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어제 나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싼 커피를 파는,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한 잔을 1500에 팔고 있는 카페에서 어떤 분을 만났다. 출판사 대표인 그 분은 내가 메일로 보낸 글을 읽어본 뒤 잠시 만나자는 연락을 주셨다. 무슨 기대를 하고 보낸 건 아니었다. 내 글의 방향이 맞는 건지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사실, 지난 6개월 동안 나는 책 한 권 읽지 않고 글도 쓰지 못했다.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 때려치우고 일자리나 알아볼까 싶기도 했다. 써 논 글들도 내 눈엔 허접하고 못 마땅했다. 누군가 나에게 뭐 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꿈을 좇고 사는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해야 하나, 쪽 팔리는 변명일 뿐이었다.

출판사 대표님이, 내 얼굴에다 종이를 확 집어던지며 ‘이것도 글이라고 쓴 겁니까!!!’

라고 소리치면 어쩌지. 아… 무서워….

다행히 그분은 온화한 표정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가방에서 꺼내놓은 종이 뭉치를 내 얼굴에 집어던질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개들에 대한 얘기, 동물병원에 대한 정보, 그분 은사님에 대한 말들이 오갔다. 그리고 드디어 내 글에 대한 얘기를 꺼내셨다.

“계약합시다.”

기대도 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나 같은 사람에게 책 계약이라니….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그분은 펀치 한 대를 더 날리셨다.

“두 권 계약합시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저러다, 껄껄 웃으며 ‘농~담입니다!’라고 말하면 내 표정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거지? 당황하지 말고 어떻게든 애드리브로 받아쳐야 해. 여유 있게….

내 입에서는, ‘에이 제가 무슨… 저는 네임드도 없고 글도 별로고… 누가 제 책을 사기나 할까요. 하하…하’ 이런 잡소리들이 두서없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다음 주에 계약서 쓰면 되겠습니까.”

그분이 말했다. ‘아 네, 그래주신다면야 너무 좋지만….’

그 이후로도 무슨 말인가를 한참 한 뒤 헤어졌다. 꿈인지 생시인지, 노트북을 맨 가방이 어깨에서 자꾸 미끄러져 내렸다.

그렇게 어제 하루를 보내고 오늘 아침에 눈을 떴다.

‘꿈이었나?’

아들에게 문자가 와있었다. 들 뜬 마음에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 내가 친구들한테 자랑했어요. 축하해요 엄마!!♡♡’

‘아… 꿈은 아니었구나.’

이번 생애 처음 겪는 일이라 여기저기 전화해서 미리부터 축하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혹시 계약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내 인생, 최고의 쪽팔림으로 끝나버리면…. 조금 참았다가 계약서라도 쓰고 말 할 걸 그랬나.

‘에이~~ 출판사 대표님이 그럴 분은 아냐.’

하지만. 그분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금요일에 계약서를 쓰자고 약속 해놓고! 아직 화요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계약서를 3일씩이나 앞당겨 보내왔다. 감사한 마음에 얼른 사인을 해서 보내드렸다. 아니 어쩌면, 없던 일로 하자는 연락을 받게 될까봐 겁이 났다. 하하…하

사람들에게 내 책이 나온다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자랑을 할 수 있게 됐는데….

또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내 책이 나온다고 한들, 이름도 경력도 없는 작가의 소설을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글이 너무 엄청 말도 못하게 좋으면 또 모를까. 괜히 일 벌렸다가 나를 믿고 계약해준 출판사에 누를 끼치면 어떡하지. 1쇄도 다 팔리지 않으면….

그런 고민 중에, 써 논 글 몇 편을 신춘문예 응모하는 곳에 보냈다. 혹시라도, 하나라도, 아니… 최종 심사평에라도 이름을 비치면 그나마 좀 낫지 않을까, 하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진짜 솔직히 언감생심 기대하진 않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신춘문예에 도전하지만 말 그대로 하늘의 별 따기,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게 쉽지, 같은 말들이 왜 나왔겠는가 말이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12월 21일.

아침부터 모르는 번호로 자꾸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그런데 또 전화가 왔다. 그래서 차단하려다가 목록 중에 ‘나중에 다시 연락바랍니다’라는 문구를 골라 보냈다. 그랬더니 문자가 왔다. 시간 되실 때 연락 부탁드린다고. 내가 신춘문예를 응모한 곳이었다. 문자를 보자마자 0.000001초 만에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최종심사에 올라왔다고, 혹시 다른 곳에 응모하거나 신인 작가가 아닌 건 아니냐고 물었다. 절대. 네버. 결코. 그런 일은 없다고, 저는 진짜진짜 신인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최종 결과가 나오면 다시 연락을 주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부터 없던 기대감이 마구 치솟아 올랐다.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거잖아!

3시간쯤 지났나, 아니 사실은 30분이 지났을 뿐이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내가 신춘문예에 당선이 됐다는 것이다. 너무 기뻐 토할 것 같았다. 눈물도 좀 흘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출판사 대표님께 전화를 드렸다.

“저, 신춘문예 당선 됐대요, 대표님!”

나만큼이나 기뻐하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잘됐다고, 정말 잘된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내세울게 하나도 없는 무명작가(지망생)에게 덥석 계약부터 해준 고마운 분이었기에 더욱 감사드리고 싶었다. 글 쓰는 걸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 내 손을 잡아 준 신문사와 출판사에 모두 모두 감사드리고 싶다.

늘 내 곁에서 힘을 주고 격려해 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 본다. 글을 놓지 않도록 깨알 같은 잔소리로 나를 몰아붙였던 동생 K와 아낌없는 악평으로 피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친구 J. 지금처럼 앞으로도 나를 포기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던 가족들 덕분에 오히려 부담 없이 글을 쓸 수 있었다. 소설을 써보라고 격려해주신 이외수 선생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누군가에게 내 글이 작은 위안이 될 수 있다면 앞으로도 30년쯤은 더 노력해 볼 생각이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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