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진의 생각하는 일상]

[위클리서울=김은진 기자] 나는 지난 몇 년 간 많은 양의 옷과 모자, 가방 등의 패션 소품들을 샀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쇼핑을 단기간에 고심하며 한 적은 없었다.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고 예상보다 스트레스가 큰 과정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얻었다. 남자친구에게 이제 옷 입는 수준이 한 단계를 뛰어넘은 것 같다는 칭찬을 들었다. 또 물건 보는 눈이 좋아져 선물도 더 센스 있게 잘 사게 되었다. 이렇게 실제적인 것뿐만 아니다. 예상외의 것들도 배웠다.

 

ⓒ위클리서울/ 픽사베이

이렇게 본격적으로 쇼핑하며 옷 입기에 신경 쓰기 전까지 나는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막연히 부럽기만 했다. 그 사람들은 옷을 고르는 센스가 있어서, 혹은 몸매가 좋아서, 혹은 얼굴이 예뻐서 그저 옷을 잘 소화하는 능력이 있으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옷을 잘 입으려는 노력을 해보고 나서야 그들이 입은 보기 좋은 옷차림이 공짜로 얻은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옷을 사고 어울리는 스타일로 연출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도 이번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옷을 잘 입은 사람을 보면 그런 패션 센스를 갖기 위해 그 사람이 쏟아부었을 노력과 시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뿐만 아니다. 이제는 패션모델이나 인플루언서들의 사진을 보는 나의 눈도 달라졌다. 상당히 많은 공과 인위적 연출이 들어가야 그런 멋진 사진 몇 장을 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어떤 예쁜 옷을 입어도 평범하게 움직이고 생활하는 사람의 옷차림은 처음의 아름다운 상태 그대로 유지되지를 않는다. 외출하기 전에 만족스러운 스타일링을 했더라도 몇 시간 지나면 바람에 머리가 엉키고, 어깨에 올린 스웨터가 떨어지고, 목걸이는 한쪽으로 돌아가 있고, 치마와 셔츠는 구겨지고, 화장도 지워지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에서 그런 경험을 거듭하면서 내게는 사진 속 패션모델과 인플루언서들의 멋진 모습처럼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아예 없어졌다. 그렇게 현실적인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려 노력하면서 유행과 고가의 제품에 대해서도 더 무심해졌다. 이제는 길에서 유행에 맞춰 옷을 입은 사람들을 보면 그저 ‘유행에 따라 옷 입는 걸 좋아하는 사람’, 고가의 브랜드 가방을 든 사람을 보면 그냥 ‘저런 값비싼 가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 대신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내게 도움이 될만한 요소를 뽑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저런 컬러 매치는 나도 해볼 수 있겠다’거나 ‘저런 상의에는 미니스커트보다는 롱스커트가 어울리겠다’는 식으로 말이다.

지난 몇 년 간 패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옷 입는 방법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하나 있다. “기본템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말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옷을 입어본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냥 어떤 룩이 유행할 때마다 모델들이 입은 옷을 비슷하게 사 입거나 있는 옷 중에 아무거나 골라 입을 때는 기본템이라는 개념이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그 옷을 더 잘 입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기 시작하면서 나도 드디어 하얀색 티셔츠나 검은색 슬림핏 니트 같이 특별히 특색이 없지만 나에게 잘 맞는 기본템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새로 산 예쁜 치마도 어떤 상의를 입느냐에 따라 큰마음 먹고 산 그 옷의 매력을 잘 보여줄 수도 있고 반감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또 그런 기본템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도 배웠다. 대부분의 티셔츠에 가장 기본 목둘레 디자인으로 나오는 크루넥은 나의 장점을 살려주지 못했다. 여러 상의를 입어보면서 역시 내게는 목둘레가 시원하게 파진 기본 상의가 계절과 관계없이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았다. 또 기본적으로 나는 상의는 밝고 하의는 어둡게, 또 상의에 시선을 모으고 하의 색상은 단순하게 입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 데이터를 갖고 기본템으로 옷을 잘 어울리게 입는 경험이 늘어나면서 나는 옷에 있어서 내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하는 미련과 욕심을 거의 버릴 수 있게 되었다. 드디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우아한 기본색이지만 내게는 영 어울리지 않는 베이지색 상의와 하의를 나는 이제 다시는 시도하지 않기로 정했다. 요즘 유행이라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회색의 재킷과 코트도 쇼핑 리스트에서 싹 비워냈다. 회색이 나쁘지는 않지만 나에게는 검은색과 카멜색만큼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유행이라도 분홍색이나 노란색의 예쁜 바지들은 절대 사지 않기로 정했다.

