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기의 아시아 스케치] 시베리아

[위클리서울=정민기 기자] 

ⓒ위클리서울/ 정민기 기자

시베리아에서

무심코 뉴스를 틀자 포격이 시작되었다. 우크라이나 국기가 보인다. 검은색 헬리콥터들이 다가온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발포가 시작되고, 조금 늦게 굉음이 퍼져 오른다. 부서진 건물들이 보였다. 군데군데에서 불꽃이 터져 오른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은 아직 보이지 않았고 미사일을 쏘는 헬리콥터와 부서지고 있는 건물의 풍경만이 건조했다. 발포 버튼을 누른 사람과 영상을 찍고 있는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정말 전쟁이 났어.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전쟁이 시작된 거야. 뉴스 화면으로 보는 생생한 전쟁 풍경은 이상하게 생생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무언가가 부서지고 있다는 것이, 결국 사람을 부수고 있다는 것이, 그것을 부수는 것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이, 생생한 화면으로 잘 믿기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누워 멍한 눈으로 그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만난 한 무더기의 러시아 군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다가와 수줍게, 같이 놀래? 물어보았던 걔네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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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 여름, 나는 친구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러시아를 가로지른 적이 있다. 꼭 한번은 가보고 싶던 곳도 아니고 열차 여행에 대단한 로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베리아를 택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고 싶었다. 웬만해서는 가볼 일이 없는 곳에 가고 싶었다. 그곳이 과연 어디일까, 이제 막 친해지고 있던 한 친구와 함께 셈해보다가 우리는 농담처럼 시베리아를 떠올렸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사람 한 명 살지 않을 것 같은 황무지의 이름. 그 차갑고 서늘하고 낯선 이름에 우리는 흡족했다. 찾아보니 러시아를 좌우로 횡단하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있었다. 그때는 이 열차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을 때여서 정보가 많지는 않았지만,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는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일직선으로 연결된, 시차를 넘나드는 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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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박 8일 동안 기차를 타게 된다. 중간에 원하는 곳에 내렸다가, 다시 표를 끊는 식으로 탈 수 있다. 우리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갔고, 딱 중간 지점 정도인 이루크츠크에 내려서 바이칼 호수를 바라보았다. 몽골 바로 위에 있는, 세상에서 가장 큰 민물 호수라고 했다. 바이칼에서 보았던 푸른빛을 생각하며 다시 열차에 올랐다. 시차를 몇 번 혼몽하게 넘었을 때는 모스크바였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유럽으로 나아가는 가장 저렴한 방법이었으며, 내가 모르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게 해준 긴 철로였다.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서아시아는 있는데 왜 북아시아는 자주 안 부르지? 북아시아라고 부를 만한 평원에 살아오던 사람들의 땅은 이제 그냥 시베리아라고, 러시아 남쪽이라고 불렸다. 모르고 갔지만 그 긴 열차를 타는 동안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우리와 닮은 얼굴을 한 군인들과 농부들과 그곳에 뿌리박고 사는 많은 사람들을. 시베리아의 남쪽 끄트머리만을 지나는 여름이라 시베리아답게 춥지도 않고 오히려 뜨거운 무더위가 이어졌는데, 창문이 열린 기차에는 시원한 바람이 자꾸 불어왔고, 그 바람을 맞으며 많은 이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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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서 슬프다

북아시아의 얼굴들 말고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은, 올렉과 포포브와 루슬란과 블라디미르 들의 얼굴이다. 그들은 이제 막 전역한 러시아 군인이었다. 처음 기차에 올랐을 때 친구와 나는 겁에 질릴 수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며칠 동안 지내야할 3등칸 열차에 웃통을 깐 빡빡머리 러시아 남자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중 한 가운데가 우리 자리였다. 3등석은 방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은, 한 량에 침대좌석이 늘어서 있는 구조라서 친구와 나는 누가 보아도 군인 같아 보이는 수 십 명의 러시아 청년들 사이에서 며칠을 보내야 했다. 얼마나 눈에 띄었을 것인가. 그들은 어딘가 조금 무서운 커다란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열차가 빠르게 지나갔다. 도시를 지나치자 차창 밖으로 나무와 들과 묵묵함이 지났다.

