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 “결정 과정 투명성 제고해야”
[위클리서울=정상훈 기자] 정부가 기준중위소득 산정방식 개편을 공식화한데 대해 25일 참여연대는 “그간의 격차 해소 실패에 대한 평가 없이 또다시 밀실에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실제로 기준중위소득은 80여 개 복지사업의 문턱을 결정하는 사회보장 체계의 핵심 기준선이지만, 산정 과정의 불투명성과 ‘보정 조항’을 활용한 증가율 왜곡 논란은 지속돼 왔다. 새 TF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바로잡지 못할 경우, 제도에 대한 신뢰는 더욱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 “2027년 적용 위한 새 산정방식 마련”
보건복지부는 지난 21일, 기준중위소득 산정방식 개편을 위한 제1차 TF 회의를 열고 새로운 기준 마련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산정방식은 2026년 기준중위소득 결정(2025년 7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2027년부터 사용할 새로운 산정 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연구용역을 추진해 ▲현행 산식의 결과 분석 ▲해외사례 검토 등을 진행하고 재정·통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TF를 운영해 내년 상반기까지 새 산정방식(안) 마련을 계획하고 있다.
기준중위소득은 현재 생계급여·의료급여·주거급여·교육급여를 비롯해 고용부 국민취업지원제도, 국가장학금 등 14개 부처·80여 개 복지사업의 선정기준으로 활용될 만큼 영향력이 크다. 특히, 4인 가구 기준 올해 기준중위소득은 6.51% 인상돼 역대 최고 증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이번 개편 추진을 ‘책임 회피적’이라 규정하며 “기존 산정 결과의 왜곡 문제와 폐쇄적인 심의 구조를 개선하지 않은 채 새 산식을 만들겠다는 접근은 또 다른 실패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준중위소득의 통계원이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변경되면서 발생한 격차를 6년간 추가증가율로 해소하기로 했지만, 추가증가율조차 실제 중위소득 격차를 따라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2026년 기준중위소득의 기본증가율은 원칙상 산출값보다 7.19%p 낮게 결정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또, 보건복지부가 ‘급격한 경기 변동 시 증가율 보정 가능’이라는 단서조항을 활용해 기본증가율을 반복적으로 낮춰 빈곤선 자체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봤다.
예컨대, 2021년부터 현재까지 기본증가율은 0.87%~7.19% 범위로 들쭉날쭉하게 조정됐다. 이는 통계 원칙이 아니라 재정 당국의 요구가 반영된 정치적 조정이라는 비판이다.
“밀실 TF·비공개 회의…결정 과정 투명성 제고해야”
참여연대는 무엇보다 TF와 중앙생활보장위원회의 비공개 운영 방식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한다. 산정 방식과 회의록이 공개되지 않아 시민은 기준중위소득이 어떤 근거로 결정되었는지 알 수 없고 실제 수치는 언론 보도나 추정으로만 파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제도의 신뢰 회복과 사회적 합의 도출이 필요하다”며 ▲TF 논의자료·데이터 전면 공개 ▲시민 의견 수렴을 위한 공청회·정책결정예고제 도입 ▲중앙생활보장위원회 회의록·속기록 실명 전면 공개 ▲수급 당사자를 포함한 위원 구성의 확대 등을 촉구했다.
앞서 정부는 “급여보장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담보할 안정적 산정방식”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참여연대는 그동안의 낮은 증가율 결정과 투명성 결여로 인해 빈곤선 자체가 억제되어 왔다는 점을 문제의 핵심으로 지적하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공약인 ‘기본사회’ 구상과 실제 정책 추진 사이의 괴리를 강조한다. 정부가 내세웠던 ‘빈곤선 이상 삶의 보장’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구상은 후퇴했고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에서 기준중위소득 개편이 투명성 없이 추진될 경우, 사회안전망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기준중위소득 산정방식 개편은 향후 최소 6년, 더 나아가 복지 체계 전반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작업이다. 참여연대가 지적하듯 그동안의 격차 해소 실패와 ‘보정 조항’에 의한 왜곡 문제를 먼저 평가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산식 역시 또 다른 논란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개편 과정의 투명성과 시민 참여 확대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기준중위소득’이라는 사회적 최소기준은 다시 한 번 밀실 속에서 정치적 수치로 변질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