 

ⓒ위클리서울/ 김은진

이렇게 옷 입기 실력이 초보를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하나 더 있다. 정말 안 어울리는데 무리수를 두며 구입한 옷이 아니라면, 갖고 있는 옷을 잘 못 입는 것은 옷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옷 입는 능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잘 어울리는 기본템을 갖추고 내게 어울리는 핏과 색상에 대한 틀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나는 옷장 속에 입지 않고 묵혀두었던 오래된 옷도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례로 내게는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에게서 얻은 얇은 크림색 니트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영 입게 되지를 않아 늘 내 옷장 속 구석에 있었다. 그러다가 올가을 네이비색 재킷과 같은 색의 치마바지를 입으려던 날 문득 그 니트의 존재가 생각났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입은 그 옷은 내가 그날 입고자 했던 옷차림을 완전히 살려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나는 그날 깨달았다. 그동안 내 손이 안 가던 것은 그 옷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맞게 입을 줄을 몰라서였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그간 나의 무능을 생각하지 않고 옷을 탓했던 것을 생각하며 옷장 속 오래된 다른 옷들에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직 가능성을 시험해 보지 못한 오래된 옷과 새로운 옷이 뒤섞인 옷장에서 하나둘씩 옷을 꺼내 입으면서 나는 어느 날 살짝 낯선 경험을 하나 했다. 내가 갖고 있던 오래된 옷들에서는 우리 어머니의 취향이 짙게 배어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얼마 전 어머니가 지인분 자녀의 결혼식에 가시는 날이었다. 그날 어머니는 베이지색의 기장이 짧은 트렌치코트와 연보라색 꽃무늬 미니스커트를 입으셨다. 늘 그렇듯 아주 잘 어울리는 어머니다운 옷차림이었다. 그런데 배웅하려고 나선 내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문득 현관을 나서시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예전 옷을 입은 과거의 내 모습과 겹쳐 보였던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가 생각하시는 예쁜 모습’이 그동안 내 옷차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내가 옷에 관심이 없어 쇼핑할 때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고 옷을 입고 나서도 주로 어머니의 조언을 많이 구했으니 사실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 돌아보니 이전의 나는 경험과 노력 부족으로 내 옷차림을 넓게 볼 능력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옷장에 내 관점으로 구입한 옷들이 더 많아졌고 나는 훨씬 더 다양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다. 그러니 그중 어머니의 취향인 영역이 확연히 내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 어머니는 패션 센스가 좋으신 대신 선호하는 스타일의 영역이 좀 좁은 편이고 마음에 든 옷차림을 오래 고수하시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시행착오를 기꺼이 감당하면서 내 눈으로 봐서 어울리기만 한다면 어떤 스타일이든 구애받지 않고 입는 성격이다. 그래서 지금은 포멀, 캐주얼, 페미닌 등의 다양한 스타일의 옷으로 믹스 매치를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어머니와 함께 구입한 오래된 옷도 어머니와는 다른 느낌으로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날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나는 이제야 나의 옷장과 옷 입는 생활이 진정한 독립을 시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스타일의 영향에서도 점점 멀어지고 동시에 특별히 유행을 따르지도 않는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이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나이가 들어서는 옷을 최소한으로 사면서도 나 자신에게 잘 어울리게 옷을 입을 줄 아는 삶을 살기 위해 시작한 쇼핑이니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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