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박항서의 밤

소란스러운 하노이의 밤거리에서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다시 숙소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환기구를 통해 맨 아래층 식당과 이어져있는 발코니로부터 향신료 섞인 음식 냄새가 풍겼다.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층마다 세워진 거대한 화분의 잎들이 무성했다. 창밖으로는 사람들이 환호하는 소리가 먹먹한 메아리처럼 들려왔고 나는 내게서 조금씩 열이 난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건물의 안과 밖이 뚜렷하게 갈라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는 다행히 열이 나도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코로나 없이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할 수 있는 2019년이라서 내가 왜 열이 나는지 앉아 생각했다. 아마도 지나다니며 얕은 감기에 걸렸을 확률이 컸고 이럴 때면 그래왔듯 가방에 챙겨 다니는 타이레놀을 하나 꺼내 먹었다. 방 안은 밝았고 열이 오른 나는 어지럽고 들뜬 눈으로 텔레비전을 틀고 축구를 봤다. 바깥의 사람들이 환호하고 있는 그 축구. 베트남 해설진의 흥분된 목소리. 그곳에 서있는 박항서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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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렇게 열이 났던 것은 아마도 부모님을 먼저 한국으로 떠나보내서였을까. 오래 떨어져 지내 와서 먼저 떠나보내는 게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같이 며칠을 보냈던 숙소의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지독하게 외로웠다. 분명히 방금까지 여기에 있었는데, 여기에 짐도 있었는데, 잠자고 일어났다가 부르면 대답하는 몸이 있었는데, 한 순간에 없어지니 정말 기분이 이상했다. 그 이상한 기분을 틈타 내 몸에 있던 감기가 얼굴을 비추며 드러났나. 무언가가 비어있다는 게 그토록 허전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오랜만에 체감했다.

나의 장기 여행 초입에, 베트남 여행을 부모님과 함께 했다. 가족 여행으로 여행을 시작하고 나 혼자 다른 여행을 더 이어가는 식으로 일정을 맞췄다. 그렇게 며칠을 함께 보낸 이후의 밤에 부모님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간 것이다. 숙소에 앉아 외롭고 혼몽한 느낌으로 지난 며칠을 되새겨 보았다. 해외 가족여행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아 몇몇 갈등을 겪었던 날들. 수많은 오토바이 사이를 함께 빠져 나가고, 처음 와보는 나라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짐짓 호들갑을 떨었던 날들. 같이 먹었던 이름 모르는 음식들. 뭐든지 다 찾고 알아놓아서 지불한 만큼 경험해야 만족하는 사람과 그냥 끌리는 대로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 사람. 오토바이의 행렬과 호수의 커피. 베트남 목욕탕. 함께 했던 날들의 인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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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서는 여전히 선수들이 공을 차고 박항서는 꼿꼿이 서 있었다. 그날은 동남아시안컵 축구 결승전 날이었다. 인도네시아와의 경기. 바깥에는 사람들의 함성이 계속되었다. 어린 시절 겪었던 2002년 월드컵이 떠올랐다. 한 골 넣으면 세차게 환호를 지르고 다른 아파트에서 환호가 메아리처럼 돌아오던, 함께 한 곳을 바라보며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그때의 열의가 자연스럽게 기억났다. 차마 가만히 누워 있을 수만은 없어서 잠시라도 둘러보고자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안 그래도 붐비는 하노이 중심가는 사람으로 더더욱 붐볐는데 모두들 하나같이 빨갛게 상기되어 있어서 조금은 더 붐벼 보였다. 오토바이들이 경적을 울리고 붉은 배경의 노란별을 두르며 흔들거렸다. 박항서의 얼굴이 그려진 깃발도 몇 개 보았다. 오늘 거리에 나가서 한국인이라고 하면 술을 얻어먹을 수도 있겠구나, 최소한 환대 받을 수는 있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열의와 타이레놀을 먹은 나의 열감은 달라서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누워야했다. 그 짧은 사이에도 혼자 있는 것에 금방 익숙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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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내부

상대적으로 나는 동남아시아권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베트남에 오게 된 것도 가족 여행지로 적당한 곳을 찾고 고르다 결정된 것이라서, 평소에 좋아하던 베트남 음식을 현지에서 먹어볼 수 있다는 것 이상으로 흥미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막상 경험한 베트남은, 음식은 당연히 맛있었고 다른 것들도 흥미로웠다. 특히 어떤 문화적 분위기가 그랬다. 아무래도 타국을 경험할 때면 한국과 나란히 세워 놓고 비교해보게 된다. 음식이나, 거리의 풍경이나, 사람들의 생김새나, 말씨의 운율 같은 것들이 어떻게 같고 다른지 갈음해 본다. 지나온 역사의 측면에서 베트남은 중국의 서쪽에 있다. 한국은 동쪽에 있다. 두 국가 모두 중국과는 상당히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넓게 볼 때 중국 문화권의 영향을 상당히 받아 왔다. 베트남 역시 많은 어휘들이 한자를 기반으로 형성되어 있고, 이름도 당연히 한자로 표기할 수 있고, 유교를 받아들였고, 등등.

