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 탐방] 능동로 골목시장

ⓒ위클리서울/ 김은영 기자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서울 광진구 자양동 행정복지센터 뒤편으로 이어지는 작디작은 시장, 다소 허술하고 허름해 보이기도 하는 작은 동네 시장이 있다. 바로 ‘능동로 골목 시장’이다. 요즘 같은 시대 신식 간판으로 현대식으로 단장한 재래시장들이 즐비한 가운데 아직도 시장 간판도 없는 작은 시장이다. 유명한 음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이곳에서만 파는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특색 있는 물건도, 사람도 없지만 그래서 더 편안하고 정감이 느껴지는 동네시장이기도 하다. 오가는 사람들도 인근 주택가의 시민들로 소소한 반찬거리와 과일을 사러 나온 편안한 복장들이다. 시장 인근이 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역으로 연결되는 역세권 지역에다 몇 블록만 더 가면 화려한 네온사인의 롯데백화점이 있고 양꼬치 골목으로 유명한 건대 먹자 상권이 있지만 이곳은 그런 상권과는 아무 상관없다는 듯 그저 조용하고 묵묵하게 작은 시장 자리를 지켜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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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도 없는 우리 동네 작고 소박한 재래시장

이 지역은 광진구 지역에서 서울숲 상권, 성수동 카페거리, 건대 양꼬치 거리, 자양동 먹자골목 등 수많은 인파와 화려한 골목상권으로 이어진다. 북쪽은 건대 로데오 거리와 중국 음식 거리가, 남쪽으로는 강남으로 이어지는 영동대교가, 동쪽으로는 잠실 상권으로 이뤄진 역세권 지역이다. 그 중심가에 들어 있는 시장이 바로 능동로 시장이다. 하지만 시장은 역세권 지역에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하기 그지없다. 재래시장이라면 대부분 있는 대형 조형물 대문이나 간판도 없다. 오직 이곳이 능동로 시장임을 알리는 건 이정표 하나뿐이다. 그냥 지나다니는 사람이라면 이곳이 시장인지도 잘 모르고 지나칠 터이다. 작은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짧은 거리의 작은 재래시장이 나온다. 동네 주민들이 여름이면 슬리퍼를 끌고 겨울에는 털신을 신고 가볍게 마실 나오듯 나와 저녁 찬거리와 소소한 먹거리를 가슴에 안고 들어갈 수 있는 말 그대로 ‘동네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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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능동로 시장으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노란색 바탕에 붉은색으로 ‘닭’이라고 쓴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강렬한 보색 대비다. 정육점의 붉은 조명이 냉장고 안에 고기들을 신선하게 비춘다. 요기를 할 수 있는 삼계탕, 감자탕집, 횟집도 보인다. 골목 사이사이 트로트가 흥겹게 들려온다. 그래서인가 어느 지역 어느 동네에서나 볼 수 있는 정겨운 동네 시장 느낌이 든다. 의자 두어 개가 전부인 작은 미용실이지만 동네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귤과 고구마를 서로 나누어 먹으며 자식 자랑 등 일상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동네 사랑방 역할을 하는 미용실, 배고플 때 저렴한 가격으로 푸짐하게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서민들의 든든한 식당인 장터국밥, 매일매일 뭘 먹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엄마가 해주는 밥처럼 고등어에 겉절이, 콩자반, 매일 바뀌는 소박한 반찬이 있는 동네 밥집 등 시장 안에는 다양한 먹거리 식당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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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것은 다른 곳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중국식품점이 있다는 점. 한자로 ‘중국식품’이라고 적힌 중국 식료품점은 시장 내에서도 눈에 띈다. 이 일대가 양꼬치와 중국음식 특화거리이기 때문인 이유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나 조선인들도 이쪽 시장을 이용한다는 말도 될 것이다.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떡집, 유명한 프랜차이즈 상표는 아니지만 재래시장 특유의 넉넉한 인심이 가득 담긴 치킨집, 반찬가게도 반갑다. 하얀색 바탕에 붉은 글씨의 간판이 가리키는 건 ‘점집’이다. 시장 내부에 있는 신점 집이라니 흥미롭다. 시장 상인들도 장사가 잘 될지 신년운세가 어떨지 궁금할 터. 그럴 때 가는 곳일까? 상상을 해본다. 한국인이라면 역시 김치다. 시장에는 전문 김치가게도 있다. 열무김치, 총각김치, 갓김치, 파김치, 겉절이, 두부에 청국장까지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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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7호선 뚝섬유원지 역세권 시장의 반전

