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타슈켄트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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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량진수산시장에서 타슈켄트를 말하기

에어컨 때문에 얼음처럼 차가웠던 우즈베키스탄의 게스트하우스 방바닥에서 유아나의 이름을 처음 물어보았던 순간, 나는 그를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당연히 모르고 있었다. 다른 나라 이곳저곳을 거의 여름에만 돌아다니며 이제 더위에는 익숙해졌다고 자만하고 있었는데, 45도를 웃도는 우즈베키스탄의 폭염은 어쩔 수 없이 낯설었다. 건조하고 마른 햇빛이었다. 큰 빌딩 없이 수평으로 이어진 도시가 그 자체로 익어가는 한증막 같았다. 게스트하우스의 사람들은 그늘에 앉아 있거나 에어컨을 틀어 놓은 실내에서 저녁을 기다렸다. 그래도 그늘에 있으면 괜찮죠? 마음이 넉넉해 보이는 대머리 숙소 아저씨에게 끄덕거리며 에어컨을 찾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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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화장실 타일 같기도 했던 ‘타슈켄트 백패커스’의 방바닥에 늘어진 사람들 사이로 가끔씩 대화가 오갔다. 나는 전날 밤 제대로 듣지 못했던 유아나의 이름을 물었다. 루마니아에서 온 영여 교사 유아나. 그렇게 낯설다고 할 만한 이름은 아닌데도, 정확히 발음하는 법을 몰라 사람들은 유아나의 이름을 자주 헷갈렸다. 유나? 애나? 에이나? 이름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 중 한 명이었던 내게 다가와 유아나는, 나는 ‘유아나’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조금 덜 더워지면 사람들과 주변 박물관과 시장에 들릴 생각인데 너도 같이 갈래? 라고 물었던 유아나. 그렇게 따라간 사람들과의 동행 이후에 내가 얼마나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좋아하게 될 줄도 모른 채 나는 무심코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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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나가 한국에 오게 된 건 그후로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아직도 유아나가 어떻게 그 많은 여행을 다닐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유아나는 나와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이후로도 수많은 나라로 쏘다녔고, 이번에는 한국 차례였다. 한국에 들렸다가 일본으로 여행을 갈 생각인데, 한국에서 며칠 같이 다녀줄 수 있냐는 유아나의 메시지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며칠을 보낸 이후로 유아나는 내게 외국에서 만난 ‘누나’가 되었다. 그곳에서 며칠을 보냈던 사람들은 잠깐이나마 ‘가족’ 같았고, 유아나는 그 가족의 중심을 잡는 나의 누나 같았다. 국적도 성별도 배경도 판이하게 다른 몇 명의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는 가벼운 구심점이 내게는 유아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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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나를 데리고 서울 이곳저곳을 다녔다. 서쪽에 갔다가 동쪽에 갔다가, 유아나가 궁금해했던 곳들의 목록을 이어서 다녔다. 동대문디지털플라자부터 강남 봉은사와 신촌 대학가··· 유아나가 그때의 한국 여행을 어떻게 기억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때 그는 보이는 모든 것을 천천히 둘러보며 즐겼다. 같이 다니는 나도, 외국인의 눈으로 서울을 둘러보며 낯설게 다시 본 서울을 생경하고 신기하게 돌아보았던 것 같다. 유아나가 마지막으로 가고 싶었던 곳은 어떻게 알아냈는지 노량진 수산시장이었다. 새로 리모델링 된 이후로 이제는 호객 행위가 좀 줄어든 시장을 돌아다니며 회를 샀고, 2층 초장집에 들어가 소주를 시켰다. 소주를 따라주고, 따라받고, 이게 한국의 주도야, 농담 아닌 농담을 하다가 이야기했다. 그런데 우리, 타슈켄트에서 꽤 재밌었지? 유아나는 예전에 내가 끄덕거렸던 것처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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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비행기 타슈켄트에 도착합니다

아제르바이잔 여행을 마친 이후로 처음에는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들려보고 싶지만 못 갔던 나라도 물론 많았는데, 우선 한국에서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이왕 직항으로 입국할 수도 없는데, 다른 나라 한 곳을 더 들렸다가 가면 좋겠다 싶었다. 어디를 들려볼까, 생각하다 처음 떠올린 건 베이징었다. 베이징덕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베이징덕에 대한 환상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데, 방송으로 보는 베이징덕의 때깔은 늘 너무나 맛있어 보였고, 한국에서 먹어본 저렴한 베이징덕은 그다지 맛이 없었고, 왠지 베이징에 직접 가면 정말 맛있는 베이징덕이 있을 것만 같았다. 베이징덕만 베이징에서 먹을 수 있다면··· 다른 것은 감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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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 가지 않은 것은 비자 문자 때문이었는데, 경유를 위헤서라면 비자 없이도 중국에 잠깐 머물 수 있다고 해도 마지막 여행지에서 시간을 다투며 조급하게 있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베이징에서 못 먹어본 베이징덕을 뒤로하고 내가 선택한 곳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였다. 비행기 값도 괜찮았고,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에도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쩌다보니 내 여행은 거의 내 인식 속에 비어 있는 아시아 국가들을 채워가는 식으로 이어졌다. 유럽도 알겠고, 동북아시아도 알겠다. 그런데 예전에 사람들이 직접 걸어다녔을 그 사이의 나라들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마음이 들었고, 모른다는 마음이 호기심으로 이어져 직접 다녀오는 것으로 이어졌다.

근처 몽골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중앙아시아, 이른바 ‘스탄’이 붙는 나라들에 대해 거의 몰랐다. ‘스탄’이 ‘랜드’처럼 땅을 의미한다는 정도? 소련에 속했었고, 지금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지만, 중동에 비해 세속적인 문화권이라 자유롭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정도? 그 많은 ‘스탄’들이 어떤 과거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는 몰랐다. 거기서 지금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몰랐다. 직접 겪어보며 조금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에 우선은 아제르바이잔에서 비행기로 건너가기 편했던 우즈베키스탄을 택했다.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는, 흥미롭게도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중앙아시아 거의 정중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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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르바이잔에서 지친 몸을 끌고 타슈켄트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택시를 잡아 어플로 찾아낸 저렴하고 평이 좋았던 숙소 ‘타슈켄트 백패커스’에 가달라고 말하고 어두운 타슈켄트 거리를 바라보았다. 호객도 심하지 않았고 물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해 밤에 택시를 타고 가도 큰 부담이 없어 좋았다. 빽빽하게 더럽지도 매끈하게 깨끗하지도 않은 거리, 포장이 된 것도 포장이 되지 않은 것도 아닌 도로를 지나 게스트하우스에 앞에 도착했다. 어색하게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마당이었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 대머리 숙소 주인이 나를 반겼다. 마당에서 열 명쯤 되는 사람들이 둘러 앉아 적당한 활기를 밤에 더하며 수박을 먹고 있었다.

새로 게스트 등록을 하며 이야기를 나눈 숙소 주인은 내가 방금 떠나온 아제르바이잔 사람이었다. 아제르바이잔 사람이 우즈베키스탄에 오픈한 게스트하우스··· 그에게 나는 막 배워온 아제르바이잔 말을 건넸고, 그는 고향의 말을 듣고 웃었고, 내게 이제 가서 수박을 먹으라고 했다. 자기가 밤마다 준비하는 수박 파티를 즐기라고, 마음껏 먹으라고. 오자마자 적응도 안 되었는데 술도 안먹었는데 갑자기 파티라니 싶었지만 결국 나는 수박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수박의 날을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할 줄은 전혀 모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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