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고양이를 씻기다
죽은 고양이를 씻기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2.08.08 08: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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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아침에 출근하던 남편이 ‘토리가 아무래도 이상해, 잘 좀 지켜봐’라고 말할 때 까지만 해도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열다섯 살이나 먹은 노묘(老猫)였고 골골 거리며 아픈지도 꽤 되었기에 그런 날 중에 하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닥에 노란 물을 잔뜩 게워내고 뒷다리부터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하더니 토리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쿠션 위에 앉혀놓으면 바닥을 박박 기어 소파 다리 밑이나 구석으로 악착같이 파고 들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직감한 늙은 짐승이 깊디깊은 숲속으로 숨어버리려는 것처럼 보였다.

숨이 멈출 때까지 토리는 몹시 괴로워했다. 뒷다리가 마비되어 뻣뻣하게 굳어갔고 입에서는 진득하고 말간 액체가 흘러나왔다. 마른 구역질을 해대며 숨을 몰아쉬었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옷소매로 토리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토리야, 엄마가 끝까지 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 마......”

바튼 숨을 몰아쉬던 토리의 혀가 왼쪽 입 밖으로 길게 늘어졌다.

토리의 콧등을 부드럽게 쓸어주고 입을 맞추었다. 한 달쯤 전부터 새벽에 가끔 토리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가 아픈지 구슬프게 울었다. 병원에 데려가 봐야지 싶다가도 아침이면 말간 얼굴로 잠들어있는 토리를 보며 다음으로 미루곤 했다. 열다섯 살 토리가 살만큼 살아서, 이젠 가야될 때가 되어서 간다고 할지라도 지켜보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건 어쩔 수 없었다.

새벽 일찍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간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토리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둘째는 일곱 살이었다. 동생이 갖고 싶다던 아이는 토리를 여동생처럼 예뻐했다. 예전처럼 잘 움직이지도 않고 기운 없이 잠들어있는 토리를 보며,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갑자기 영상 통화는 왜......”

“토리가 얼마 못 버틸 거 같아서.”

“그게 무슨 소리에요!”

“요즘 계속 아팠잖아, 나이도 많고......”

“토리 보여줘요, 토리야, 여기 봐봐, 오빠야.”

숨이 헐떡이며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봤다. 15년을 들어왔던 다정한 목소리, 늘어져 있던 꼬리를 조금 들어올렸다. 울먹이던 아들은 조금만 기다리라고, 지금 출발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토리의 손을 잡았다. 뻣뻣한 뒷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꼬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군데군데 털이 뭉치고 엉켜 있었다. 조금씩 움직임이 잦아들던 토리의 혀에 푸른빛이 감돌았다. 유리구슬처럼 맑고 투명했던 눈동자도 점점 탁해졌다. 숨을 몰아쉬던 가슴과 배도 더 이상 오르내리지 않았지만 내 눈에 아직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토리가 누워있던 자리 밑으로 서서히 노란 물이 배어나왔다.

“엄마는 우리 토리를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이젠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

잠든 아이처럼 품에 안겨 있는 토리에게 사랑한다고, 너무 고맙고 말해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토리는 유별나게 깔끔했다. 손수건을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여학생처럼 몸에서는 언제나 좋은 냄새가 났다. 혓바닥으로 부지런히 털을 핥아 뭉친 곳 없이 단정했다. 그런 토리였기에 마지막 순간까지 그 모습을 지켜주고 싶었다.

토리를 가슴에 안고 욕실로 갔다. 따뜻한 물을 욕조에 받아놓고 토리를 씻겼다. 코코넛 향의 바디 샴프를 온 몸에 발라 거품을 내고 손끝으로 살살 문질렀다. 잠에 취한 아이처럼 얌전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몸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얼굴도 뽀독뽀독 씻겼다. 찹쌀모찌처럼 하얗고 동그란 발도, 분홍발바닥 사이사이도 남김없이 문질렀다. 그런 다음, 미지근한 물로 몸을 헹구어내고 수건으로 토리를 감싸서 안고 나왔다. 침대위에 큰 수건을 깔고 토리를 눕힌 다음 드라이기로 털을 말렸다. 평소 같으면 몸을 부르르 털며 빠져나가려고 했겠지만 토리는 얌전히 누워만 있었다.

“토리야, 우리 토리 시원하지?”