능동로 시장이 있는 자양동은 예로부터 말 천 마리를 기르면 용의 말 즉, 용마(龍馬)가 태어난다고 한 성스러운 지역이다. 그래서 조선 시대에 이곳은 말을 기르는 마장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자마장리’라고 불렸다. ‘자마장리’라는 명칭은 암말을 길렀기 때문인데 암말이 자마를 뜻하기 때문이다. ‘자마장리’는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 시대인 1936년까지 불린 명칭이다. 그러다 이후 일제 행정 구역 정비 사업 과정에서 음이 변환되어 지금의 자양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자양동은 말과 얽힌 인연이 깊다. 이 일대가 암말을 기르는 곳이었고 인근 한양대학교 부근이 마제, 마조단이었다. 1989년까지는 서울숲 일대가 서울 경마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천으로 이전했지만 서울승마훈련원을 보면 이곳이 과거 경마장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시장 인근은 이처럼 말과 관련된 여러 재미있는 지역들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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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구경을 나섰다면 인근 지역으로 소풍을 가보는 것도 좋겠다.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건대입구역 주변 먹자골목과 로데오 골목, 영화관과 마트가 있는 롯데백화점, 광활한 연못을 즐길 수 있는 일감호를 품고 있는 건국대학교 캠퍼스까지. 조금 더 북쪽으로 이동하면 성수동 카페거리로 나갈 수 있다. 성수동을 지나면 뚝섬이다. 뚝섬의 지명 또한 재밌다. 뚝섬이 여의도처럼 섬이었다는 사실이다. 뚝섬은 조선 시대에는 관가의 말을 기르던 곳이었다. 1950년대에 뚝섬승마장에서 경마장으로 변신을 거듭한 후 이후 2005년에는 지금의 서울숲이 되었다. 서울숲은 생태숲과 꽃사슴방사장, 곤충식물원 등 수많은 습지와 연못과 쉴 곳을 제공하며 지금의 시민들의 꼭 필요한 안식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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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로 시장은 한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장에서 출출한 배를 채우고 슬슬 걸어서 가다 보면 뚝섬 한강 유원지역으로 나갈 수 있다. 매월 이곳에는 대규모 플리마켓이 열렸다. 서울 시내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이다. 벼룩시장은 능동로 시장과 가까운 7호선 뚝섬유원지역 2번과 3번 출구 바로 앞이다. 도매물건이나 업자들이 새상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중고물품을 거래하는 시장이라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하지만 엄혹한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벼룩시장은 2020년을 뒤로 이후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10월부터 4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되어 반가움을 더한다. 한강까지 왔으면 ‘한강 특제 라면’을 먹어봐야 한다. 시원한 한강을 보면서 먹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라면이다. 이제는 칼바람이지만 강바람을 맞으며 먹는 끓인 라면의 맛은 별미 중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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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데도 손을 불어가며 연을 날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연인의 손을 꼭 잡고 추위를 잊고 있는 커플도 있다. 한강은 서울 시민들의 없어서는 안 될 장소임이 틀림없다. 조선 시대에도 한강은 특별했다. 임금들의 한강 사랑은 더욱 각별했다. 경치가 빼어난 곳에 정자나 누각을 세우는 것은 당연한 일. 능동로 시장과 이어지는 한강변은 과거 임금들의 누각을 만드는 명소였다. 조선 시대 누정은 총 75개가 있었는데 능동로 시장 인근 한강변에 있는 누각의 이름은 낙천정이었다. 낙천정은 태종의 별장으로 태종이 종종 이곳에 들려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얼마나 경치가 좋은지 태종과 그의 아들 세종대왕은 이 일대에서 매사냥이나 활쏘기 대회 등을 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작은 간판도 없는 소박한 시장 일대이지만 조선 시대 임금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되새겨 보니 이 일대가 특별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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