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트빌리시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결국은 맥도날드

카즈베기에서 트빌리시로 돌아왔을 때는 꼭 집에 온 것 같았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의 같은 자리로 돌아온 진과 나를 사람들은 그대로 반겨주었다. 러시아인 스태프 다냐와 그녀의 토끼도 그대로 있었고, 머리가 반짝거리는 마른 태국 변호사 아저씨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기타를 치고 있었다. 카즈베기가 얼마나 좋았는지, 그 산이 얼마나 컸는지 하는 나의 이야기를 그는 잘 들어주었다. 방에는 몇몇 새로운 사람들도 있어서, 그들과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면서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태국 방콕의 공식적인 명칭이 사실 엄청나게 길다는 것을 아저씨는 말해주었을 때 나는 한국어로 검색한 그 이름을 바로 줄줄 외웠다. 크릉텝 마하나콘 아몬 라따나꼬신‧‧‧ 발음나는 대로 한글로 쓰인 그 이름을 외우자 사람들은 내가 태국어를 할 줄 아는 줄 알고 놀라며 웃었고, 나는 한글의 위대함에 과장된 제스처로 뽐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간단한 재롱을 통해 모르는 사람들과 친해졌던 것 같다. 트빌리시에서는 재롱이 성공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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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과 트빌리시에서 며칠 더 보내기로 했다. 그는 그 이후에 우크라이나로 갈 예정이었고, 나는 아제르바이잔을 거쳐 우즈베키스탄 쪽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거의 한 달 넘게 함께 했던 그와의 마지막 여행지인 셈이었는데, 애틋한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한 시기가 끝난다는 것, 시간이 아무쪼록 흘러버렸다는 것, 또 새로운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걸었다. 나는 여행을 하며 사실 진에 대해 생각하기보다 나에 대해서 훨씬 많이 생각했는데, 이왕이면 그의 이야기도 더 물어볼걸, 하는 마음도 들었지만 따로 또 같이 여행하는 편안함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함께 여행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적어도 여행하는 동안 나는 진이 햄버거와 한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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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그다지 우리 입에 맞지 않았던 조지아에서 우리는 햄버거를 자주 먹었다. 함께 튀르키예를 여행할 때만 해도 내게 거의 모든 튀르키예 음식이 맛있어서,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나 한식집을 찾아가고 싶어 하는 진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 조지아에서는 자꾸 발 길이 맥도날드로 향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비슷한 맛이 나는 신비한 가게‧‧‧ 어딜 가든 최소한의 맛은 보장하는 전 세계를 집어삼킨 햄버거‧‧‧ 카즈베기에서 막 돌아왔을 때 우리가 찾아간 곳도 결국 시내에 있는 대형 쇼핑몰 맨 위에 있는 맥도날드였다. 트빌리시의 중심가는 그야말로 깔끔하고 번듯했다. 깨끗한 유리창이 반짝거렸다. 다른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이를테면 ‘세계’와 외떨어지지 않은 글로벌한 모습. 유럽인지 아시아인지, 어디에 붙어 있는지 헷갈릴 만도 한 오래된 구소련 국가에서 먹는 맥도날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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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놀이동산

