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수복의 시골살림 이야기

[위클리서울=김수복 기자] 2022년 7월 뉴스 공급매체로 유명한 ap통신사는 의미심장한 뉴스거리 하나를 각국에 전송했다. 도쿄전력 전 회장을 포함한 경영진 5명이 연대해서 한국 돈으로 환산하자면 127조 원을 도쿄전력에 배상하라는 판결이 일본 법원에서 나왔다는 내용이었다.

일본 사법사상 최고액의 배상 판결이라는 사족이 붙어 있었고, 판결 결과에 만족해서 환호하는 소송당사자들의 피켓시위 현장 사진이 첨부돼 있었으며, 이 사람들은 총 48명으로 도쿄전력 개인 주주들이라는 설명과 함께 후쿠시마 사태 이전부터 핵발전 비율을 대폭 낮추거나 아예 없애라는 요구를 꾸준히 해온 사람들이라는 해설이 곁들여 있었다.

 

ⓒ위클리서울/ 도쿄전력 홈피 캡쳐
ⓒ위클리서울/ 도쿄전력 홈피 캡쳐

도쿄전력은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사기업이었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태 이후 일본 정부가 관리 감독하는 공기업으로 신분이 전환돼 있었다. 그러니까 법원의 판결은 결과적으로 국가에 손해를 끼친 기업인들이 연대해서 국가의 창고를 채우라는 얘기였다. 그런데 돈을 최고의 신으로 모시는 기업인들이 그만한 돈을 정직하게 자기 이름으로 갖고 있다가 예, 하고 얼른 내놓을까? 아니 그보다도 127조원 따위로 그 엄청난 사태를 없었던 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2023년 6월 일본에서는 ‘열람즉시회수’와 ‘사외비’라는 이중 보완이 걸린 문건 하나가 유출돼서 한국으로까지 건너왔다. 이 문건은 후쿠시마 핵물질 오염수 방출을 위해 일본 당국이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손을 써 왔는지, 성공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국제기구 어디의 어떤 개인들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 왔는지 등등 대단히 무섭고 끔찍한 내용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었다. 보도가 나온 다음 날 일본 정부는 보도 내용에 대해 ‘반대’한다는 매우 이상한 논평을 내놓았고, 한국의 외교부는 일본 정부의 논평을 그대로 인용한 입장문을 냈다.

이 끔찍한 문건의 진실성 여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문제를 정직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약해 보인다는 추론에 힘을 실어주기는 한다. 하긴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최소 삼십 년은 지나야 어느 정도나마 가닥이 잡힐 거라는 얘기를 하는 것일 게다. 그 이유는 첫째 비밀이 너무 많다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잔꾀를 너무 많이 쓰기 때문이란다. 눈앞의 작은 손해를 회피하려 하다가 더 큰 손해를, 인류 전체를 불안에 빠트릴 수도 있는 정책을 서슴없이 입안하고 입안한 즉시 발표하는 무리수를 반복하는 식으로 진실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어서 국제사회가 제대로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핵발전 사태 이후 지난 십여 년 동안 도쿄전력과 일본 당국이 취해온 행태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두 가지 흥미로운 키워드가 떠올라 온다. 하나는 자본에 대한 지나친 숭배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가설이고, 다른 하나는 과거 크렘린궁을 연상케 할 정도의 철옹성 같은 비밀제일주의는 일본 정부 특유의 오만과 근거 없는 자신감의 또 다른 모습일 거라는 추론이다.

인류사에서 자본제일주의가 본격적으로 체계화된 지점을 찾기로 하자면 아무래도 유대교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던 유대교가 기독교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또 밀리다가 여행의 자유를 압류당하고, 거주 이전의 자유까지 억압당하고 게토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가축처럼 살아가야 하는 처지로까지 전락했을 때,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직업도 당연히 한정돼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사채업이었다.

