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노인이어서 유쾌한 일
늙은 노인이어서 유쾌한 일
  • 박석무
  • 승인 2021.07.29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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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의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위클리서울=박석무]  75세로 세상을 떠난 다산선생은, 그 시대로 보면 장수를 누린 복 받은 노인이었습니다. 다산의 시집을 보면, 70세 이후에 지었던 시들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에 함께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나, 함께 벼슬살이했던 동료들과 오래 이별했다가 다시 만난 삶이어서 더욱 다정하고 정이 넘쳤던 때문인지, 함께 늙어가던 옛 지인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지었던 시들이 유독 많습니다. 특히 송파에 살던 송옹(松翁) 윤영희(尹永僖)나 양근에 살던 현계(玄溪) 여동식(呂東植) 같은 분들과 주고받은 시가 매우 많았는데, 사는 곳이 멀지 않아 자주 어울리면서 풍류를 즐겼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던 무렵 「노인일쾌사(老人一快事)」라는 6수의 시는 늙은 노인이기 때문에 유쾌한 일이 생긴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를 시로 읊어 다산의 번뜩이는 시재(詩才)를 알게 해줍니다. 늙어지자 머리가 모두 빠져 민둥머리로 변해, 머리 손질하는 불편이 없어져 유쾌하다는 내용에서, 노년에 이르러 이가 모두 빠지자 치통의 고통을 당하지 않아 유쾌하다, 시력이 약해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없어, 책 읽는 고통에서 벗어나니 또 유쾌하다 하고는 네 번째로는 청력이 약해져 귀가 어두우니 듣기 싫은 소리를 안들어서 유쾌한 일의 하나라고 읊었습니다.

 

     노인네의 한 가지 유쾌한 일                     老人一快事

     귀 먹은 것이 그 다음이로세                     耳聾又次之

     세상 소리는 좋은 소리 없고                     世聲無好音

     모두 온통 시비(是非) 다툼이로다               大都皆是非

     거짓 칭찬 하늘까지 치켜올리고                 浮讚騰雲 

     가짜의 모함 구렁텅이로 떨어뜨리네            虛誣落汚池

     격조 높은 예악(禮樂)은 이미 황무지 되고       禮樂久已荒

     약고 경박한 뭇 아이들 세상, 슬픈지고          薄嗟群兒

 

라는 시는 귀머거리가 되어서 유쾌하다는 이야기이고, 다섯 번째는 나이 먹어 글 짓는 격식에 구애받지 않아, 그냥 내키는대로 글이나 시를 지을 수 있음을 유쾌한 일이라 여기고, 마지막에는 늙은이는 바둑을 두어도 반드시 이겨야 할 필요가 없으니, 하수들만 상대하게 되니 그것도 유쾌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노인의 여섯 가지 유쾌한 일이라는 해학적인 시들의 내용입니다.

여섯 수 모두 재미나는 시이지만, 예문으로 제시한 네 번째의 귀머거리[耳聾]시가 그중에서도 마음을 기울이게 해줍니다. 더구나 요즘 대선이 가까워오면서, 좋은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온갖 막말과 속된 말들이 세상에 가득 차면서 어떻게 해야 저런 소리의 해악에서 벗어날까를 걱정하고 살아가는데, 귀가 어두우면 유쾌해진다는 다산의 역설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다산의 75세 보다 더 많은 나이이지만, 청력이 약해졌고 시력도 매우 낮지만, 그래도 안경으로 글도 읽고, 소리도 대부분 들을 수 있어 전혀 유쾌하지 않으니 어찌해야 할까요. 정치적 경쟁자들이 아니라 죽여 없애야 할 적으로 여겨 입만 열면 시비만 따지고, 온전한 이성적 인간이 아닌 사람까지 하늘 닿게 치켜올리는 일에 주저하지 않고, 아무리 바르고 옳은 사람도 자기 진영 사람이 아니면 거짓과 가짜로 모함하여 진구렁이로 밀어 넣고만 있으니, 이런 모습, 이런 소리들을 안들을 방법은 없고 어찌해야 할까요. 귀를 막고 눈을 가릴 방법이 없는데, 다산은 그래도 유쾌하게 여겼다니 막힌 귀와 어두운 눈을 부러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격조 높은 언어로 경쟁자와 경쟁하는 모습이나 소리를 보여주고 해줄 수는 없을까요. <다산연구소 http://www.edasan.or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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