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노룬산골목시장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가. 생로병사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히 늙지 않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 시장 이름에서도 그러한 인간의 욕망을 찾을 수 있다. 백 년 전부터 늙어감을 서러워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불렸던 곳이 있다. 바로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던 노유산이다. 노유(老遊), 늙을 노(老)와 놀 유(遊) 자를 썼다. 말 그대로 ‘늙지 않고 놀기 좋은’이라는 뜻이다. 옛날 노유산은 가을이 되면 황금빛 잔디로 뒤덮이는 모습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일대를 누런 잔디산, 누런 산, 잔무덤이라고 불렀다. 누런 산이 노룬산이 되고, 노유산으로 변했다. 지금은 동산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이곳에는 시장이 남아 그 이름을 이어간다.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지금은 사라진 동산 자리에 자리 잡은 골목 시장

뚝섬로를 따라가다 보면 ‘노룬산’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노룬산?’ 무슨 뜻일까. 노룬산은 서울 성동구 노유동, 지금은 행정구역상 자양동에 있던 동산 이름이다. 노룬산은 노유산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뚝섬에 제방이 있기 전 이곳에는 잔디가 깔려있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샛노랗게 물든 잔디가 장관을 이뤄 사람들이 누런 산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동산은 사라지고 이름만 남아 시장이 됐다. 바로 ‘노룬산 시장’이다. 노룬산시장은 1970년대부터 있던 전통있는 재래시장이다. 영동교 북단에서 뚝섬로로 이어지는 대로변 시장으로 교통 접근성이 좋아 오랫동안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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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는 아파트촌이 많다. 북쪽으로 걸으면 롯데백화점과 건국대학교가, 남쪽으로 걸으면 한강변이 나온다. 도보 10분 거리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편리한 동선이다. 어느 시장이 안 그렇겠냐만은 노룬산 시장은 하루하루가 매일 바쁘게 움직인다. 분식 포장마차 ‘노룬산 떡볶이’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24시간 문을 열어 배고픈 손님들의 허기를 채워준다. 새벽 장사를 준비하는 시장 상인들에게도 꼭 필요한 소중한 맛집이다. 하루 종일 운영되는 특수성 때문에 입소문이 나서 멀리서도 손님이 찾아온다고 한다. 메뉴야 떡볶이, 순대, 튀김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하지만 쫄깃한 떡과 찰진 양념이 독특해 한번 먹으면 또 생각나는 중독적인 맛이다. 이 집의 장점은 특히 가격이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10년 전 가격 그대로 떡볶이 3천 원, 순대 3천 원, 어묵 1개 천 원이다. 사장님의 넉넉한 손길은 보너스. 몇천 원이면 서서 뚝딱 먹을 수 있는 저렴한 가격이면서도 이것저것 맛보라는 시장 특유의 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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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거리 정비사업과 더불어 코로나19를 지나면서 과거 많았던 포장마차식 분식점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이곳은 옛날 시장 ‘갬성’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더운 여름에도 팔팔 끓고 있는 어묵 통을 보고 있자면 먹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노룬산시장은 현대식 시설로 정비되어 재탄생했다. 상점의 간판들도 전부 리모델링되어 깔끔한 인상을 준다. 전부 상인회 소속이다. 현금이나 현금 이체 등의 불편한 거래도 이곳에서는 걱정 없다. 동그란 간판에는 전부 노룬산 골목시장 상인회라는 표시가 되어 있고 온누리 상품권과 카드 가맹점이라고 표기되어 상품권, 카드 모두 환영한다. 노룬산 시장은 양쪽 골목으로 사이로 상점들이 있다. 신발, 옷을 판매하는 가게 옆에는 한복을 파는 가게가 있다. 건너편에는 순댓국과 통닭을 판다. 조화롭지 않은 듯 하면서 전부 시장에서 꼭 필요한 상점들의 상호들이 이어진다. 재래시장에서는 신발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반적으로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든 신발들이 많다. 고무로 된 장화, 슬리퍼, 앞코가 막힌 고무 슬리퍼, 털신 등이 매대에 한가득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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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이겨낼 싱싱한 제철 상품이 가득

