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올 가을은 칙칙하게 와서 우울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들이닥친 가을 냄새를 몸이 먼저 알고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있을 때 오매 벌써 가을이네? 소리가 내 입에서 나오긴 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가을 같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

한참 주황색 물이 들어야 할 감나무는 이파리와 열매를 죄다 잃어버린 탓으로 겨울처럼 앙상했다. 7월과 8월에 비가 너무 많이 거의 매일 쏟아진 탓으로 뿌리가 물에 완전히 잠기다시피 해버렸기 때문이었다.

 

논두렁에 억새꽃
논두렁에 억새꽃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해마다 홍시와 곶감을 이백 개도 넘게 얻어내곤 했던 대봉은 가을이 오기도 전에 다 떨어지고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감은 그나마 몇 개 남았지만 부스럼딱지 같은 것이 더덕더덕 붙어 있어서 손도 대기가 싫었다. 하도 많이 열려서 내 머리통을 툭툭 치곤했던 대추는 또 어떤가. 무슨 떼강도라도 훑고 지나간 듯이 단 한 알도 구경할 수가 없으니 기가 막혀도 너무 막혀서 숨도 못 쉴 지경이었다.

뿌리가 깊은 나무들은 이런 식으로 대부분 몰락해 버렸다. 뿌리가 깊지 않은 호박도 역시 장마철에는 열매가 열렸다 하면 곧장 썩어문드러져 버리더니 가을바람을 만나면서 정신이 번쩍 든 모양새였다. 열매도 이파리도 죄다 잃어버린 감나무를 호박 넝쿨이 마치 무혈 입성하는 점령군처럼 휘어잡고 올라가면서 수도 없이 많은 곁순을 내고, 곁순마다 애호박이 주렁주렁 열린다.

무서리만 살짝 내려도 나 죽었네, 해버리는 애호박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얇게 썰어서 말리고, 또 말리기를 몇날며칠이나 했건만 무서리는 내리지 않고 애호박만 정신없이 계속 열린다. 많다. 너무 많다. 이 많은 애호박을 어쩌란 말이냐.

여기저기 소문을 내서 가져가라 하기도 하고, 내가 손수 가져다 주겠다고도 해보지만, 고맙다거나 반갑다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자기 집에 애호박도 처치곤란이란 거였다. 그런가? 우리는 지금 느닷없는 애호박의 습격을 받고 있는 건가? 어이가 없어서 피식, 피식 웃고 있을 때 홀연 그 남자가 생각났다. 시골 생활은 생전 처음이라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남자.

아, 그 인간한테 갖다 주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겠다. 텔레비전은 엄청나게 큰 걸 두고 있으면서 핸드폰은 쓸데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였다. 생각해보니 모내기하던 날 찾아가본 이후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다. 인간이 너무 불친절해서 앉아 있기가 어려운 탓이기도 했지만, 보다 면밀하게 따지고 보면 내가 못난 탓이었다.

 

논가의 고들빼기꽃
논가의 고들빼기꽃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소설 ‘희랍인 조르바’를 연상케 하는 남자라고나 할까. 내가 미처 몰랐던 내 안의 선입견을 여지없이 깨트려준 남자였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으니 나로서는 은근 자존심이 상하면서 부끄러웠고, 그럴싸한 핑계거리가 없는 한 찾아가기조차 어렵던 거였다. 그런데 애호박이라고 하는 매우 적절한 오브제가 생겼다.

사람에게서 좋은 말 한 마디 듣기가 무척 어려워진 세상이 되고 말긴 했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말을 걸다 보면 기적처럼 감탄사를 터뜨리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는 말을 언제 누구한테서 들었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그 말을 새삼 생각나게 하는 발언이 그 남자의 입에서 나왔었다.