예수가 유대교 신전 앞에서 사채업자를 심하게 나무란 이후 돈으로 돈을 버는 행위는 유럽 사회에서 오랫동안 천직 중에 천직으로 치부되었다. 세월이 흘러 미국 등 제국주의 세력들이 그런 천직을 주목하고 배워서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을 때, 돈놀이 전문가인 유대인들은 이제 금융 컨설턴트로 거듭나서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1945년 형식상의 항복선언 이후 자본주의 종주국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해 온 일본 역시 돈이라면 무엇이든 다한다는 의지로 충만해져 갔다.

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는 자본주의 자체가 지닌 모순 때문에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이때의 자체 모순이란 자본의 속성을 말함이었다. 자본의 속성이란 강력한 접착제 또는 자석과 같아서 돈을 끌어 모으는 데만 열과 성을 다한다. 자선사업이니 뭐니 각종 부드러운 사업을 벌이기는 하지만 이것도 궁극적으로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한 전략 또는 속임수일 따름이다. 자본가의 최종 목표는 세상에서 제일가는 부자로 등극하는 것이기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아이템이 아닌 한 돈 쓰는 일을 극력 회피하고자 하고, 어떤 경우라도 손해를 용납하지 않으며, 손해가 발생하면 자존심이 심하게 상해서 관계자를 즉각 해고해 버린다.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후쿠시마 사태가 발발했을 당시 도쿄전력 수뇌부가 내린 결정을 보면 자본주의가 무엇인가를 절절하게 느낄 수 있다. 사고 직후 도쿄전력 산하 후쿠시마 발전소장은 즉각 바닷물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외부 전력이 끊겨서 담수 펌프를 가동할 수가 없게 되었고, 핵물질은 일단 불이 붙었다 하면 꺼지지 않고 계속 온도가 높아져서 모든 것을 다 녹여버리는 융용 상태에 접어들기 때문에 이런 최악의 사태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바닷물을 끌어 들여서라도 막아야한다는 의견이었다.

발전소장의 이런 의견에 대한 도쿄전력 수뇌부의 답변은 ‘너 미쳤구나’하는 요지의 호통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바닷물이 들어가면 기계가 부식되고, 그러면 발전소가 통째로 못 쓰게 되는데 일개 소장 따위가 감히 그런 의견을 내느냐는 것이었다. 소장은 체르노빌 사태를 예로 들어가며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최종 결단을 유도하고자 했지만 수뇌부의 반응은 더욱 차가워졌다. 공산당이 허접한 기술로 만든 체르노빌과 초현대식 과학기술의 집합체인 도쿄전력을 감히 비교하느냐? 도쿄전력 수뇌부의 이런 질책 앞에서 현장소장은 할 말을 잃었고, 골든타임을 놓친 핵발전소는 기어이 땅을 태우고 들어가는 용융 상태에 접어들고 말았다.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소비에트연방화국의 일원이었던 시절에 발생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지진도 아니고 해일도 아니고 토네이도의 습격도 아닌, 엔지니어 몇 명의 사소한 부주의가 자아낸 어이없는 참극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사고를 접한 비밀의 궁전 크렘린은 즉각 특별반 투입을 지시했고, 이렇게 해서 저 유명한 ‘25인 결사대’가 탄생했다.

현대적 기술을 자랑하는 도쿄전력 수뇌부가 인식하지 못하는 핵물질의 강력한 독성을 ‘허접한’ 공산주의 국가 크렘린 수뇌부는 오래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25인 결사대’가 부여받은 명령은 어떻게 해서든 핵물질이 땅을 태우고 들어가서 지하수와 섞이는 용융사태는 막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는 임무였다.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를 연상케 할 정도의 무시무시하게 비장한 명령이었다. 아니다. 성격은 비슷하지만 내용은 완전히 달랐다.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는 파괴와 살인을 목적으로 결성된, 너도 죽고 나도 죽자는 자살집단이었지만 ‘25인 결사대’는 인류의 미래가 고려된 보다 긍정적으로 심각한 조직이었다. 이 심각한 결사대는 핵물질이 지하수에 섞이는 융용 사태를 간신히 막아낸 뒤에 한 명은 그날 중으로 사망했고, 24인은 차례차례 한 명씩 한 달 동안 전원 사망에 이르렀다.

