를 심어 가꾸는 것이었다. 도시 한복판이지만 여름의 햇빛을 그대로 받고 자란 상추와 오이는 사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맛이 있었다. 내가 직접 길러서가 아니다. 시장에서 구입하는 채소들은 아무래도 수확한지 며칠은 되었을 확률이 높지만 내 텃밭의 채소는 수확한 그날 바로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 나는 마트에서 오이를 살 때와는 다르게 텃밭에서 자라난 오이가 구부러졌든 크기가 작든 맛만 있다면 신경 쓰지 않았다. 시장에 출고되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하는 채소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채소를 직접 길러 먹으려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오이 모종에 지지대를 세웠고 친환경 방제제와 영양제를 만드는 법을 배워 텃밭에 뿌렸다. 그리고 틈틈이 시간을 내어 물을 주러 갔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어설펐음에도 우리는 늘 오이와 상추를 풍족하게 거둘 수 있었다. 7번의 수업을 모두 마친 후에도 우리는 허가를 받고 10월까지 상자 텃밭에 개인적으로 채소를 기를 수 있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인터넷으로 구입한 루꼴라, 로메인, 오크 상추, 부추, 돌미나리 모종을 심었다. 또 쪽파 종자도 심고 한쪽에는 허브인 딜의 씨앗을 뿌렸다. 이번에는 선생님의 지도가 없다 보니 우리는 부추 모종과 쪽파 종자의 포기를 나누지 않고 통째로 심어버리는 실수를 하기도 했다. 게다가 루꼴라는 생각보다 잘 자라지 않았고 돌미나리는 죽지만 않았지 수확하기에는 상태가 나빴다. 그래도 우리는 가을 햇볕에 자란 싱싱한 상추를 딸 수 있었고 부추와 쪽파로는 부침개를 해먹었다. 가장 예상 밖이었던 것은 딜이었다. 과연 될까 반신반의하며 씨앗을 대충 뿌렸는데 조그맣게 싹을 틔우더니 금세 풍성하게 자라났다. 나는 텃밭에 갈 때마다 싱싱한 딜을 수확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딜오이 샌드위치를 원 없이 만들어 먹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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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즐거웠던 도시농부학교 수업과 텃밭 체험은 나에게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주었고 특히 남자친구에게는 작은 영감도 주었다. 나처럼 대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온 그가 언젠가 꼭 텃밭이 딸린 집을 사고 거기에 여러 가지 채소를 기르겠다는 목표를 갖게 된 것이다. 물론 아직 우리 둘에게는 텃밭을 만들 땅도 텃밭을 가꿀 시간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도시농부학교의 실습에서 얻은 식물들을 함께 하는 식물 생활의 시작점으로 삼고 집에서 잘 길러가고 있다.

그 후 겨울의 어느 날 나는 <인생 후르츠>라는 일본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거기 등장하는 노부부는 나고야 시 근처에 작은 목조 주택을 짓고 200여 평의 텃밭에 다양한 작물과 과수나무들을 가꾸며 소박하게 살아간다. 할머니는 인터뷰에서 그 정도 규모의 밭을 갖고 가꿀 수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다음 세대에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작은 상자 텃밭이지만 채소를 길러 먹어본 나에게는 깊은 인상을 남긴 말이었다. 문득 만약 모두가 그렇게 텃밭을 가꿀 수 있는 세상이라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겪는 문제들 중 일부는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벗어난 삶의 방식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원예 치유, 치유농업이라는 이름으로 실외에서 식물을 기르며 심리치료를 하는 프로그램도 유행이라고 들었다. 실제로 나도 나의 남자친구도 도시농부학교 프로그램을 하는 동안 틈틈이 야외 텃밭을 손질하며 작은 기쁨과 위안을 얻었었다. 만약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가 각자 200평까지는 아니더라도 집 근처에 작은 상자 텃밭이라도 가질 수 있다면 모두가 아주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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