“거꾸로 보면 진짜가 보인다고?”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갑자기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누구나 그런 정도의 말을 할 수 있기는 하다. 나 또한 물구나무서기를 좋아하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보는 사물은 예전에 몰랐던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정도야 뭐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개인의 자각일 뿐 다른 사람에 내게 해준 말은 아니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사실 그 남자를 세상에서 둘도 없는 한심한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앉았다 하면 오직 하나 텔레비전만 들여다볼 뿐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도무지 관심을 안 가져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밖에서는 또 무슨 일을 하고 있을 때건 라디오 볼륨을 한껏 높여놓고 별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내가 그 남자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도 사실은 그것 때문이었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봐도 그의 언행은 내게 익숙하지가 않았다. 야아 이 남자 희한한 캐릭터네? 그런 놀라움으로 고개를 잇달아 갸웃거렸던 게 일 년은 넘고 이 년은 채 안 된 어느 날이었다.

도시에서는 구경하기도 어려운 연쇄점 간판을 내건 구멍가게 앞 느티나무 아래 대나무 평상에서였다. 생전 처음 자기 논을 갖게 돼서 좋아 죽겠다고, 지나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붙잡아 앉혀놓고 맥주와 소주, 막걸리를 무작위로 권하며 축하해 달라고 외치는 남자가 있었다.

서울 여의도에서 대통령 취임식 행사가 열리던 날이었다. 상상도 못해본 대통령의 출현으로 마음이 끝 모르게 황량해진 나는 여기저기 아무 데로나 차를 몰고 다녔다. 그때 어느 순간 그 남자의 그런 희한한 이벤트가 포착되었다.

 

애호박 말리기
애호박 말리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오늘 같이 우울한 날 축제에 버금가는 술 파티를 대낮에 벌인다? 저 남자 혹시 호남극우라 불리는 그쪽 계열인가?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갑자기 들려온 전쟁 운운하는 얘기가 내 발길을 잡았다. 이제 곧 전쟁이 터질 거라고, 전쟁이 터지면 대도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죽는다고, 그래서 자기는 도시 생활 그만두기로 했다는 거였다. 전쟁이라고? 망설일 것도 없이 내 귀가 활짝 열리고,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단대동에서 사십 년도 넘게 살아 왔다고 했다. 어린 시절에는 공장을 다녔고, 얻어맞는 것이 싫어서 공장을 나온 뒤에는 등에 커다란 망태를 둘러매고 다니면서 돈이 될 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집게로 집어넣는 이른바 ‘넝마주이’를 했고, 그 일 자체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해서 강제로 퇴출된 뒤에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하루 종일 “고물 삽니다, 고물 파세요”를 외치고 다녔을 뿐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재명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기 집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집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초조해본 적도 없고, 부자는 아니지만 가난을 느껴본 적도 없는, 한 마디로 말해서 좋은 게 좋다는, 살아 있음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인식으로 살아온 사람 같았다. 그런 그가 대통령 선거 개표방송이 끝난 직후에 갑자기 다른 것을 보게 되었다는 거였다.

좋은 말로 하면 대오각성이겠고, 나쁘게 표현하면 정신이 홱 돌아버린 상황이었다고 말할 만했다. 불교에서 말하는 돈오돈수가 어쩌면 그와 같은 급변인지도 모르겠다. 새하얀 눈이 허벅지 높이까지 쌓인 깊은 산속 소림사에서 단칼에 자신의 팔에 베어 눈 위에 붉은 피를 뿌려놓고 여기 붉은 꽃이 피었다고 외쳤다는 달마대사의 첫 번째 제자를 얼핏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전쟁 운운한 것은 표면상으로 내세운 구실일 뿐이었다. 그가 절박하게 원한 것은 사십 년도 넘게 살아오면서 관계를 맺어온 수많은 친구와 이웃들을 더 이상은 안 보고 싶다는 거였다. 안 보고 싶은 이유가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보고난 직후에 갑자기 생겼다고 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는 거였다. 정나미가 떨어진 명확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자기 자신도 알 수 없었다.

 

애호박은 주렁주렁
애호박은 주렁주렁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당연하게도 아내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친구도 없고 친척도 없는 시골 생활은 아내의 미래가 아니었다. 그는 아내를 설득하다 포기하고 연립주택 전세금을 빼서 반씩 나눠 각자의 길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아내는 어처구니없게도 마치 이것 먹고 떨어지라는 듯이 통장 하나를 내놓았다. 그동안 남편 모르게 적금도 넣고 계도 들고 해서 모아놓은 돈이 이만큼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그 돈을 들고 전라도로 와서 논 세 마지기와 밭 한 마지기를 사고, 살림이 가능한 컨테이너도 한 대 들여놓고 농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해보는 농사라서 날마다 좌충우돌이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기계로 처리하는 벼농사는 그런대로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해볼만 하다는 거, 이게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는가는 가을이 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벼농사는 때에 맞춰 논바닥을 바싹 말렸다가 다시 물을 넣고 또 말리기를 되풀이해야하는데 그가 산 논은 지대가 낮아서 그게 거의 불가능했다.

