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현의 와인이야기-10]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가 작년 8월 출시한 보르도 와인 '샤또 마르소 (Chateau Marsau)' ⓒ위클리서울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가 작년 8월 출시한 보르도 와인 '샤또 마르소 (Chateau Marsau)' ⓒ위클리서울 /박재현

[위클리서울=박재현] 새해 아침. ‘새해’라는 단어의 어감이 참 좋다.
현재는 과거 흘러간 시간들의 집합이라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새해’라는 단어의 마법 같은 힘
을 빌리고 싶다.
신기한 일이다. ‘새-‘라는 접두어를 붙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달리 보이고 벅찬 희망을 준다.
‘새집’, ‘새옷’, ‘새다이어리’, ‘새해’…...
어제가 다소 실망스러웠더라도, 어제가 제아무리 힘들었더라도 오늘은 새로 시작하는 날이다.
첫날이니까, 다급할 것도 없다. 안단테 칸타빌레. 걷듯이 천천히 노래하듯이.

새해 아침 음악을 들었다.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제1번 제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 흥겨운
듯 애잔한 선율이 귓속을 울린다. 필자는 악기를 다룰 줄도 모르고, 음악 작법을 배워본 적도
없지만, 고전 음악이 주는 충만함과 고양되는 느낌을 퍽 좋아한다. 새해 첫날에만 느낄 수 있
는 잔뜩 부푼 느낌과 잘 어울린다. 이 곡이 더욱 좋은 이유는 연주 지시어인 ‘안단테 칸타빌레’ 때문이다. 연주 지시어가 워낙 유명해서 원래 작품 번호보다 오히려 연주 지시어로 더 자주 소개되는 곡이다. ‘걷듯이 천천히 그리고 노래하듯이’. 

고전 음악을 듣다 보면 앨범 커버나 속지에 적힌 연주 지시어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곡가가 시공간을 거슬러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다. ‘이 악장은 이렇게 감정을 실어서 연주해
주세요’, ‘이 부분은 이런 빠르기로 연주해주세요’.
몇 가지만 예로 들면, largo(라르고) – 매우 느리게, andante(안단테) – 걸어가듯이, 천천히, 
allegro(알레그로) – 빠르게, ma non troppo(마 논 트로포) – 지나치지 않게, cantabile(칸타빌레) – 노래하듯이, espressivo(에스프레시보) – 감정과 표현이 풍부하게.
이런 지시어들이 연주자들마다 어떻게 다르게 해석되고 표현되는지 집중하는 것도 고전 음악
듣기의 즐거움이다.

새해 첫날이니까 앞으로 하지 않을 좀 엉뚱한 상상을 해보자.
만약 와인이 음악이고, 와인메이커가 작곡가라면?
그리고 우리가 연주자라면?
그런데 ‘작곡가’가 깜빡 잊고 연주 지시어를 하나도 적어 놓지 않았다면?
어떻게 ‘연주하는가’는 순전히 우리의 몫이 될 터이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향긋한 향과 달콤한 맛이 매력적인 모스카토 와인을 마실 때는, 더없이
사랑스럽게 – amabile(아마빌레).
축배의 자리나 환호의 순간에 빠질 수 없는 샴페인을 마실 때는,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
brillante(브릴란테).
사색에 잠겨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말없이 동반자가 되어주는 빈티지 포트를 곁들일 때,
차분하고 온화하게 – quieto(키에토).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와인을 즐길 때만이라도 다양한 ‘연주 지시어’를 상상하며 우리 삶을 더
풍성하게 연주해보자.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박재현 (주)인디펜던트리쿼코리아 전략기획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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