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지금 나는, 강원도 원주 외곽에 있는 ‘토지문화원’이라는 곳에 들어와 있다.

한적한 시골 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흥업면 매지리 회춘마을에서 오봉산 쪽을 바라보며 조금 들어가다 보면 산 속에 은밀하게 감춰놓은 듯, 포옥 들어앉아 있는 건물 몇 채가 나온다. 이곳 토지문화원은 우리에게 ‘토지’로 잘 알려진 박경리 작가님이 글을 쓰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취지로 만들게 된 공간이다. 매년 2월에 신청을 받아 1달에 10명 정도의 작가들이 평균적으로 2~3달 정도 머물며 글을 쓰는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에 와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작년까지는 정식으로 등단을 한 작가가 아니었기에 인연이 닿지 못했다. 하지만 올해 신춘문예로 등단을 하고 출판사와 계약된 단편집도 있어 설레는 마음으로 지원을 하게 됐고 운 좋게 입주 작가로 뽑히게 됐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나는, 글을 정말 열심히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글을 쓸 공간이 없어 열심히 쓰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하루의 대부분이 조각난 시간의 연속선상이라 글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매일의 일상에서 벗어나 좋은 환경 속에서 오로지 글에만 집중해보고 싶었다.

첫날, 입주 작가들이 모여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이곳 시설에 대한 설명을 들은 다음 뽑기로 방을 배정받았다. 집필실은, 붉은 벽돌집의 ‘귀래관’과 ‘매지사’라고 불리는 황토색 목조건물로 나뉘는데 나는 귀래관 105호에 머물게 됐다. 사람들 말로는 105호가 이곳에서 제일 좋은 방이며 주로 외국에서 온 작가들에게 대여해주는 방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넓은 창으로 오봉산이 한 눈에 보이고 정갈한 책상과 침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 아마 결혼하고는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첫날은 저녁을 먹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새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곳이라 더더욱 달게 잔 것 같다. 그리고 이곳에서 무엇보다 좋은 것은 남이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거다.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오며 내 손으로 밥을 짓지 않으면 안 되는 삶을 살다 손에 물 하나 묻히지 않고 하루 삼 세끼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게 일단은 너무 감격스러웠다. 밥을 먹을 때마다 속으로 ‘박경리 선생님 감사합니다!’를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으며 산 속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한가로이 산책을 나서는 풍경...... 정말 꿈에서나 그리던 생활이었다. 일주일쯤 지나자 몇몇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나면 둘, 혹은 서너 명이 모여 함께 산책을 나섰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조용히 글만 쓰다 오겠다는 다짐했었다. 그래서 밥을 먹으러 갈 때도 모자를 깊이 눌러 쓰고 혼자 조용히 밥을 먹고 문화원 3층에 있는 도서관에 들러 책을 빌려 내 방으로 곧장 들어와 버렸다. 내 성격이 워낙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한번 어울리기 시작하면 결국 글 한 자 제대로 쓰지 못하고 돌아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난 한 달 동안 나는, 그 누구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혼자 다녔다.

간혹 말을 걸어오는 분도 계셨지만 짧게 인사만 나누고 서둘러 내 방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토록 바라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아 사람들하고 어울리지 않아도 외롭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는, 내 방 맞은편에 계시는 작가님이 삶은 달걀과 토마토를 가져오셨다. ‘이거 먹어봐요.’ 구수한 강원도 말씨였다. 내가 아무 하고도 어울리지 않고 모자만 푹 눌러쓰고 다니는지라 사람들이 궁금해 한다고 했다. 글 쓰는데 방해받고 싶지 않아 그럴 수도 있는데 이런 좋은 자연 속에서 방에만 콕 틀어박혀 있지 말고 산책도 다니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도 나눠보고 그러는 게 더 많은 걸 얻어가는 거라고 했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날 처음으로 그 작가님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혼자라도 매일 오르내린다는 오봉산 꼭대기까지 천천히 걸으면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맑은 계곡물과 아름드리나무들이 뿜어내는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작가님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 새 산꼭대기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 너무 좋아요 작가님.’ ‘그래, 내가 뭐라 핸나. 이래 올라와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그래야 이런 데(토지 문화원) 온 보람이 있는 거라. 나는 2년 전에도 여기 왔더랬는데 떠나고 나니 이 산길이 그리 그립더라고.’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니 창밖으로 하얗게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앉아 새가 짖고 개가 우는 조용한 동네를 한참이나 멍하게 내다보며 앉아있었다.

결혼을 한 뒤로 단 한 번도 온전히 내 방... 내 공간... 내 책상...을 가져보지 못하고 살아왔던 시간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 온전히 내 방, 내 공간, 내 책상 속에 앉아 있었다. 감사한 마음에 울컥... 조금 눈물도 나고 문득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를 꼭 얻어가야겠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지난 한 달을 보냈다. 방 값도 밥 값도 받지 않고 어떤 댓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순백하고 순수한 호의에 대해 처음엔 조금 낯설기도 했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져본 적 없던 사람이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 한 달......

이젠 조금씩 실감하고 있다. 그래,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쉬자. 살다보면 이런 선물 같은 시간도 가끔은 오게 되는 거라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되는 거라고 결린 어깨를 쭉 한번 펴본다.

마법 같은 하루가 또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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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됨됨이 / 박경리

가난하다고
다 인색한 것은 아니다
부자라고
모두가 후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 다르다
후함으로 하여
삶이 풍성해지고
인색함으로 하여
삶이 궁색해 보이기도 하는데
생명들은 어쨌거나
서로 나누며 소통하게 돼 있다
그렇게 아니하는 존재는
길가에 굴러 있는
한낱 돌멩이와 다를 바 없다
나는 인색함으로 하여
메마르고 보잘것없는
인생을 더러 보아 왔다
심성이 후하여
넉넉하고 생기에 찬
인생도 더러 보아 왔다 

인색함은 검약이 아니다
후함은 낭비가 아니다
인색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위해 낭비하지만
후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는 준열하게 검약한다
사람 됨됨이에 따라
사는 세상도 달라진다
후한 사람은 늘 성취감을 맛보지만
인색한 사람은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다.

- 박경리 유고 시집/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中 -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 중인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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