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아제르바이잔, 바쿠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아제르바이잔에 왜 갔냐면

우크라이나로 먼저 떠난 진을 보내고, 나는 한낮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다냐가 키우는 하얀색 토끼가 건물 중정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방금 떠난 진이 꼭 마트에 들렸다가 무언가를 잔뜩 사 들고 다시 돌아올 것만 같았지만 그리움의 감정은 아니었다. 단지 사람이 없는 텅 빈 상태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트빌리시의 볕은 여전히 밝았고, 그새 익숙해진 몇몇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났거나 잠시 자리를 비웠다.

나는 기어이 한국까지 가져갈 요량으로 구입한 조지아의 와인과 증류주 ‘짜짜’를 바라보았고, 지나온 날들과 지난 날들에 대해 생각했다. 다냐의 토끼는 계속 뛰어다녔으며 아쉽게도 자리를 비운 다냐와는 인사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이 우크라이나로 떠났고 러시아인 다냐가 게스트하우스에 남았다는 게 묘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세상은 원체 묘한 것으로 가득하다. 돌아본 자리는 다 제각각의 의미로 알아서 늘어선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아침에 꾼 꿈을 돌아보았을 때, 알 수 없는 혼란한 꿈의 사건들이 이상한 의미를 알아서 띠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지아에서 다른 나라로 향할 때,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중 한 쪽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했다. 튀르키예의 동쪽을 여행할 때 맞은편 국경에서 바라보았던 아르메니아에도 가보고 싶었다. 이 코카서스 지방의 오랜 토착민이자, 그들 고유의 문자와 교회를 유지하고 있는 동시에 다른 코카서스 3국처럼 소련에 소속되어 있던 나라. 그들의 수도 예레반에서 정말 내가 보았던 아라라트산이 보일까 궁금했지만, 어쩐지 나는 아제르 바이잔으로 향했다. 꿈에서 아제르바이잔의 이름을 들었고, 사실상 그 꿈을 핑계로 이 긴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무슨 계시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나라의 사람들이 나를 찾아오고, 그들의 나라로 나를 데려가서 환대하는 꿈이 신기하고 좋았을 따름이다. 마침 긴 여행을 계획하는 중에, 그 꿈 생각을 하며 마치 최종 목적지처럼 아제르바이잔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 루트를 생각했다. 왜 그곳에 갔냐는 질문에 꿈 때문에 갔다는 농담을 하고 싶은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여차저차 아제르바이잔을 향해 가는 중, 내가 알게 된 그 나라는 내 꿈과는 분명 달랐다. 꿈속에서 아제르바이잔은 초록색 숲이 우거진 야트막한 동산 같은 곳에 있었는데, 아제르바이잔의 별명은 ‘불의 나라’였다. 사막 같은 지형에서 꺼지지 않는 불이 흘러나오는 나라. 바로 아래로는 이란으로 이어지고, 사실상 호수인 카스피해에 뿔처럼 솟아 있는 나라.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아무튼 여기까지 왔는데 아제르바이잔을 가지 않는 건 너무나 아쉬웠다.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이 사실상 전쟁 중이라(내가 귀국한 이후에 실제로 전쟁이 발발했다), 한쪽에 방문하면 아무래도 다른 쪽에 방문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였다. 기껏 찾아갔는데 공항이나 육로 국경에서 거절당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한참 고민하는 척하다가 나는 아제르바이잔에 가는 쪽을 택해 비행기표를 샀다. 조지아에서 육로로 넘어가기에는 시간과 비용 모두 손해였다.