드라이기 바람이 너무 뜨거운 것 같아 미지근한 바람으로 바꿨다. 이쪽저쪽으로 돌아 눕히며 털을 뽀송하게 말린 다음, 뭉쳐있는 곳을 빗어나갔다. 턱 밑에, 등 뒤에, 특히 엉덩이 부분에 털이 많이 엉켜있었다. 평소 같으면 뭉친 부분을 빗어 내릴 때 아프다고 냐옹 거렸겠지만 토리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얌전한 고양이가 되어있었다. 보송보송하게 말린 털을 가지런히 빗겨 내린 다음 토리를 가슴에 안았다. 살아있을 때보다 더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토리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것만 같았다.

“토리가 갔어.”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자 바로 전화가 왔다.

“뭐야, 아침까진......!”

“아침부터 안 좋았잖아.”

“그래도 갑자기 어떻게, 병원은......”

“병원 데려갔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지금 갈게, 기다려.” 남편은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끊었다.

출장을 가거나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 날은 문자로라도 토리를 챙겼다. ‘지금 토리 뭐 해?’ ‘날이 무지 덥다, 물그릇에 시원한 생수 좀 부어줘.’ ‘모래는 잊지 말고 새 것으로 갈아줘.’ 토리가 더러운 걸 유독 싫어하는 성격이라 더 신경을 썼다. 남편 핸드폰에 들어있는 토리의 동영상과 사진들만 해도 15년 치만큼의 메모리 용량를 차지하고 있을 거였다.

토리를 키우기 전까지 남편은 개들을 더 좋아했다. 살살 꼬리를 흔들며 주인이 던져주는 공을 물고 오거나 배를 뒤집고 곁에 누워 애교를 떠는 개들이 키우는 맛이 있다고. 토리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만해도 남편은 그다지 마음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밀크커피 무늬의 새끼 고양이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토리 곁에 웅크리고 앉아서는 ‘눈 속에 우주가 들어있는 것 같아’라며 감탄을 했고 날파리를 쫓아 통통 뛰어오르거나 작은 벌레를 발로 살살 건드리며 노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리곤 했다.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핸드폰으로 검색을 했다. 집에서 가까운 화성 쪽에 ‘펫 메모리얼’이라는 장례식장이 있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반려동물의 아름다운 이별 동반자가 되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은 뒤 예약을 했다.

옷장을 뒤져 하얀 옷을 꺼냈다. 둘째아들이 작년에 사두었던, 품이 넓어 토리를 감싸기에 적당해 보였다. 침대위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듯 보이는 토리 곁에 가서 누웠다. 부드럽고 좋은 냄새가 나는 털을 쓰다듬으며 반쯤 뜨여있는 토리의 눈을 다시 한 번 감겨주었다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펫 메모리얼’은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깊은 숲 속에 있었다. 아래위로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여자가 상담실로 우리를 안내했고 장례절차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사무실을 나와 가슴에 안고 있던 토리를 염습실에 눕혔다.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올린 장례지도사가 깨끗한 수건으로 머리부터 발끝가지, 정성스럽게 닦아나갔다. 그녀는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받치고 조그맣게 뭉친 솜을 코와 귀, 항문에다 말아 넣었다. 그런 다음, 토리의 몸을 하얀 종이로 한 번 감싸고 그 위에다 삼베로 된 수의를 입혔다. 그리고 우리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라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염습실을 나와 토리를 화장장으로 옮겼다. 추모실 벽면에 있는 창을 통해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토리를 지켜봤다. 회색빛 화장로 위에 수의를 입은 토리가 눕혀지고 철문이 굳게 닫혔다. 15년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았던 토리가 한 줌의 가루가 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이었다. 위생복을 입은 남자가 토리의 뼈를 수습했다. 분골을 하기 전에 화장로에서 섞인 불순물을 손으로 일일이 솎아내고 채에다 걸렀다. 새끼손가락 마디만한 뼈들은 쇠로 된 절구에 넣고 서너 번 쿵쿵 찌어서 호두나무 유골함에 담았다. 채에서 걸러낸 고운 가루들은 흰 종이에다 따로 싸서 건네주며 좋은 곳에다 뿌려주라고 했다.

감귤 색 보자기로 싼 유골함을 가슴에 안고 우리는 장례식장을 돌아 나왔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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