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때론 더 잔인하다
아이들이 때론 더 잔인하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11.30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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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오늘 문득, 무릎에 있는 오래 된 흉터 자국을 보다 그때 일이 생각났다.

‘나무늘보 경미….’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우리 반에 시골 깡촌에서 부산으로 전학 온 경미라는 아이가 있었다. 경미는 말과 행동이 느리고 덩치가 커서 마치 나무늘보처럼 순한 친구였다. 그 무렵, 우리 반에는 희주와 상희라는 양대 산맥이 있었는데 상희는 공부를 잘하고 똑 부러지는 카리스마로 인기가 많았던 반면 희주는 공부는 못했으나 예쁘고 집안이 빵빵해서 인기가 많았다. 아이들은 이쪽 아니면 저쪽이었지 이도저도 속하지 않은 아이는 별로 없었다.

나는 희주와 같은 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그리고 가끔 푼수 짓으로 희주를 웃겼기 때문에 ‘희주 파’가 되었다. 내심으로는 수준이 높아 보이는 ‘상희 파’에 들고 싶었지만 선택은 힘없는 자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희주 꼬봉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특별히 끼워주는 거라며 재밌는 일이 있으니 나오라고 했다. 배 깔고 누워 TV보는 거 말고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죠다쉬 반바지에 나이키 신발을 챙겨 신고(나름 멋을 낸 뒤) 희주 집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특별히 끼워주는 재미난 일이 무엇일지 무척 기대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 오늘 경미네 놀러가기로 했다. ㅋㅋㅋ”

희주 집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말했다.

“경미? 시골서 전학 온 걔 말이가? 근데 늬들 걔랑 안 친하잖아?”

“우리가 불쌍해서 좀 놀아줄라 그런다 왜! ㅋㅋ”

왠지 모르게 느낌이 쎄… 했다.

어쨌거나 경미 집은 산복도로에 있었다. 지금은 벽화도 그려놓고 미니 케이블도 설치해 관광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지만 내가 살던 그때만 해도 판잣집이 즐비한 산동네였다. 희주 꼬봉이 미리 알아봐둔 경미의 집은 산동네에서도 제일 꼭대기에 있는 작고 초라한 집이었다. 녹이 쓴 파란 대문 앞에서 우리는 경미를 불렀다.

“경미야~~ 우리 왔다. 같이 놀자~~”

잠시 뒤, 토끼 눈이 된 경미가 튀어나왔다.

“니들 여기까지 웬일이고!!”

“웬일은. 니하고 같이 놀라고 왔지~~”

“퍼뜩 들어온나. 아이고 덥다. 미숫가루 타주까. 여기 좀 앉아있어라~~”

신이 난 경미는 평소보다 열 배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은 그런 경미를 보며 지들끼리 눈빛을 주고받으며 킥킥 웃었다. 도대체 경미하고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놀이는 뭘까? 학교에서는 눈길 한 번도 주지 않던 애들이었다. 아무래도 뭔가 꿍꿍이가 있어 보였다.

경미 할머니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신다고 했다. 좁은 방에는 할머니와 단 둘이 사는 단출한 살림살이가 놓여있었다. 이불. 선풍기. 텔레비전. 라면상자와 옷가지 정도였다. 아이들은 경미가 타준 미숫가루는 손도 대지 않고 킥킥 웃으며 말했다.

“경미야, 우리 재밌는 놀이할래?”

희주 꼬봉이 경미에게 게임의 법칙을 알려줬다. 한 명씩 돌아가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나머진 숨는 놀이라고 했다. 유치하게 뭔 숨바꼭질이냐고 말하려다 나는 입을 닫았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경미에게 이불을 쓰고 있으라고 했다. 해맑은 경미는 자기는 등치가 커서 이불도 커야한다며 다락에서 크고 두툼한 이불을 끌어내려 뒤집어썼다. 이 누추한 집까지, 시골에서 올라와 친구 하나 없는 자기와 놀아주려고 찾아온 친구들을 위해 경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던 거다.

“빨리 숨어라 더워 죽겠다~~~”

아이들은 경미가 이불을 뒤집어썼는데도 숨을 생각을 안했다. 그때, 쭈뼛거리며 서있는 아이들을 향해 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밟아!!!”

밟어? 누구를… 경미를? 희주의 말에 아이들은 경미가 들어있는 이불 위에 하나 둘 올라탔다. 그리고 희주는 자기가 정한 놀이의 규칙대로 이불을 밟기 시작했다. 숨이 막힌다며 이불 속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경미를 아이들은 몸으로 덮쳐눌렀다. 이불 속에서 서럽게 우는 경미의 울음소리에 아이들이 하나 둘 이불 위에서 떨어져 나왔다. 흘러내린 이불 밑으로 헝클어진 머리에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경미가 앉아있었다.

그때 나는, 얼음처럼 서있기만 했다. 그러다 정신없이 경미 집을 뛰쳐나왔다. 산복도로 비탈길을 미친개한테 쫓기는 사람마냥 뛰어내려오다 철퍼덕 자빠지는 바람에 무릎이 갈리고 찢어졌다. 공사장 근처라 모래가 잔뜩 쌓여 있었는데 그걸 집어 피가 나는 무릎을 비벼 닦았다. 경미에게 너무 미안해서 계속 눈물이 났다.

나는 그날 이후로 두 번 다시 희주 파들과 어울려 놀지 않았다. 희주가 한 일을 선생님께 일러바칠까 생각해봤지만 담임은 희주를 특히나 편애하는 사람이었다. 말해 본들, ‘사이좋게 놀아라’ 정도의 타이름에서 끝냈을 거다. 가난한 사람에게 더 잔인한 건 학교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학년이 끝나고 3학년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이들과도 헤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경미에게도 새로운 친구가 생겨있었다.

경미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적어도 희주 보다는 더 잘 살고 있으려나.

짓밟은 사람보다 짓밟힌 사람이 더 끈질기게 오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잘못한 사람이 잘못했다는 사과도 하지 않고 죽어버리는 세상은 참 더럽다.

그런 더러운 세상이… 아주 오래 전, 나에게도 있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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