내게 처음 말을 걸었던 것은 포포브였다. 그의 이름이 포포브라는 걸 실은 거의 내릴 때쯤 알았다. 그의 이름은 익숙하지 않았고 한국인이 들을 땐 약간 ‘포보’나 ‘바보’처럼 들렸다. 험상궂어 보이는 얼굴에 밝고도 희게 웃는 그의 얼굴이 정말 바보 같아 보이기도 해서, 나는 그를 바보로 기억하는 것이 조금 더 익숙하다. 그는 내가 화장실을 향해 좁은 통로를 비집으며 지나갈 때, 나를 손짓해 불렀다. 솔직히 무서웠는데 설마 때리려고 부르지는 않았겠지하며 그에게 다가가니, 그는 무척이나 수줍게 웃고 있었다. 영어를 거의 못했던 포포브는 같이 놀자는 느낌으로 손을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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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포포브가 있었고, 포포브가 불러온 영어를 할 줄 아는 올렉이 왔고, 영어를 할 줄 알아 통역이 가능해진 덕분에 다른 애들이 몰려 왔고, 루슬란이 왔고, 이름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애들이 우리의 곁에 앉아 우리를 신기하고 다정하게 쳐다 보았다. 알고보니 그들은 의무 복무 1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 방금 전역한 러시아 군인들이었다. 신기하게도 전부 우리 또래였다. 땅이 너무 커서 집에 가려면 기차를 몇 시간이나 타야하는 신세였던 그 친구들은, 전역할 때 공짜로 태워주는 시베리아횡단열차에서 무료하던 참이었다. 끝말잇기나 스도쿠 같은 걸 하다가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그 친구들은 너무나도 착했다. 착했다고 하기 어렵다면, 순진하거나 순수했다. 한국 웹툰을 러시아어로 번역해 보거나 한국 노래를 즐겨 듣는 탓에 한국을 너무나도 좋아했으며 한국이 엄청난 기술 강국이자 선진국이라고 믿었다. 어떤 애는 내게 자기 엠피쓰리가 고장났다고 고쳐 줄 수 있냐고 내게 찾아오기도 했다. 한국인이니까, 고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요새 한국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도시락 라면이 러시아에서는 인기라더니, 정말 ‘도쉬락’이라고 불리는 그 컵라면에 마요네즈를 넣어 먹으며 우리는 시간을 보냈다. 언어는 잘 통하지 않았지만 구글번역기와 올렉의 통역에 의존해 농담을 주고받고, 러시아 군대를 욕하고(모든 자국 군인은 자국 군대를 욕한다), 내가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스탈린을 어떻게 생각해?), 그들이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한국인은 돈을 얼마나 벌어?), 그들이 전역하며 받아온 군대 뱃지와 부대 마크를 나눠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루슬란의 육군 모자 위에 포포브의 해군 모자를 썼더니 애들은 크게 웃었고, 내 동그란 안경을 보고 ‘하리 포터! 하리포터!’ 하며 해리 포터를 떠올린 걔네들은 너무나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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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이 몰래 들고 탄 보드카를 밤중에 나누어 먹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순찰을 돌던 차장에게 걸려 고등학교 기숙사에서 사감에게 혼쭐이 나듯이 함께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러시아애들과 술을 먹다 러시아 아주머니에게 호되게 혼나고 있는 것이 이상하게 즐거웠다. 그렇게 놀다 취기에 잠들어 깼을 때 내 침대칸 안쪽에 물렁물렁한 게 있었다. 그건 스나이퍼 드미트리가 부대에서 데리고 온 새끼 고양이었다. 이름이 제로였던가. 그렇게 부드럽고 눈이 큰 것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투박한 손으로 이 부드러운 것을 쓰다듬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좋았다. 차창 너머 자작나무가 계속 지나갔다. 나와 친구가 새벽에 깨어 먼저 내려야 했을 때, 올렉과 포포브는 일부러 깼는지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행운을 빌어, 친구.’ 그 차갑고 컸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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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손은 버튼을 누른 손이다. 그 손이 버튼을 눌렀다. 버튼을 누르면 미사일이 나가거나 총알이 발사되고, 맞은 사람은 죽는다. 혹은 버튼을 누른 사람들이 죽는다. 내가 그때 보았던 그 하얀 얼굴들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죽고 있고, 나는 그것을 나와는 전혀 무관한 곳의 기묘한 비극처럼 구경하고 있다. 내가 그때 만났던 애들이 전장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과 같았던 똑같은 청년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말, 그중에 한 명이라도 전쟁터에서 무언가를 누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이 놀랍지 않다. 알고보니 착했던 애들이야, 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건물을 부수기도 한다,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그게 전쟁이고, 그것이 군대이며, 그런 일은 실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놀랍지는 않지만 그래서 너무 슬프다. 한 명 한 명 뜯어보면 정말 ‘인간’이었던 우리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들을 조금이라도 알아서 그들이 너무 슬프다. 모두 소중한 이름을 가졌던 그 애들이 ‘군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죽이고 지들도 죽어 나간다는 게 슬프다. 부디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어서 빨리. 조금의 생명이라도 자신의 이름을 얻는 일상을 회복하기를. 환하게 웃던 그 애들이 보고싶다. 보고싶어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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