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적립방식 개선해야
[위클리서울=이수경 기자]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자가 코로나19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며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를 거치고 보장성 강화 흐름까지 생기면서 지출 급증으로 인한 재정위험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실업급여 잔고는 3조5000억 원인데, 공공자금관리기금에서 빌린 7조7000억 원(차입금)을 빼면 4조2000억 원 적자다. 고용보험법에 따라 정부는 대량실업에 대비해 실업급여를 연간 지출액 기준 1.5∼2배씩 적립해야 하나 2009년 이후 한 번도 법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한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 가입자가 실직했을 때 일정 기간 동안 지급되는 금전적 지원으로, 재취업 활동을 장려하고 생활 안정을 돕는 제도다. 수급 자격을 갖추려면 통상 18개월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하며, 비자발적 실직이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경기 불확실성과 구조적 산업 변화로 인해 단기적 실업자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분석한다. 한 노동경제학자는 “특히 제조업과 서비스업에서 고용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실업급여 수급자 증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실업급여 제도를 강화하기 위해 온라인 신청 시스템을 개선하고, 수급자 대상 직업 훈련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재취업 지원 서비스와 연계해 실업급여 수급 기간 동안 취업 역량을 높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일각에선 실업급여 의존도가 높아질 경우 근로 의욕 저하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수급 조건 강화와 재취업 촉진 프로그램을 병행해 제도의 균형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최근 실업급여 수급자가 증가하면서 제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실업급여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단기적 지원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른 문제는 근로 의욕과 제도 남용 우려다. 일부에서는 실업급여를 장기간 받으면서 재취업을 늦추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로 현행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설계가 잘못돼 하루 8시간씩 주 40시간 일하는 근로자의 실수령 임금보다 같은 기간 일하지 않고 받는 실업급여가 많은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확인됐다.
지난 13일 감사원은 ‘고용보험기금 재정 관리 실태’ 감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총 127만7000명이 실직 전 월급보다 많은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총 1조2850억 원을 더 받아갔다.
감사원은 “현행 실업급여 제도가 근로 의욕과 구직 의욕을 떨어트리는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며 “실업급여 최소 보장 금액을 낮춰야 한다”고 밝혔다.
실업급여는 실직 전 3개월간 하루 평균 임금의 60%를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다만 사회 보장 차원에서 하한액은 최저임금의 80%로 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지난해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주 5일 40시간을 일할 경우 세금과 각종 보험료 공제 후 받는 실수령액은 월 184만3880원이었다. 같은 기간 구직 활동을 하며 받는 실업급여는 월 191만9300원이었다. 일하는 사람보다 실업자가 7만5000원을 더 받는 셈이다.
근로자는 하루 8시간씩 주 5일 일할 경우, 하루의 유급 휴가가 발생해 일주일에 6일 치 임금을 받는다.
반면, 실업급여의 경우 하한선 기준이 최저임금의 80%를 주중·주말 구분 없이 매일 받는 것으로 계산한다. 최저임금 근로자 기준으로 일주일에 5.6일 치 임금을 받는 셈이다.
실업급여는 일반 근로소득과 달리 세금이나 보험료 공제가 없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실업급여자가 최저임금 근로자보다 많게 된다.
2023년 실업급여를 받은 167만2000명 가운데 11만명(6.6%)은 최근 5년 새 실업급여를 3회 이상 받았고, 이런 ‘반복 수급자’는 매년 늘고 있다.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사업주와 공모하는 방식 등으로 실업급여(약 4억 원 규모)를 타낸 부정수급자 45명을 적발했다고 13일 밝혔다.
이중 함께 공모한 사업주 26명을 포함해 부정수급 규모가 커서 범죄 행위가 중대한 64명(수급자 38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도 병행할 예정이다.
이들은 대부분 친인척 혹은 지인 사업장에 허위로 단기간 고용보험을 취득한 후 계약만료로 퇴사 처리해 실업급여를 부정수급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아버지 지인 사업장에서 허위로 2개월간 고용보험 취득 후 '계약만료로 퇴사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실업급여 750만 원을 부정하게 받아 적발됐다.
대전고용청은 A씨를 상대로 추가징수를 포함해 3000여만 원을 반환할 것을 명령했다.
전문가들은 “제도를 단순 지급 중심에서 벗어나, 능력 개발과 맞춤형 취업 지원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 나아가 현행 실업급여 제도는 비정규직·단기 계약직 노동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한 학술 연구에 따르면, 실업급여 수급 기간은 짧지만 그 기간 동안 재취업한 일자리의 안정성은 낮고, 반복 수급률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고용보험 가입 기간 요건과 지급 기준 때문에, 불안정 고용 노동자는 실업급여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제도의 사회적 안전망 기능이 제한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실업급여가 단순한 금전 지원을 넘어, 재취업과 노동시장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도록 구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본래 취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지급 확대를 넘어, 반복 수급 방지와 재취업 촉진을 균형 있게 고려한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