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조선왕릉 숲 식생, "자연적·기후적 영향"
나명하 "기후 변화 속 살아남는 종 구성 고민해야"
[위클리서울=하원휘 기자] 세계유산 조선왕릉을 둘러싼 숲이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식생 변화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기존의 ‘전통 경관 유지’ 중심 관리 방식만으로는 변화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며 앞으로는 기후 적응력을 고려한 수종 관리와 과학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21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조선왕릉 역사경관림 심포지엄’을 열어 4년에 걸친 수목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왕릉 일대의 과거 조성 방식과 현재 생태 조건 사이의 차이를 점검하고 향후 보전·관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발제에서는 왕릉 숲의 식생이 자연적·기후적 요인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제시됐다. 한봉호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는 “왕릉 경관림은 대부분 소나무였지만 최근 자연 환경 변화로 참나무가 우세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현 전 국립산림과학원 원장은 왕릉 복원·관리 과정을 언급하며 “잣나무가 죽은 공간에조차 소나무를 다시 심는 현재의 관리 방식은 재고가 필요하다”고 말을 더했다.
복원·관리에서 소나무 단일종 중심의 전통적인 방식은 기후·환경 변화에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참나무시들음병·소나무재선충 같은 병해충 위험이 커지고 고령목 위주의 숲 구조 역시 외부 충격에 취약해 생태적 불안정성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조선왕릉 숲이 더 이상 전통 경관 보전을 중심으로만 유지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기후 변화·병해충·도시 열환경 등 복합적인 요인이 숲의 구조를 바꾸고 있어 앞으로 관리 방식은 경관 유지가 아니라 생태 회복력 확보가 핵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명하 전 궁능유적본부장은 조선왕릉 숲에서 관찰되는 자연 변화 양상을 소개하며 전통 보전 방식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곰솔과 재래종 소나무가 자연적으로 교잡된 혼합종을 예시로 들며 “이런 종들은 온난화된 기후에 적응력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라산에서 구상나무가 기후 변화로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소나무에도 올 수 있다”고 경고하며 “앞으로의 숲 관리 방향은 단일 수종 중심이 아니라 기후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는 종 구성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핵심 대안으로 과학기술을 활용한 정밀 관찰이 제시됐다. 최혜영 서울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는 “현행 수기 조사 방식으로는 변화 속도와 범위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드론, 딥러닝 등 과학기술 기반 모니터링 체계 도입을 주장했다. 박 원장도 “토양과 지질 조건이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며 생태적 적합성을 고려한 수종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세계유산 보전이 단순한 조경 유지가 아니라 급변하는 기후환경 속에서 숲이 버틸 수 있는 생태적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은 모든 생물에게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