간단히 말해서 그가 산 논은 비가 적을 때는 좋은 땅이었다. 하지만 비가 많을 때는 매우 안 좋은 땅이어서, 여름 내내 그의 논은 물에 잠겨 있었고, 그 바람에 벼들은 세상 넓은 줄 모르게 좌로 우로 포기를 늘리기만 했을 뿐 벼이삭을 준비하지는 못한 채로 가을을 맞이해 버렸다. 멀리서 보면 이삭이 제법 튼실한 것 같지만, 손으로 만져보면 홀쭉한 것이 쭉정이가 태반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억새꽃 하나는 멋지게 잘 피었다. 그러니까 벼농사를 지은 게 아니라 억새꽃 농사를 지으신 거네?”

“아이고 난 이것이 더 좋아. 벼농사 저것도 그냥 둘 거야.”

들고 간 애호박을 내려놓으면서 감탄사를 토해내는 나를 한동안 쳐다보던 그가 또 한 번 허 찌르는 소리를 했다. 농사 망쳤다는 핑계로 수확을 안 하고 두면 새들이 날아올 거라고, 겨우내 새들 구경하는 재미를 누리게 됐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새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다 먹어버리면 어쩌나 그게 오히려 걱정이라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듣고 머쓱해 하는 나를 내버려둔 채 그는 컨테이너 안으로 들어가서 텔레비전을 켜고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무슨 재미있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들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었다. 각종 방송의 각종 뉴스나 시사토크 같은 것들을 거의 직업적으로 찾아다니며 집요하게 응시하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예의 거꾸로 보면 진짜가 보인다는 말을 상기하곤 했다.

 

쭉정이만 남은 벼농사
쭉정이만 남은 벼농사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거꾸로 보면 진짜가 보인다는 그 말은 뉴스의 절반 이상이 거짓이거나 가짜라는 것을 알면서 본다는 뜻이었다. 아예 안 보면 그것조차 알아내지 못했겠지만, 계속해서 보다 보니 왜 저런 가짜뉴스를 만들어내는지 알 것 같고, 그 사람들의 최종 목적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도 알겠다는 마음이어서, 그래서 더욱 열심히 본다는 거였다.

“내가 그때만 해도 거꾸로 생각할 줄을 몰라서, 그래서 선거운동을 왜 그렇게 하는지 이해를 못했거든. 거꾸로 생각하고 보니까 알겠더라고.”

그만 돌아가 봐야겠다고 일어서는 나를 따라서 컨테이너 밖으로 나온 그가 전혀 예상 밖의 얘기를 중언부언 흘려주었다.

“그 사람들은 자기 당 후보가 당선되는 선거운동을 한 게 아니라 떨어지는 선거운동을 했던 거더라고. 왜냐고? 옛날 같으면 자기네 집 하인이나 머슴살이 밖에 못할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까지 올라선 게 마음에 안 들고 짜증이 났던 거지 뭐. 저런 가짜뉴스가 아니었으면 나는 아마 그것도 모르는 채로 왜, 왜, 왜, 하고 지금도 이해를 못해서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겠지.”

사심 년도 넘게 교류해 온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보았고, 그래서 더 이상은 얼굴도 안 보고 싶어졌다는 얘기를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하는 것 같았다. 사람의 질투와 시기심이라는 게 얼마나 한심하게 무서운가를 알고 나니 사람 세상을 일단 떠나고 보자는 결심을 했다는 얘기인 것 같기도 했다.

쓸쓸한 날이었다. 산들바람에 살살 흔들리는 억새꽃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문득 저것도 꽃인가? 꽃이라고 해야 하는 거야? 하는 뜬금없는 의구심이 들어서 한참을 서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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