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패션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는 나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목걸이 같은 장신구에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을 무렵에는 옷과 소품들을 좀 구입하기는 했었다. 하지만 돈이 없던 시절이라 주얼리류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당시 을지로 지하상가에서 구입했던 저렴한 목걸이 두 개는 잃어버렸다. 나는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 귀를 뚫고 나서 한동안 열심히 귀걸이를 했었다. 하지만 30대로 넘어가면서 그것도 귀찮아져 안 하게 되자 귀에 뚫은 구멍이 막혀버렸다. 그래서 가지고 있던 귀걸이들은 결국 주변에 나눠주거나 처분했다. 결국 남은 것은 20대 초반에 부모님께서 사주신 목걸이와 팔찌 몇 개, 그리고 가끔 충동구매한 비즈 팔찌 서너 개뿐이었다. 그마저도 외출할 때 아주 가끔 착용했을 뿐이다. 옷 입는 데에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면서 그 주얼리들은 상자 속에서 거의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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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내가 어느 날 다시 옷 생활을 새롭게 하자 마음을 먹었다. 그러면서 패션 관련 유튜브 영상도 틈틈이 보게 되었고 거기서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바로 패션 디자이너 샤넬에 관한 이야기였다. 샤넬은 고가의 브랜드 제품을 한 개도 갖고 있지 않은 나도 그 이름을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패션 브랜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샤넬의 창업자인 코코 샤넬이 활동하던 시절, 그녀가 선보인 패션들은 기존의 상식을 뒤집고 시대를 선도할 정도로 혁신적인 것이 많았다고 한다. 샤넬의 업적은 상복에나 쓰이던 검은색을 패션을 위한 세련된 색으로 탈바꿈시키고, 여성들의 활동성을 위한 좀 더 편안한 스타일의 옷을 제안하는 등 다양하다. 대량 제조 기술과 재료 공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매스미디어와 더불어 급성장한 당시의 패션은 시대의 혁신을 이끄는 말 그대로 ‘핫한’ 분야였다.

그런 샤넬에 대한 이야기 중에 내 귀에 확 꽂힌 것은 바로 ‘진주 목걸이’였다. 1924년 샤넬은 코스튬 주얼리(Costime Jewely)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저렴한 인조 진주 목걸이를 화려하게 걸친 연출을 선보이면서 지금까지 귀족과 부자들만의 것이었던 반짝이는 장신구를 패션의 영역으로 만든 것이다. 이 이야기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1세기를 사는 나에게 목걸이와 팔찌 등은 당연히 패션을 위한 액세서리일 뿐이었는데 그렇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니.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양식진주나 합성 보석, 우레탄 줄과 플라스틱 비즈 같은 것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없던 시대에 지금처럼 다양한 가격대의 주얼리가 있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문득 영상을 통해 종종 보았던 영국 왕실 여성들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들이 하고 나오는 목걸이나 귀걸이, 머리에 쓴 티아라 같은 것들은 보석의 크기와 양이 어마어마할 뿐 아니라 역사도 깊은 경우가 많았다. 그런 보석들은 단지 돈이 많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랜 세월을 이어온 왕족이라는 역사를 증명하는 물건들이다. 또 그에 따른 그들의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물건이기도 하다. 단순히 나를 아름다워 보이게 하기 위한 장신구가 아닌 것이다.

