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화양 제일골목시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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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서울이지만 이곳은 ‘화양동’이라는 명칭보다 아직 ‘화양리’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건대입구역과 5호선 어린이대공원역 중간에 위치한 먹자골목 형태의 이 거리는 과거 ‘화양리’라 불리었다. 1914년 일제강점기 시기부터 1950년 한국 전쟁 때까지 이 지역은 뚝도면 화양리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리’라는 행정명이 더 익숙한 건 지금도 청량리동이 ‘청량리’, 왕십리동이 ‘왕십리’라고 불리는 것과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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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는 건국대학교와 세종대학교 등 유수의 대학교가 인접해 있지만 수십 년간 이곳을 지배했던 건 술집과 사창가였다. 붉은 정육점 불빛의 쇼윈도에는 젊은 여성들이 짙은 화장을 하고 검은 망사스타킹을 신은 채 창밖을 멍한 눈빛으로 응시하곤 했다. 십 대들의 담배 연기로 자욱하던 유흥가이기도 했던 이 일대는 2000년 들어서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 지금의 깔끔한 골목상권으로 바뀌었다. 근처의 재래시장도 새롭게 단장되어 화양제일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신식 재래시장으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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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유동층 넘실대는 MZ세대 재래시장

사람들로 넘쳐나는 건대 주변 골목에서 어린이대공원 군자동 방면으로 조금 걷자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나는 만둣집이 보인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만두는 화양골목시장으로 인도하는 안내문이다. 젊은이들이 모여 만두가 익기를 기다린다. 어둑해지는 저녁 무렵 뽀얀 투명한 김치만두는 입맛을 다시게 한다. 옆집은 치킨집이다. 고소하게 기름진 냄새가 골목을 덮는다. 좌판에는 노랗게 튀겨진 닭강정이 산처럼 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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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크리스마스도 아닌데 시장 거리 초입부터 끝까지 공중에 달린 둥근 공 모양의 조명은 한껏 눈이 올 것 같은 겨울의 시장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화양동은 조선 시대에도 번화가였다. 인근 한강 광나루는 상인 및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목이었다. 근대화가 되면서는 기생집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기생집이 향후 이 일대를 유흥가로 만든 원인이었을까? 2000년대 들어 유흥가가 정비되면서 이 지역 상권은 쇄락의 길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렸던 골목들은 일제히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인근 건국대학교 주변 골목은 성황을 이루는데 비해 한동안 화양동 골목에는 사람들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곳의 화양제일골목시장이 재단장하면서 건대 주변의 소비자들이 시장을 타고 화양동으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화양시장이 건대주변 상권과 화양동 상권을 잇는 가교역할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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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 먹자골목에서 화양시장으로 이르는 길에는 볼거리, 구경거리, 놀거리가 가득하다. 걸어가는 내내 심심할 틈이 없다. 배가 출출할 때 든든하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감자탕, 삼겹살집이 보인다. 요즘 유행하는 먹거리는 마라탕이다. 알싸한 마라 냄새가 골목을 채우며 코 끝을 아리게 한다. 또 유행하는 먹거리가 있다. ‘탕후루’다. 포도, 딸기를 설탕코팅해 기다란 꼬치에 꽂으면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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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토요일 주말이라면 횡재수를 기대해 볼만도 하다. 로또 판매점도 노란색 불빛을 밝히며 유흥객들을 유혹한다. 저 멀리 커다란 볼링공 모양이 보인다면 시장에 다 와간다는 증거다. 어린아이 키 높이의 하얀 볼링공이 있는 볼링장을 지나 코너를 돌면 주황색 시장 대문에 다다르게 된다. 상점들은 작고 동그란 간판을 달고 있다. 