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오늘 아침, 산책길에 우아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왜가리를 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 전에 보고 온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생각났고, 그날 영화를 같이 본 아들과 맥주 한잔하며 안주 삼아 먹었던 노가리가 떠올랐다.'왜가리'와 '노가리'. 다른 듯 비슷한 이 단어는 글자 하나 차이다.하지만 왜가리의 우아한 걸음걸이와 바싹 비틀어진 노가리포가 비슷할 리 없다.뭔 말이 하고 싶어 이런 뜬금없는 비교를 하냐면,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난 나의 느낌을 말해 보려고 이런다.한국 영화의 보증수표 격인 이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나에게는 콤플렉스 비스무리한 게 몇 가지 있다.어렸을 땐 툭 튀어나온 토끼 이빨이었고 지금은, 글에 대한 부족함을 끊임없이 느낀다. 그래서인지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면, 자격증도 없이 쌍꺼풀 수술을 하겠다고 앉아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문창과 나오셨어요?"고3 때, 영화 ‘백야’에서 본 미하엘 바르시니코프에게 뻑이 가 노어 노문학과에 지원했다가 똑 떨어졌다. 미달이 나면 모를까 죽었다 깨나도 안 된다며, 담임 선생님이 다른 대학을 손가락으로 톡톡 찍었을 때도 손톱 밑에 낀 때를 보며 파주고 싶다는
오빠가 변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끔 여행도 데려가고 콧바람도 쐬어주고 그랬는데 말이다. 동생인 내가, 해줘도 고마운 걸 모르니 이젠 땡이란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해 본 적은 없지만 그걸 꼭 말로 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내심 서운한 구석이 있었던가 보다. 얼마 전, 아는 분에게서 리트비아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길 들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오빠하고 같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때 추억을 더듬어 오빠 흉이나 좀 봐야겠다.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건설한 사람은 독일의 알베르트 대주교다. 그분의 고향이 브레맨이라 독일이
첫째가 유치원에 다닐 때 일이다. 돈이 정말 똑 떨어져 버린 어느 날, 가지고 있던 통장을 모두 꺼내놓고 혹시라도 잔고가 남아있는 게 있을까, 뒤져보다 농협 통장에 14000원 정도의 돈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얼른 아이 둘의 손을 잡고 농협으로 갔다. 그리고 창구 직원에게 가서 통장에 있는 돈을 모두 찾겠다고 말했다.“저희가 이사를 가는데 그 동네엔 농협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잔고를 다 찾는 거거든요.”아무도 묻지 않는 말을 변명처럼 늘어놓았다. 잠시 뒤, 은행직원이 플라스틱 사각접시에 통장에 남아있던 돈을 담아 내밀었다.
얼마 전, SPC 삼립 시화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 이번 소설집 에 나오는 에서 SPC에 대한 얘기를 언급한 것은, 그들이 사람 목숨을 얼마나 우습고 하찮게 여기는지에 대한 비난이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딸이었을 그분의 명복을 빈다...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사고를 당한 사람이 나일 수도, 내 가족일 수도 있다는 거다. 두 아들은 학교 다닐 때 알바를 많이 했다. 건설 알바, 음식점 알바, 육가공 알바 등등. 그나마 제일 안전한 환경에 속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그동안은 주말이 없는 삶을 살았다.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을 했고 오히려 그게 익숙했다. 아이들이 한창 클 땐 놀고 있으면 오히려 불안했고 집에서까지 잡다한 부업을 했다. 그게 딱히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그 돈으로 반찬도 사고 필요한 곳에 돈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 몸보다 머리를 쓰는 일을 하며 살았겠지만 젊어서는 젊음의 시간이 귀한지 모른다. 남들이 영어학원에 다니며 토플이나 토익시험을 준비하느라 엉덩이에 땀띠 나게 앉아있던 시간에, 팔랑팔랑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우리 집에는 개 두 마리, 고양이 네 마리가 함께 살고있다.진돗개와 리트리버, 그리고 페르시안과 길고양이, 종류도 다양하다. 사람보다 개 고양이가 더 많은 셈이다. 애들이 많다 보니 탈이 나거나 피부병이 생겨 한 번씩은 병원 신세를 지곤 하는데 이번에 리트리버 종인 코난이가 큰 사고를 쳤다.저녁밥을 먹고 거실에서 공을 던지며 기분 좋게 놀던 코난이가 갑자기 우웩 우웩~~ 큰소리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저녁에 삶아 먹인 닭에 혹시 뼈다귀라도 섞여 있었나 싶어 등을 두드려주었지만 코난이의 상태는 점점 더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살다 가끔, 그 남자들 생각이 난다.