한때는 모든 길을 육로로 다니려는 이상한 다짐을 했었으나, 육로로는 다른 나라로 갈 수도 없는 한국에 살면서 그건 또 무슨 고집인가 싶어 필요할 때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인도에서 만난 어떤 벨기에 청년은 태국에서 탄 3인용 오토바이 툭툭으로 벨기에까지 육로로 돌아가는 중이었는데, 그는 과연 잘 돌아갔을지 궁금하다. 인도에서 파키스탄과 이란을 지나 터키를 지나는 길을 과연 갈 수 있었을까. 나는 아마도 결국 그가 비행기를 타고 머쓱해 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모험심이 철없는 자의 소행은 아니니, 그를 생각하며 그의 안녕을 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싸올과 니하오의 밤

비행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인 바쿠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익숙한 튀르키예 말이 들렸고, 익숙한 향신료의 향이 스치는 것 같았다. 아제르바이잔은 사실 튀르키예와 같은 민족이다. 육로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지만, 민족이 같고 말도 거의 같다. 약간의 사투리를 쓴다고 해야 할까. 같은 민족 다른 나라라고는 70년 전에 갑자기 다른 나라가 된 북한밖에 모르는 한국 사람으로서는, 다소 색다른 느낌이었다. 한국에 비유하자면, 제주도가 다른 나라인 경우라고 해야 할까. 민족도 거의 같고 말도 알아듣겠지만 다른 나라.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크 민족이 카스피해 서쪽 뿔처럼 튀어나온 지역에 자리 잡은 곳에 있었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하지만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은 꽤 다른 일들을 겪었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란 사파비 왕조의 발흥지이고, 카스피해를 끼고 있는 산유국이고, 소련에 속해 있던 공산주의 국가였다. 지금은 경제적으로 발전하며 현대식 유리 건물들을 줄줄이 세워 놓고 있는, 분명 ‘기름 나는 국가’ 느낌이 나는 곳이었다. 이미 튀르키예를 여행했지만 내게는 낯설고 생소한 기분을 주는 나라였다. 화폐 단위는 ‘마낫’이었는데, 1마낫이 1300원 정도 할 정도로 화폐의 단위도 달러나 유로 같은 느낌을 주었다. 생각해보면 중동의 산유국 느낌이 나는 나라는 처음이었고, 어쨌거나 결국 내게 바쿠는 트빌리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뜨거운 태양과 이상한 외로움이 공존하는 기름 도시로 남게 되었다. 갑자기 둘이 여행하다가 너무나 혼자가 되었기 때문일까, 나는 바쿠에서 이상하리만치 대화를 할 일이 없어서, 점차 2층 침대 지박령이 되어갔다.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처음 바쿠에 도착한 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찾아간 철도역 터널에서 만났던 두 명의 청년은 분명히 기억한다. 그들은 내가 친하게 지냈던 튀르키예 친구들과 비슷하게 생겼다. 내게 다가온 그들이, 어디에서 왔냐고 아제르바이잔에 왜 왔냐고 물으며 웃었던 것이 떠오른다. 내가 아는 몇몇 튀르키예어를 던지자 그들은 웃으며, 아제르바이잔어로 ‘감사하다’를 의미하는 ‘싸올’을 알려주었다. 그들과 몇백 미터는 되었을 긴 터널을 걸으며 함께 웃었고 나는 도착하자마자 어느 정도 마음을 놓았다. 싸올, 싸올, 다른 길로 향하는 그들의 뒤에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찾아오는 소음. 떼로 악을 지르고 있는 중국인 관광객들. 어두운 철도역과 그들의 소음. 그들은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자기들 표를 보여준다. 그들은 기차역과 지하철역을 헷갈렸다. 그들의 표는 이미 떠난 열차를 표시하고 있다. 그들에게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들은 나를 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악을 쓴다. 내 중국인 친구 단이 이걸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하면서 나는 아제르바이잔의 밤 속으로 걸었다. 게스트하우스를 찾기 위해 2시간 정도 더 헤맬 미래를 향해서. 핸드폰 배터리가 꺼져 전전긍긍할 미래를 모르고. 나의 뒤로 오래 울렸던 사람들의 소음. 나는 싸올, 그들의 뒤에 인사말을 던지고 내가 모르는 내일로 갔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