이번에 내가 샤넬의 진주 목걸이에 깊은 인상을 받은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다. 덕분에 예전에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두가 매일 부스스한 머리로 대충 교복을 입고 등교했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생애 처음으로 외모 꾸미기를 시작했던 20대 초반에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동창 친구들을 만났다. 그날 친구들 중 한 명이 내 귀에 달린 심플한 작은 금귀걸이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그 귀걸이 진짜 금이야? 우리 나이쯤 되면 이제 가짜 말고 진짜 해야 돼.” 나는 그 말에 바로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겼다. “왜…?” 그 당시에 내가 실제로 그 질문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진짜 귀걸이’와 ‘가짜 귀걸이’를 구분하는 것에서 전혀 의미를 찾지 못한다. 왜냐하면 내게 귀걸이는 그날 나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거나 내 기분을 전환하거나 하기 위해 쓰는 아주 주관적인 용도의 물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만약 저렴한 제품으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면 나의 기준에서는 그것은 최소비용으로 좋은 효과를 보았으니 오히려 자랑할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친구의 말 자체가 이해되지 않았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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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샤넬의 진주 목걸이 이야기를 듣고서 오랜만에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난 것은 주얼리를 보는 관점이 최소한 두 가지 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떤 사람은 나처럼 주얼리를 완전히 주관적 패션의 관점으로 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19세기 이전 왕족이나 귀족처럼 자신의 어떤 사회적 혹은 경제적 지위와 상태를 드러내는 물건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가의 브랜드 물건을 구입해서 그 가격을 자랑하는 사람은 당당하게 인조 진주를 걸치고 나타난 코코 샤넬과는 다른 관점으로 옷차림이라는 주제에 접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고가의 제품 중에도 분명 예쁜 물건이 많다. 하지만 비싸고 예쁜 제품들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려입는다고 해도 그런 내 모습이 예뻐 보일 확률은 적다. 한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옷차림은 기본적으로 특정 의도를 갖고 전체의 조화를 고려해야 하는 연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게감 있는 고가의 브랜드 아이템은 오히려 다양한 옷차림에 활용하기 힘들다. 아마도 나의 동창 친구는 그 시기에 자주 어울리던 부유한 가정 출신 친구들의 가치관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나는 그 당시에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입은 옷과 아이템의 가격, 혹은 한 사람의 경제적 부유함은 패션 센스에 특별히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친구의 말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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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가격과는 별개로 질 좋은 제품을 구입해서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좋은 경험이다. 본인이 시간을 들여 물건을 보는 눈을 기를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만화 중에 <오센>이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한 평범한 젊은 남자가 우연히 고급 요리집에서 일하게 되면서 장인이나 골동품상, 디자이너 등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어깨너머로 물건과 음식의 미학에 대해 배우게 되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골동품에 대해서도 문외한인 주인공은 한 에피소드에서 골동품상에게 어떤 도자기를 보고 얼마짜리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 골동품상은 “물건 볼 줄 모르는 녀석들이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가격이지!”라고 꾸짖으며 남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의 눈으로 물건을 보라고 조언한다. 나는 그 만화를 통해서 어떤 물건이 가진 아름다움의 가치는 가격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배웠다. 디자이너 코코 샤넬이 당시 싸구려라고 여겨지던 인조 진주를 두르는 과감함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어떤 물건의 가격이나 아이템의 상식적 사용 방법을 초월하는 가치를 볼 수 있는 눈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그 눈이 샤넬이라는 브랜드가 패션 역사에 굵직한 업적을 남길 수 있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차림을 연습하며 만들어가고 있는 요즘, 샤넬의 진주 목걸이는 아름다운 옷차림은 내가 몸에 걸친 제품들의 가격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더불어 나는 내가 구입한 옷이나 패션 아이템은 나의 라이프스타일과 취향뿐만 아니라 물건에 대한 가치관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거리에서 매일 보게 되는 제각각의 옷차림은 그 사람이 가진 ‘물건에 대한 가치 기준과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가져온 결과물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요즘 나는 목걸이와 팔찌를 조금씩 구입하고 있다. 그냥 예쁘다고 충동구매하거나 돈을 아끼느라 마음에 들지 않는 대체품을 사는 일은 이제 없어졌다. 예산 범위 안에서 내 스타일과 취향에 맞는 제품인지 충분히 고민한 후 구입한다. 나의 옷차림이 결국 옷을 연출해서 입어본 경험의 양과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내 눈의 수준에 좌우된다면, 남의 의견이나 유행에 신경 쓰지 말고 내 식대로 밀고 나가자. 실패하면 좀 어때.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코코 샤넬이 진주 목걸이를 통해 보여준 패션의 방향성은 그렇게 내게 조그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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