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과 영화 속 환경·기후 위기 영화] ‘날씨의 아이(2019)’

전 세계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쓰나미 등 전례 없는 기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변화는 앞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되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요즘 날씨는 설명보다 체감이 먼저다. 날씨 앱에 표시되는 숫자는 단순한 정보일 뿐, 실제 느낌과는 다르다. 예보와 달리 비가 계속 오거나, 예보보다 더 춥거나 더 덥게 느껴지는 건 날씨 변동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온도가 10도 이상 오르내리고, 체감 온도 차는 더 심하다.

아침엔 초겨울 같다가 낮엔 반팔을 입을 정도로 덥다. 사계절을 가진 우리나라에서 패딩과 반팔을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날씨다. 변덕스러운 온도 변화에 꽃들도 정신이 없다. 가을에 장미가 피고 겨울에 개나리가 핀다. 비는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가 갠다.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환한 햇살을 비추다가도 먹구름이 금세 몰려와 소나기를 퍼붓는다. 달력의 계절과 몸이 느끼는 계절이 어긋나는 일이 이제 낯설지 않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날씨의 아이(Weathering With You, 2019)’는 이런 변화에 반응하는 작품이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내리는 비를 보여준다. 그 세계에서 사는 인물들은 소소하게 살아가며 행복을 누리고 싶어 하지만 세상은, 날씨는 이들을 그렇게 소박하게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치 현실의 우리처럼, 영화 속 인물들의 삶도 날씨만큼 예측하기 어렵다.

계속되는 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도쿄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이상할 정도로 길고 끊임없는 비가 이어지고 있다. 계속되는 이상기후 현상 탓일까? 그런데 어디선가 따스한 햇살 한 줄기가 보인다. 소녀는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다가 지긋지긋하게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빛이 보이는 폐건물 옥상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빛과 함께 새로운 세상으로 빨려 들어간다.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는 일본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으로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의 메가히트 작품을 연출하며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에 이름을 날리며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떠올랐다. 특유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와 따스한 색감은 영화 ‘날씨의 아이’에서도 변함없이 발휘되고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특히 빛과 구름, 하늘, 비 등 자연에서의 소재에서 탁월한 묘사를 보여주며 마치 실사를 보는 듯 보는 이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영화 속 ‘히나’는 병든 어머니와 어린 동생 나기와 함께 살아간다. 자신이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소녀다. 히나는 병든 어머니를 간호하다가 우연히 눈에 띈 한 줄기 빛을 따라가다 ‘초능력’을 얻게 된다.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하늘에 대고 간절히 기도하거나 소원을 빌면 그 자리에 비가 멈추고 밝은 햇살이 비친다. 그녀의 이 능력 덕분에 사람들은 히나를 ‘맑음 소녀’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히나는 이 능력을 활용해 날씨를 제공하는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된다. 히나의 능력을 서비스로 생각해 낸 이는 바로 ‘호다카’다. 호다카는 도쿄에서 홀로 방황하다 히나의 도움으로 살아가게 된 소년이다. 히나보다는 나이가 어리지만 사업 수완이 뛰어나고 대중들의 생각을 파악해서 히나와 함께 날씨 서비스를 성공적으로 전개해 나간다.

비가 오랫동안 내리는 장마를 생각해 보자. 장마가 지속되면서 햇빛을 보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우울한 감정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장마가 지속될 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 변화는 단순한 기분 문제가 아니라 햇빛 부족과 호르몬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런 현상이 이어지는 이유는 햇빛이 줄어들면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세로토닌이 줄어들고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증가하면서 무기력과 피로, 우울감, 집중력 저하가 일어난다. 또한 장마가 지속되면 습도가 올라가면서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일

호다카는 원래 살던 섬에서 도쿄로 무작정 향한 가출청소년이다. 일자리를 얻어보려 하지만 미성년자인지라 쉽게 일을 구할 수 없다. 슬슬 가진 돈이 다 떨어져 갈 무렵 배에서 처음 만났던 ‘스가’라는 남자의 도움으로 잡지사에서 기이한 일을 취재를 하는 일을 하게 된다. 스가가 호다카 손에게 건네준 잡지에는 ‘맑음 소녀’라는 헤드라인이 적혀있다. 호다카는 잡지 기사에 적힌 대로 맑음 소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된다.

그러다가 곤경에 처한 히나를 구해주면서 히나가 ‘맑음 소녀’라는 것을 알게 된다. 히나는 호다카를 데리고 폐건물 옥상에 올라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히나가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기 시작하자 끊임없이 내리던 비가 멈추고 먹구름 사이에서 오색찬란한 무지개색의 빛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네가 맑음 소녀야?” 호다카의 놀라움에 히나는 웃음으로 답한다. 그렇게 친구가 된 두 사람. 호다카는 히나에게 사업을 제안한다.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날씨의 아이'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바로 히나의 능력을 이용해서 돈을 벌자는 것이었다. 히나의 어머니는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히나는 동생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녀는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으나 최근 해고되었고 호다카 역시 일자리가 필요했다. 이들은 엉성한 그림으로 서비스를 온라인에 오픈하고 첫 손님을 받게 된다. 놀이공원에서 맑은 날씨를 즐기고 싶었던 아이의 부모가 서비스를 의뢰한 것. 그들의 서비스는 대성공이었다. 히나의 기도로 맑은 날씨가 선물처럼 주어지자 아이의 부모는 감동하며 히나에게 2만 엔을 건네준다.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자신들도 먹고살 수 있는 돈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정말 ‘맑음 소녀’가 존재한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지며 이들의 서비스는 날이 갈수록 인기를 끌게 된다. 하지만 이런 행운에 대가가 없을 리 없다. 히나의 몸이 갑자기 투명해지기 시작한 그때. 히나는 호다카에게 이런 능력이 자신에게 온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능력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몸이 투명해지는 것은 자신이 ‘날씨 무녀’이기 때문이고 이상기후 현상은 자신이 재물로 바쳐지면 정상으로 돌아온다는 것. 히나는 사람들에게 맑은 날씨를 다시 찾아주기 위해 자신이 재물이 되는 길을 기꺼이 선택한다.

하지만 호다카는 히나를 재물로 보낼 수 없다. 호타카와 히나는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희망을 갖는 작고 미약한 존재이다.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알맞은 환경이 필요하다. 매일 비가 오는 환경에서는 제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 늘 비가 오는 환경에 있었다면 적응할 수 있겠지만 햇빛이 있는 이전의 환경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더욱더 장마가 1년 내내 이어지는 현상은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서로 노력하지만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한다. 히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 맑은 날씨로 되돌려주려 하지만 호다카는 ‘푸른 하늘’보다 ‘히나’의 행복을 바란다. 히나가 돌아와 도쿄는 3년 내내 내리는 비에 대부분이 침수되고 사람들은 오늘도 비가 내리는 세상을 맞이하게 됐다. 재앙과 같은 장마 속에서 이들의 선택은 이기적인 것이었을까? 정답은 없다.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는 이상기후 속에서도 이들과 같이 서로에 대한 따스함이 있다면 세상은 살만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날씨의 아이' 포스터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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