트빌리시 시내에는 그렇게 넓지 않은 굴곡진 강이 흐르고, 그 옆으로는 풀과 나무들이 많고, 도시에는 짙은 초록이 덮인 공원이 많았다. 시내 중간에 있는 다리나 조형물에는 유리로 덮인 현대식 건물들이 있었고, 도시 깊숙이 들어가면 유리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조지아식 성당들이, 또 소련 시절에 지어졌을 듯한 투박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숨어 있었다. 러시아에서 자주 마주했던 콘크리트 지하도로 들어가면 온갖 그래피티가 칠해져 있었는데, 무서운 분위기는 전혀 없었다. 세상이 다 망했으면 좋겠다는 엇나간 친구들의 무서운 그래피티보다는, 세상이 사랑으로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부드러운 예술가들의 그래피티가 훨씬 많았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날씨가 좋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진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트빌리시는 쾌적한 물의 도시, 자유로운 예술의 도시, 세련되었지만 너무 젠체하지는 않는 느낌의 도시였다. 지금도 여행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도시 중 하나로 매번 트빌리시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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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소담하고 세련된 트빌리시 시내 뒤로는 적당한 크기의 산이 있었는데, 그 산 위에는 서울의 남산타워처럼 티비 전파를 위한 타워가 세워져 있어, 어디를 가든 눈에 띄었다. 찾아보니 그 근처 맨 위에는 놀이공원이 있다고 했다. 경사로를 오르는 트램을 타고 올라가는 놀이공원, 나는 놀이공원보다 그 트램을 타고 싶은 마음에 결국 진을 끌고 그 놀이공원에 갔다. 가파른 산을 오르는 트램을 타며, 왜 어딘가로 오르내리는 트램을 타면 여전히 신이 나는지,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새로운 길 같지 않은가, 생각하며 홀로 신나 했다. 정말로 산 위에 있던 놀이동산에는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었다. 약간 낡은, 또 그래서 편안한, 평일 낮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아이들도 거의 없는 한적한 놀이공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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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공원 아래로 펼쳐진 트빌리시의 시내를 돌아보다가, 작은 롤러코스터를 타기로 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놀이공원에 가면 꼭 중요한 롤러코스터는 무서워서 타지 못하는 어린이였는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아주 조금씩 롤러코스터에 도전 중이었다. 별생각 없이 한번 타보자고 건넨 말에 한참을 고민하는 나를 보며 진은 웃었고, 나중에 찾아보니 그의 일기에도 그 장면을 적어 놓은 것을 알았다. 타기 전에는 고민하고, 타기 직전에는 용기를 북돋다가, 떨어지기 직전에 이르러서는 벌벌 떨며 절망하고, 다 타고 나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굴었던 나의 모습을 진은 꽤 흥미롭게 기억한 듯하다. 사람도 없는 놀이공원에서 그와 잠시라도 함께 놀았던 것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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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시절

맥도날드와 놀이공원을 지나 우연히 도착한 곳은 트빌리시 시내에 좌판처럼 펼쳐진 구제 시장이었는데, 제대로 된 시장은 아니고 사람들이 공원에 대충 돗자리나 매대를 펼쳐 놓고 무언가를 파는 벼룩시장 같은 곳이었다. 무엇을 파나 둘러보니 대부분이 소련 시절 물품들이었다. 레닌소년회 뱃지라든지, 소련공산당을 기념하는 뱃지들, 그 당시에 쓰이던 시계들, 각종 골동품들. 소련으로 겪은 시간들이 그 좌판에서 팔리고 있었다. 이제는 기념품이 된 망한 대국의 굿즈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보다 좋은 기념품이 있나 싶어 뱃지 몇 개를 샀다. 레닌의 옆얼굴이 그려진 뱃지와 공산당 마크가 그려진 커다란 뱃지. 공원의 좌판에서 그렇게 어떤 시대가 소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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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던 나는 좌판에서 꽤 유명한 카메라를 발견했다. 지금도 쓰는 사람이 있는 카메라였는데, 브랜드의 이름이 러시아 문자로 적혀 있었다. 소련 시대에 쓰이던 카메라였던 것인데, 어쩌면 한국에 돌아와 비싸게 팔 보물을 발견했다는 흥분, 반대로 그냥 내가 써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결국 그 카메라를 사 왔다. 흥정을 하려고 했지만 단호한 좌판의 아저씨는 4만원 밑으로는 결코 팔지 않겠다고 했고, 4만원에 사온 그 카메라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채로 내 책상에 그대로 서 있다. 지금도 종종 그 카메라를 보며 나는 트빌리시를 생각하고, 그 카메라를 들고 신난 마음에 반짝이는 물빛을 따라 걸었던 트빌리시를 생각하고, 그때 잠시 샀던 뱃지를 들고 강물에 비춰 보았던 그날이 떠오른다. 작게 새겨진 레닌의 옆얼굴이 빛나는 강물 아래 지워지고 있었다.

나는 레닌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지만, 레닌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을 이 도시가 무언가를 지나쳐 보내고 있다고 아마도 나는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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