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씨 이야기
정숙씨 이야기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1.07.22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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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며칠 전, 부동산에 갈 일이 있어 다녀오는 길에 갑자기 큰언니 생각이 났다. 우리 큰언니는 어떤 사람이냐면 세상에 혼자 똑똑한 체는 다하면서 알고 보면 그런 허당이 없는 뭐 그런 사람이다. 게다가 이름으로 말 할 것 같으면 학교 혹은 법원 같은 곳에 흔히 걸려있는 글귀, 그거 있잖은가. <정숙>

그러니까 우리 언니의 이름은 ‘정숙’이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자기 이름을 매우 못 마땅해 했다. 평생을 정숙하게 살아야 된다는, 마치 정조대 같은 이름이라고 느껴졌던가 보다. 그래서인지 언니는 여고를 졸업하면서부터 ‘정숙’과는 전혀 반대되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방학을 하고 서울에서 내려오면 집으로까지 찾아오는 남학생과 동네에서 마주치는 군인까지, 언니 주변엔 언제나 남자들이 넘쳐났다. 어느 날은 야구선수 최○○이 우리 아파트 수위실로 찾아와 언니를 불러낸 적도 있었다. 솔직히 얼굴도 반반하고 공부도 잘했던 언니는 내가 봐도 꽤나 매력적인 여자였다.

어쨌거나 전혀 정숙하지 못 했던 정숙 씨는 여자 친구들 보다 남자 친구들이 훨씬 많았고 그 때문인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에 또, 나이를 먹고 이러면서 남아있는 여자 친구가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 했다. 하지만 언니는 몇 없는 여자 친구들에 대해서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쟤들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친구들이지.”

하지만 그 믿을만한 여자 친구 중 하나가 언니의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쳤던 사건이 있었다. 사업을 하며 제법 돈 맛을 봤다는 그녀는 가끔 언니에게 돈을 빌렸는데 주로 이런 식이었다. 50만원을 빌려 한 달 만에 갚음. 100만원을 빌려 보름 만에 갚음. 300만원… 두 달 만에 갚음. 거기다 이자까지 후하게 쳐서 언니에게 빌린 돈을 갚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는 ‘황금알 사업’이라며 언니에게 2배로 불려주겠다 약속하고 적잖은 돈을 꿔갔다. 큰언니는 입시학원에서 밤낮으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모아뒀던 큰돈을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 언니에게 몽땅 빌려주었다.

“쟤처럼 돈을 딱딱 잘 갚는 애는 아무도 없어.”

이런 자랑까지 덧붙였지만 나는 그 언니가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언니에게 경고했다.

“그러다 큰 코 다친다. 진짜!”

우리 언니는 진짜 코가 컸다. 한국사람 치고는 코가 너무 높아서 가끔 우리 조상 중에 코가 큰 외국 사람이 섞여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결국 언니는 그 많은 돈을 사기 당했다. 한 푼도 돌려받지 못 했으니까.

그 이후로 언니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다. 누구에게도 절대 돈 같은 건 빌려 주지 않겠다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고 진짜 그렇게 살았다. 덕분에 야무지게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한 덕분에 돈 걱정 없이 살게 됐다. 그러다 작년이었나.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이제 나이가 들어 할 일이 없어진 정숙 씨는 가끔 집 앞에 있는 부동산에 들러 아줌마하고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날도 부동산에 들러 집값이 얼마나 올랐나 뭐 그런 시답잖은 얘기나 나눌까 싶어 부동산에 들렀던가보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하나가 부동산 아줌마 앞에 앉아 울고 있더란다. 얘기를 들어보니 살고 있는 집에서 주인이 나가라고 했는데 집을 구하려니 가진 돈으로 마땅히 갈 데는 없고 남편은 신불자라 돈도 빌릴 수 없단다. 친정식구며 가까운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 얼마 전에 작은 미용실 하나를 차렸지만 버는 족족 빚 갚는 데로 빠져나가버린다고 했다. 애들 둘 데리고 어디라도 집을 얻어야 되는데 지금 부동산 아주머니가 보여준 방 두 칸 자리 그 집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보증금 500이 모자란다는 이야기였다.

“더 이상은 돈을 빌릴 데가 없어요.”

낼 모레 집을 빼야 되는데 그냥 딱 죽고 싶다며 훌쩍거렸다. 큰언니는 그녀 곁에 앉아 믹스 커피를 홀짝 거리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름처럼 정숙하게 앉아 잠시 생각을 했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남편이 집 보증금을 빼다가 사업에 몽땅 꼴아박는 바람에 애 데리고 반 지하 방에 살 때 주인집이 먹다버린 수박껍질을 보며 눈물 흘린 적도 있었어. 그땐 정말 딱 죽고 싶었는데….’

언니는 옆에 앉아있는 생판 처음 보는 그 젊은 엄마에게 500을 빌려주겠다고 나섰다. 매달 얼마씩이라도 떼서 갚으라고, 그러면 되지 않겠냐고. 부동산 아주머니도 그 젊은 엄마도 깜짝 놀랐다. 정숙씨는 그들이 놀라는 게 신이 나서 또 놀라운 소리를 했다. 내가 지금은 집에서 놀고 있지만 예전엔 꽤나 잘나가는 영어 선생이었다. 아이 둘, 학원 보낼 돈 없으면 내가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 내가 가르친 애들이 지금 내노라 하는 대학 졸업해서 일류 기업에 다 취직하고 지금도 찾아온다. 강남에 살 땐 내가 영화배우 누구누구도 가르쳤던 사람이다 등등.

어쨌거나 언니는 그렇게 젊은 엄마에게 돈을 빌려 주었다.

끝내 못 받을 지도 모를 돈 500을.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

어제는 오랜만에 큰언니를 만났다. 같은 동네에 살다 3개월 전에 이사 간 뒤로 처음이었다. 밥을 먹고 언니는 집 근처 행주산성으로 차를 몰았다. 덕양산 능선을 따라 지어진 행주산성은 생각보다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아름드리나무들이 입구부터 늘어서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날이 더워 더 이상 못 올라가겠다는 나를 끌고 기어이 행주대첩비가 있는 꼭대기까지 올라간 정숙 씨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푹푹 찔러대며 자랑을 했다.

“저기가 파주고 저쪽이 일산, 북한산도 저렇게 다 보이고… 멋지지 않냐!”

언니는 새로 이사 온 동네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어느새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정숙 씨는 이제 인생의 뒤안길에서 가끔 아프고 우울하기도 하지만 운동도 열심히 하며 잘 살고 있다고 했다. 행주산성을 나와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6000원짜리 커피를 사주며 정숙 씨가 말했다.

“인생 별 거 없다. 너무 용쓰지 말고 대충 살아.”

돈이라면 벌벌 떨며 아끼고 짤기며 살던 정숙 씨가 비싼 커피까지 사주며 하는 말이라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살아보면 별 거 아닌 게 인생이지만 살아보지 않고서야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또한 인생이니까.

.........

인생이란 / 윤수천

남기려고 하지 말 것
인생은
남기려 한다고 해서 남겨지는 게 아니다
남기려고 하면 오히려
그 남기려는 것 때문에
일그러진 욕망이 된다
인생이란 그저
사는 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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