내가 동남아시아를 얼핏 상상할 때 느꼈던 이국적인 풍경들, 이국적이라는 말에 포함되어 있는 ‘한국과 상당히 다른’ 느낌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공자를 기념하는 문묘와 몇몇 절들의 건축 양식은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중국, 한국과 훨씬 유사하게 느껴졌다. 당연히 다른 점들도 많았으나, 비슷한 문화적 토양 위에서 자라났다는 느낌이 우선 강했다. 서쪽에 있는 다른 세계의 한국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반도는 아니지만 반도처럼 긴 국토도, 이념의 전쟁을 강하게 겪었다는 것도 그랬다. 다만 이곳은 붉은색이 승리했다는 점에서 달랐다. 전혀 불가능한 소리이지만 한국이 만약 중국의 서쪽에 있었다면, 이런 식으로 되어갔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괜히 닮은 점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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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축구를 앞에 둔 사람들의 열의에서 한국의 지난날을 읽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역사가 모두 비슷한 발전선 상에 있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때로는 어떤 국가가 지나간 길을 비슷하게 밟아가기도 하는 것 같다. 내가 본 그날 밤의 에너지는 이제 막 제대로 발전을 시작하는 국가의 에너지, 사람들이 이제 하나 된 정체성으로 모여 자긍심을 쌓아가는 열의였다. 새롭게 막 자리 잡아갈 때의 신남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마치 한국이 2002년에 경험한 국민적 열의가 단순히 우리가 ‘축구’를 잘 해서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이. 그때 우리가 해내고, 해냈다고 믿던 것이 단순히 축구 실력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나는 베트남이 한국이 겪었던 그 마음을 다른 시간 결에서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일종의 자긍심이자, 자존심일 수 있다. 그 마음은 함성과 환호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반대로 강한 침묵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우리 가족이 하노이의 근교인 닌빈으로 당일치기를 다녀오기 위해 대절했던 택시를 떠올린다. 닌빈으로 갈 때는 호의적이고 한국말로도 말을 걸며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던 기사 아저씨는, 하노이로 돌아올 때는 표정이 완전히 굳어 있었다. 그는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 역시 피곤해서 말을 많이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 택시 안의 침묵은 그런 종류의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의 완고한 침묵이 그 안에 있었다. 이렇게 된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우리는 곰곰이 그날을 되짚어 봤다. 기사 아저씨의 태도가 변한 시점은, 우리가 닌빈으로 가던 중 행선지를 바꿨을 때부터였다. 이를 테면 서울에서 수원으로 차를 하루 빌려 가는데, 처음에는 화성의 서쪽으로 가려다가 가는 중에 동쪽으로 바꾼 정도의 상황. 택시를 하루 동안 대절한 것이었으므로,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아예 다른 곳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기에. 예의 없이 명령식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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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그래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셨던 것 같다.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생각한 것 같다. 와서 돈 쓰면 마음대로 지시할 수 있는 거냐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기사님의 정확한 마음이었는지 나는 물론 모른다. 적어도 그가 행선지를 바꿔달라는 부탁을 고깝게 생각했던 것만큼만은 맞는 것 같다. 그는 왜 그 부분에서 화가 났을까? 베트남인들이 여행 온 한국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의 말을 어딘가에서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 기사님의 마음이 혹시 그랬던 것은 아닌지 혼자 추측했다.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로 취급하면서, 은근히 무시하고, 돈만 척척 내놓으면서 사람들을 하대하는 한국인들. 나도 그런 한국인들을 충분히 봐왔기 때문에, 그 화가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 기사님의 마음을 내 식대로 읽었다. 한국인들의 재수 없음과 베트남인들의 자존심으로.

여전히 베트남을 떠올리면 다른 무엇보다도 거기 있던 사람들의 느낌이 먼저 떠오른다. 무언가 뭉쳐진 열의와 무언가 쌓인 자존심이. 한국의 지난 날 같기도 하면서 한국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한 나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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