대학생 때 가출해서 절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 무렵 함께 살았던 남자들 이야기다.대학을 휴학하고 집을 나와 무작정 찾아 간 곳은 설악산의 어느 유명한 절이었다. 세상 소음과 등지고 조용한 곳을 찾아 떠나왔건만 유명 관광지여서 그런지 우리 동네보다 더 시끄럽고 복작거렸다. 어찌해야할까 고민하다 그 절의 사무장님에게 내 상황을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집 전화번호부터 적으라고 했다.“안 적으면 안 도와준다.”사무장님은 그 자리에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지난 달, 책을 내고 많은 일이 있었다.태어나 생전 처음, 사인이라는 것을 해보았고 내 책을 읽은 독자가 올려주신 리뷰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별점과 리뷰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물론, 맞는 말이다. 좋은 말도 나쁜 평가도 세상에 책을 내어놓는 순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게 맞다. 하지만 몸에 좋은 쓴 말과 몸에 나쁜 쓴 말은 같지 않아서 때론 상처가 되기도 한다.많은 분들이 정성스럽게 올려주신 리뷰를 읽었다. 그 중에 한 사람, 얼마 전 에세이집(‘이보다 더 좋을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드디어 나의 첫 책이 드디어 나왔다.기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어디론가 막 숨고 싶기도 하고 그랬다. ‘죽은 고양이를 태우다’ 제목이 조금 무시무시해서 그런지,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분도 계신데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하나 같이 쌈마이에,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친구들이 애쓰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문만 열고 나가면 어디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소설로 엮어내야 하나, 고민도 많았다. 사실 나는, 사람들을 웃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읽고 돌아서면 아무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쥴리는 파양된 토끼다. 나이는 한 살, 동화책에 나오는 피터레빗을 닮았다. 토끼라면 응당 그러하듯, 쫑긋한 귀와 실룩이는 귀여운 코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몸값이 비싼 토끼는 아니다. ‘롭 토끼’처럼 밑으로 축 처진 커다란 귀를 가진 독특한 외모도 아니고 판다처럼 투톤컬러 무늬를 가진 ‘더치토끼’도 아닌 그냥 평범한 집토끼다. 이미 우리 집에는 커다란 개 두 마리와 고양이 세 마리가 있던 터라 토끼까지 키우는 건 결사반대였다. 하지만 아들은, 갈 곳 없는 토끼를 집으로 데려왔고 어쩔 수 없이 거실에 울타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주말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동네 산책이나 해볼까 싶어 나선 길이었다. 아파트 재활용하는 곳을 지나려는데 멀쩡한 1인용 소파가 거기 놓여있었다. 아마도 누군가 이사 가며 버리고 간 모양이었다. 어디 하나 뜯어진 데도 없는 멀쩡한 걸 왜 버리고 갔나 싶어 한참을 요리조리 살펴보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재활용 하는 데 있지, 거기로 지금 빨리 나와.”잠시 뒤, 왜? 뭔데? 하는 표정으로 나타난 남편이 재활용 딱지가 붙은 소파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그만해라, 안 된다.”“왜? 멀쩡한데 아깝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책 한 권을 이렇게 오래 읽어보긴 처음이다.일단 잡았다 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삼 일정도면 책 한 권을 읽는다. 재미있는 책일수록 읽는 시간이 짧게 걸린다. 읽다가 재미없으면 나중에 읽어야지.. 하다가 잊어버린다. 그런 내가, 반수연 작가의 에세이 를 2주일에 걸쳐 읽었다. 그녀가 2021년에 쓴 이라는 소설을 누구보다 재미있게 읽었던 나였기에 이번 책 또한 기대가 컸다. 그런데 왜 책 한 권 읽는데 2주일이나 걸렸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책을 읽을 시간이 도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두 달 전부터 잡지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내가 처음으로 맡게 된 꼭지는,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아가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 내가 사는 곳이 수원인지라 가까운 곳부터 찾다보니 이라는 독특한 책방을 알게 됐다.수원의 구시가지에 자리한 낡은 벽돌 건물의 2층 계단을 오르면 아기자기한 소품과 사진들로 꾸며진 복도가 나오고 그곳에 네 개의 초록색 문이 놓여 있었다. 