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및 영화 속 전염병과 코로나19] 영화 ‘아이엠어히어로’(I am a Hero, 2016)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 세계가 고통 받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전염병과의 싸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전염병을 어떻게 다뤘고, 지금의 코로나19를 살아가는 현재에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한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지난 5월 병원을 찾은 외래환자 1천 명 중 독감 의심 환자는 25.7명이었다. 평년 이 시기의 7배 이상으로, 2001년 이후 최고치였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줄던 독감 환자가, 방역수칙 완화 시점부터 다시 급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호흡기 전문의들은 “병원균 간에서도 경쟁 관계가 있다”라고 원인을 설명한다. 가장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유행하면 다른 바이러스는 상대적으로 주춤한다는 것이다. 지난 코로나19가 주로 유행했던 1~2년간은 인플루엔자가 거의 소실되다시피 했었는데, 그때는 밀려있었던 독감 바이러스들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방역기준이 완화되고 마스크 착용이 느슨해지면서 바이러스성 급성호흡기감염증 입원환자도 작년보다 6배 이상 급증했다. 지독하다.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가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수많은 병원균과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고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아포칼립스 영화와 소설이 코로나가 주춤한 지금 시기에도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나오고 있는 이유다. ‘ZQN’, 일명 ‘조쿤’ 바이러스를 내세운 영화 ‘아이 엠 어 히어로(I am a Hero, 2016)’ 또한 정체불명의 감염자들과 싸워서 생존해야 하는 아포칼립스 영화다.

 

ⓒ위클리서울/ 네이버영화

평범하고 안온한 일상을 파괴하는 바이러스 감염자

무더운 여름, 일본의 한 만화가의 집. 만화가와 보조작가들이 만화 그리기에 열중하고 있다. TV에서는 어떤 여성이 도사견을 물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사람이 개를, 그것도 도사견을 물었다고? 아무리 들어도 이상한 뉴스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뉴스를 듣고 마는 사람들. 이들은 그저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평범하다. 이들과 함께 만화 작업을 하고 있는 히데오 스즈키(오오이즈미 요 분)는 한참 잘 나갈 때는 만화 작가상을 수상하는 등 부각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지금은 편집부에서도 무시하는 별 볼 일 없는 만화가가 되었다. 여자친구에게도 장래성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히데오.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다음 날 히데오는 다시 한번 잘해보고자 여자친구 집을 찾았으나 이미 여자친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괴이한 행동을 보이며 히데오를 공격했다. 거꾸로 다리를 들고 시뻘건 핏빛 눈동자를 하고 히데오에게 달려들어 물어뜯으려 했다.

그렇게 세상이 변했다. 무언가에 감염된 자들이 피를 흘리며 지나가던 사람들을 공격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디로든 도망가야 했다. 감염은 매우 순식간에 일어났다. 도망치던 히데오의 곁에는 야카리 히로미(아리무라 카스미 분)라는 여주인공이 있다. 그는 거리에서 감염자를 피하기 위해 택시에 동승했다가 히데오와 함께 다니게 된다. 어디가 안전할까. 히데오와 히로미는 인터넷에 접속해 어떻게든 안전한 곳으로 가려고 한다. 이런 재난 상황이 오면 늘 그렇듯이 가장 먼저 가짜뉴스가 판을 친다. 인터넷 글에는 각종 거짓 정보들이 난무한다. 둘은 함께 힘을 합쳐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장소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히로미가 이상했다. 히로미의 어깨에는 감염자가 문 상처가 있었다. 히로미는 “사실 옆집 아기가 물었어”라고 태연하게 답한다. 히데오는 산탄총을 히로미에게 겨냥하지만 쏘지 못한다. 히로미의 상태가 멀쩡했기 때문이다. 히데오는 “변하면 쏘지, 뭐”라고 힘없이 말한다.

 

ⓒ위클리서울/ 네이버영화

남은 생존자들을 지켜야 한다, 산탄총을 든 히어로

이후 히데오는 병든 히로미를 카트에 태우고 도망 다니다 생존자들을 만나 함께 한 쇼핑몰 건물 옥상에 모여 살게 된다. 조쿤 바이러스 감염자들은 높이 올라오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생존자들은 지하식품 저장고를 습격해 식품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러나 지하창고에서 조쿤 감염자들과 싸움이 벌어지면서 생존자들은 대부분 죽는다. 옥상에 남아있던 사람들도 인간이었을 때 대학교 높이뛰기 선수였다는 감염자가 높이 뛰기로 옥상으로 뛰어들어 생존자들을 몰살시킨다. 모두 다 죽고 이제 살아남은 인원은 5명뿐이다. 그런데 감염자들은 계속해서 늘고 생존자들을 공격한다. 누군가는 나서서 이 상황을 타개해야 한다. 소심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히데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용기를 내서 무자비하게 덤비는 감염자들을 산탄총으로 하나씩 조준해 죽인다.

히데오는 영어로 히어로(HERO), 즉 영웅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이름값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사회에서 히데오는 너무 소심하다 못해 지질한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히데오는 모든 사람들이 감염된 난세의 순간, 공격하는 감염자들을 모두 죽이고 영웅이 된다. 제목 ‘아이 엠 어 히어로’가 진짜로 성립되는 순간이다. 감염되었지만 완전한 조쿤 바이러스 감염자가 되지 않은 히로미와 함께.

‘아이엠히어로’는 온통 뇌수가 터지고 유혈이 콸콸 도배된 영화지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다. 특히 바이러스 감염자가 되어 좀비로 활보할 때 타 좀비물과는 다르게 감염자들은 예전 인간이었을 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반복한다는 설정이 독특했다. 옥상에 모인 생존자 중 중년 남성의 부인인 ‘쿄코’는 쇼핑 중독자다. 그녀는 조쿤에 감염되고서도 계속 쇼핑몰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옥상에 있던 생존자들을 모조리 조쿤 바이러스에 감염시킨 좀비(이용훈 분)도 과거 자신이 높이뛰기를 했던 습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계속 높이뛰기를 시도하다가 성공해서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조쿤 바이러스 감염자가 되었지만 그들은 계속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쇼핑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반복적으로 계속 인간이었을 때의 행동을 보이는 모습이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그들이 원해서 바이러스 감염자가 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이 원해서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것이 아니기에. 누구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본인의 이야기와 같이 느껴진 탓이다.

영화처럼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최근에는 엠폭스 환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엠폭스는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전염병으로 1958년 실험용 원숭이에게서 처음 발견되어 유럽이나 북미를 중심으로 유행되는 수두와 같은 증세를 보이는 전염병이다. 갑자기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동식물 전염병도 크게 늘었다. 구제역은 4년 만에 발생해 축산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대만에서는 10대 여학생이 양돈장을 방문했다가 돼지독감 바이러스 변이형에 감염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코로나19가 주춤해지자 그동안 밀려있던 잡탕 바이러스들이 줄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이러스로 영웅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대한 경계심을 갖는 생활 태도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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