제각각이던 시장 간판을 일괄적으로 바꾼 현대식 간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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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동산에 있을 법한 공 모양의 조명들이 상점 위 하늘을 향해 걸려있다. 마치 축제처럼 조명은 꽃처럼 불처럼 반짝거린다. 덩달아 사람들의 마음도 싱숭생숭해진다. 재래시장일 뿐인데 사람들의 축제에 온 듯한 분위기가 일렁인다. 상점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연령층도 다른 재래시장과는 다르다. 장을 보기 위한 주부와 중장년, 노년층이 많았던 기존 재래시장과는 달리 인근 유흥가에 놀러 나왔다가 들린 듯한 차림의 젊은이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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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등하는 과일·채소 가격, 이상기후 미래가 두렵다

손님을 기다리는 채소 가게 늙은 부부의 모습이 정답다. 양파 1자루 2000원, 감자 1자루에 3000원. 박스 뒷면을 뜯어 만든 채소들의 가격표가 재래시장의 풍미를 느끼게 해 준다.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은 보너스.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향하던 여성은 저녁 식탁을 풍요롭게 만들어 줄 반찬을 고른다. 자전거 페달을 멈추고 폭신하게 부친 계란말이와 윤기가 좔좔 흐르는 어포 무침을 선택한다. 콩나물무침은 반찬가게의 ‘베스트셀러’다. 콩나물무침이 쉬울 것 같지만 은근히 맛 내기 어려운 반찬이다. 그래서 주부들이 가장 많이 찾는 반찬이란다. 콩자반, 콩나물무침, 두부 무침은 물론 고등어와 가자미를 카레 가루와 밀가루를 살짝 입혀 구운 생선구이도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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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을 골랐으면 후식으로 과일을 찾을 차례다. 싱싱한 과일을 좌판에 올려놓은 과일가게가 이어진다. 배가 한 개에 5천 원. 멜론은 한 수에 9천 원이다. 과일 가격이 비싸다. 과일가게 주인은 이전보다 과일 가격이 더 비싸다고 손사래를 친다. 과일을 고르던 한 여성도 맞장구를 친다. 최근 과일 가격은 보통 때보다 두 배는 비싸다고 느낀단다. 봄부터 계속되는 냉해 탓이다. 냉해로 인해 수정이 잘되지 않아 과실에 꽃이 피지 않았다고 한다. 꽃이 피지 않으니 열매 수확도 적을 수밖에. 사과도 여느 해와 달리 생산량이 20% 이상 감소했다. 여름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며 단감은 탄저병 피해까지 입었다. 냉해, 태풍, 홍수 등 이상기후로 인해 과일과 채소 가격이 치솟으니 장바구니가 무겁다. 과일 가격은 물량 변화에 좌우된다. 앞으로도 이런 현상이 계속 될 텐데 걱정스럽다. 지금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스턴트 음식에 비해 땅에서 난 과일과 채소 등의 자연식품 가격은 계속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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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 ‘소일렌트 그린’에서 그려지는 2022년은 과일이나 채소는 구경할 수도 없는 시대다. 환경오염, 이상기후로 인해 땅도 바다도 모두 생물이 살 수 없다. 농작물을 경작할 수도 없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다. 바다도 죽었기 때문이다. 한 화학회사에서 소일렌트 그린이라는 플랑크톤을 주재료로 한 비스킷 모양의 영양식품을 판매한다. 사람들은 이런 식품 외에는 먹을 수가 없다. 이미 수십 년간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 보니 사과나 오이, 딸기를 먹어 본 사람은 나이가 많은 노인들뿐이다. 영국드라마 ‘블랙미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래에는 모두 만들어진 패스트푸드를 먹는다. 싸기 때문이다. 자판기에도 사과를 판매하지만 가격이 비싸다. 같은 값이면 열량이 높은 인스턴트를 먹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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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SF 영화처럼 미래가 되면 과일이나 채소 등의 자연식품을 부자들만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은 지금이다. 미래까지는 모르겠고 이럴 때일수록 재래시장이다. 그나마 산지에서 직송해 마트보다 저렴하고 싱싱한 물건을 고를 수 있으니까. 시장을 나서니 사주타로 간판이 즐비하다. 사주타로 거리라고 불러도 될 만큼 대로 전체에 점집이 가득하다. 시장과 먹자골목, 사주타로 점집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볼거리, 놀거리, 먹거리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재래시장이 바로 화양제일골목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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