마치,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중에 제일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204호 문을 열고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10월 초부터 동네 곱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누군가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작가’라고 대답하기엔 뭔가 쑥스럽고 ‘백수’라고 말하기에도 자랑은 아닌지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 입구에 ‘주방 구함’이라는 종이가 써 붙여져 있길래 면접을 보러 갔고 사장은 나에게 ‘인상이 좋다’며 당장 내일부터 나와 일을 하라고 했다. 비록 동네 곱창집이긴 했지만 면접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시작된 곱창집 주방에서의 하루 6시간은 내가 상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둘째 아이는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이었다.백화점에 들어서면 새 옷들의 스~멜에 미쵸버리겠다고 했다. 그렇게 옷과 신발을 실성한 듯 좋아하면서도 디자이너가 되려면 미친 듯 노력해야한다는, 아니 노력해도 될깡말깡 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게 문제였다.둘째가 중2였던 어느날..공부 보기를 돌같이 하는 최영 장군 같은 모습에 열이 받아, 그놈의 책상 위에 밍크코트처럼 먼지가 쌓인 책들을 들어내버렸다. 집에 돌아와 텅 빈 책상을 보면서 컴퓨터 모니터를 정 중앙에 배치해놓고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내 위로 언니가 둘, 오빠가 하나 있다. 오빠는 어려서부터 바른 생활의 표본이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타의 모범이 되는 우등생이었고 집에서도 부모님 말씀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 오빠였기에 동생인 작은언니와 나는 오빠가 시키는 일은 될 수 있으면 군말 없이 따르는 편이었다. 오빠가 우리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된다고 주의 시키는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욕’이었다.오빠는 욕하는 걸 무지 싫어했다. 어려서부터, 남들 다하는 ㅆㅂ이나 ㄱㅅㄲ 같은, 사소한 욕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다 내가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얼마 전, 대단원의 막을 내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 드라마를 쓴 문지원 작가는 2018년도에 ‘증인’이라는 영화에서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이유는, 평소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배우 정우성과 김향기가 주연을 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대안학교 교사를 하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친구 몇몇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영화와 드라마 속에서는 뭔가 남다른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으로 그려지기도 하지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아침에 출근하던 남편이 ‘토리가 아무래도 이상해, 잘 좀 지켜봐’라고 말할 때 까지만 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나 먹은 노묘(老猫)였고 골골 거리며 아픈지도 꽤 되었기에 그런 날 중에 하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닥에 노란 물을 잔뜩 게워내고 뒷다리부터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하더니 토리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쿠션 위에 앉혀놓으면 바닥을 박박 기어 소파 다리 밑이나 구석으로 악착같이 파고 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직감한 늙은 짐승이 깊디깊은 숲속으로 숨어버리려는 것처럼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시를 쓰는 친구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나리 나리 김나리(도마뱀).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김나리라고 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나리 나리 개나리~~’라고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귀여운 이름이었다.주로 소설을 읽는 편이라, 에세이는 사실 손이 잘 가지 않는 장르다. 하지만 잠 들기 전에 잠시 펼쳐 본 책을 새벽까지 읽고 말았다. 오랜만에 느껴본, 가슴으로 뚫고 들어오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글 쓴 이가 궁금해졌다. 주로 작가들이 자기소개를 적어 놓는 책날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