 

방사성폐기물 처리처분
방사성폐기물 처리처분 ⓒ위클리서울/ 도쿄전력 홈피 캡쳐

일부 정치인들은 후쿠시마 사태와 체르노빌을 비교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한국의 핵발소에서도 온배수를 바다로 쏟아내고 있지 않느냐는 논리로 핵오염수 방류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한다. 이는 정치인들이 공부를 전혀 안 한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언론을 동원한 선전과 선동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되기도 한다.

핵을 신앙처럼 떠받드는 일부 과학자와 전문가 그리고 사업가들은 핵물질이 지하수와 섞인 것과 섞이지 않은 것의 차이를 거의 설명하지 않거나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대부분의 핵발전소에서 바다로 내보내는 온배수는 핵물질을 감싸고 있는 거대한 파이프가 녹아내리지 않도록 식히는 역할만 했을 뿐이라서 핵물질과 직접 접촉한 경험이 없다는 설명도 거의 하지 않는다.

지금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핵물질이 지하수와 섞인 채 지상으로 방출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태 직후 도쿄전력 수뇌부는 자기들이 보유한 이른바 초현대식 기술로 용융사태 정도는 가볍게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일까? 하나씩 밝혀지는 당시의 사정을 종합하면 그런 자신감조차도 없었던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발전소만은 살려 내야 한다는, 돈이 불에 타거나 물에 떠내려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 하나로만 충만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말해서 도쿄전력 수뇌부의 머릿속에 인류의 미래 따위는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불타는 의지는 ‘도쿄전력’이란 명칭의 사기업이 완전 망해서 일본 정부의 직접 지배체제로 넘어간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아니다. 변하긴 변했다. 외무성 등 관련 기관이 총동원돼서 저마다의 네트워크를 풀가동하는 문제없다, 위험하지 않다는 내용의 선전, 선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핵발전 관련 국제기구의 전문가들을 회유 또는 매수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첨단액체처리시스템(alps)’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핵종을 걸러낸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지만 누가 어떤 계산 방식으로 만들어냈는지, 무슨 핵종을 얼마나 정교하게 걸러내는지, 필터의 소재와 성질은 무엇이며 교체 주기는 얼마인지 등등 중요한 내용은 하나도 밝히지 않았다. 그것을 물어보면 영업비밀이라서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반복한다.

얼마 전에는 초현대식 기술을 총동원해서 특수 로봇을 제작한다는 발표가 나왔었다. 내부 상황을 알아보고 싶지만 사람이 들어갈 수는 없고, 그래서 특수 로봇을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나서 마침내 특수로봇 제작이 완료되어 곧 투입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로봇을 투입한 결과에 대한 공식 발표는 나오지 않았다. 로봇이 현장에 도착한 즉시 작동정지 상태가 돼버렸다는 출처 불명의 소문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 말인즉 폭발이 있은 지 십 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핵물질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고, 기계마저 파괴할 정도의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었다.

도쿄전력 내부에도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몇 가지 긍정적인 의견을 내기는 했던 모양이다. 그 중에 하나가 콘크리트로 거대한 인공 호수를 만들어서 오염수를 보관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핵오염수에 시멘트를 부어서 고체화 하자는 안이었다. 두 가지 안 모두 도쿄전력 수뇌부와 일본 정부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이유는 당연히 하나, 오직 하나 돈 때문이었다.

인공호수나 고체화에 드는 비용이 천문학적이라면, 바다로 흘려보내는 비용은 너무나 저렴해서 마치 횡재라도 한 느낌이었을 것 같기는 하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인류가 멸망하지는 않으니까, 나중 일은 나중에 고민하기로 하고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흉측한 오염수부터 치워버리자는 쪽으로 아마 어려운 최종 결정을 내렸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와중에 뇌물 의혹이 불거져 버렸으니, 도쿄전력은 이제 새로운 개념의 우왕좌왕으로 접어들게 될 것인지, 그냥 눈 딱 감고 해치워버릴 것인지, 당분간은 숨 막히는 긴장의 시간이 길게 늘어질 것 같다. <김수복 님은 중편소설 ‘한줌의 도덕’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하던 일을 접고 낙향, 뭇 생명들의 경이로운 파동을 관찰하며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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