메이커가 없는 운동화와 구두도 많다. 재래시장에 오면 독특한 디자인의 신발을 만날 수 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름에 입을 수 있는 시원한 모시 원피스와 러닝셔츠도 재래시장에서 구경할 수 있는 필수 품목이다.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집에서 원색의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으면 사실 나이가 더 어려 보이는(?) 효과도 있다. 대나무 자리와 방석, 죽부인, 더위 나기 좋은 시원한 여름 소재의 이불도 재래시장이라면 합리적인 가격에 만날 수 있다. 한복과 이불을 판매하는 상점을 지나면 건어물가게다. 시장은 건어물 가게 넘어 떡집, 정육점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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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이하는 상점들의 모습이 바쁘다. 벌써부터 추석용 한과 및 강정 선물 세트 주문을 받고 있다. 평상시에는 맛보기용 한과가 많이 팔리지만 이렇게 설이나 추석을 앞두고는 고급스럽게 포장한 선물용 한과 강정이 인기다. 명절이 다가오면 각종 재수용품들도 매대로 서둘러 나온다. 김이나 멸치, 오징어 등을 판매하는 건어물 상점도 북어포를 챙긴다. 특히 이 상점은 다양한 멸치 종류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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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어물은 말리는 방법에 따라 분류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생선, 조개류를 한 번 데친 후 건조한 상품을 ‘자건품’이라고 한다. 멸치나 새우, 조개류 등은 데치지 않고 말리면 쉽게 부패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쓴단다. 데친 후 상품을 어떻게 처리하는가도 중요하다. 말끔히 닦아 잔류할 수 있는 미생물이나 이물질, 기름기 등을 없애는 작업이 필요하다. 작거나 얇은 어패류는 그냥 말리기도 하는데 이러한 물건을 ‘소건품’이라 한다. 다시마나 건미역이 대표적이다. 마른오징어도 해풍에 그대로 말린 소건품 상품이다. 커다란 생선류는 건조하다가 부패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얼렸다가 녹였다가 하는 방법을 쓰는데 이렇게 건조한 상품을 ‘동건품’이라 한다. 우리 선조들의 매우 특별하고도 현명한 지혜가 돋보이는 건조법인데 바로 명태가 대표적인 ‘동건품’이다. 명태는 우리 선조들이 개발한 고유한 동건품이다. 고기를 녹였다 얼렸다 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세균이 번식할 수 있는데 해풍과 그늘을 이용해 차갑게 자연 건조하기 때문에 이런 걱정이 없다. 이런 방법을 알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겠지만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알 수 있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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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건품’도 있다. 소금을 뿌리거나 소금물에 담가 그늘에서 말리는 방식이다. 굴비나 간고등어가 대표적인 염건품 식품이라 할 수 있다. 염건품은 소금이 방부제 역할을 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 한여름에는 무엇을 먹어야 하나? 여름에는 식품들이 쉽게 부패해서 생선 먹기가 겁난다. 하지만 여름에도 제철 생선을 먹으면 탈날 염려가 없다. 한여름에는 갈치, 문어, 전복, 민어, 미꾸라지가 제철 생선이다. 비가 오다 해가 나는 오락가락하는 무더위에는 타우린이 풍부한 연포탕이 제격이라며생선가게 사장님이 문어를 들어 올린다. 문어는 밀가루와 소금을 넣어 바락바락 비벼 씻은 후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그만이다. 동네 가까운 재래시장에 가서 싱싱한 제철식품으로 더위로 축난 몸도 챙기며 이 여름을 이겨보자. 해가 어둑어둑 지면서 시장 상점의 불이 하나둘 켜진다. 밤에도 오는 손님들을 챙기며 그렇게 또 시장의 하루가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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