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이주리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시를 쓰는 친구에게서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나리 나리 김나리(도마뱀).
이 책을 쓴 작가의 이름이 김나리라고 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 ‘나리 나리 개나리~~’라고 친구들에게 종종 놀림을 받았을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왠지 귀여운 이름이었다.
주로 소설을 읽는 편이라, 에세이는 사실 손이 잘 가지 않는 장르다. 하지만 잠 들기 전에 잠시 펼쳐 본 책을 새벽까지 읽고 말았다. 오랜만에 느껴본, 가슴으로 뚫고 들어오는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글 쓴 이가 궁금해졌다. 주로 작가들이 자기소개를 적어 놓는 책날개를 펼쳐봤다. 딱 한 줄이 적혀있었다.

일주일에 나흘은 일하고, 사흘은 글을 씁니다.

어느 대학을 나오고 무슨 상을 탔고 출간되어 나온 책은 무엇이다, 같은 일반적인 소개는 전혀 없었다. 그래서 프롤로그를 읽어봤더니 해방촌에 있는 고기 집에서 사흘, 나머지 하루는 서점에서 일을 한다고 나와 있었다. 이따금 짧은 글을 발표하거나 글쓰기 수업도 하고 있다고 했다. 그걸 보며 나는 잠시 반성했다. 작가는 글로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인데 나는 그 이외의 것들에 더 관심이 많았던 건 아닐까. 이 정도 상을 받았으면,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을 썼으면 믿고 읽어볼만 하겠구나, 같은 속물근성과 얍삽한 저울질. 적어도 문창과나 국문과에 발이라도 담가본 사람이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겠어, 라는 자격지심이 발동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달리 그녀는, 겸손한 사람인 듯 했다.
고깃집과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그러니까 일반적인 눈으로 보자면 ‘고단한 알바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녀의 글은 궁색하지 않았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눈물 질질 짜는 신파도 아니었다. 숯불에 구워먹는 소금구이처럼 담백하고 질리지 않았다.
일을 하며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먹고 살 돈이 있어야 글도 계속 쓸 수 있다. 글을 쓰며 살겠다고 마음먹은 사람 중에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 역시 그랬다. 매달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을 포기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글은 쓸 수 있지만 나머지 하나를 내려놓아야 더 갈급하게 매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 사람이 돈돈 하다보면 돈(豚) 되는 거야! 
호기롭게 일을 때려치우고 나와 짬짬이 써놓은 글들을 이곳저곳에 응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목숨 걸고 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었다. 문창과를 나오지 않아서,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안 되는 거라며 지레 포기하고 싶었다. 그냥 돈이라도 벌 걸 뭐 하러 일까지 때려 치고 나와 이 짓거리를 하고 있나, 자책도 수없이 했다. 뒤 돌아 나가기엔 이미 늦었고 앞으로 나가자니 너무 지치고 고달팠다. 이왕에 여기까지 온 거 어쩔 수 없잖아. 그런 마음으로 버티다 운 좋게, 정말 운이 따라주어 겨우겨우 등단을 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며 글을 쓴다는 건, 어찌 보면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마리 토끼만 쫓는다고 해서 그게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유능한 사냥꾼은 토끼뿐만 아니라 꿩도 잡고 멧돼지도 잡는다. 고기를 굽고 서점에서 책을 팔면서도 이렇게 좋은 글을 써낸 김나리 작가처럼 말이다.

 

ⓒ위클리서울/ 도마뱀

이 책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에세이다.
소설이나 시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에세이는 읽는 사람들에게 ‘공감’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해내야 한다. 아무리 미사여구를 화려하게 써 넣는다 해도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생활 체감을 보여주지 못 하면 말짱 황이다. 자기가 겪은 아픈 상처들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 한다. 소설처럼,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닙니다... 라고 잡아 뗄 수도 없다. 시처럼, 은유적인 표현으로 희석시킬 수도 없다. 그러므로 에세이는 용기 있는 사람이 쓸 수 있는 장르이며 김나리 작가는 그걸 해냈다. 적어도 내겐 이 책이 그렇게 읽혔다.

황인숙 시인은 추천사에 이렇게 써놓았다.
“사랑의 실패를 주제로 한 이 연작 에세이 주인공의 의연한 자존감, 그리고 그에게 비롯한, 자기를 웃을 줄 아는 유머 감각이 참담했을 책 속 정황에 눈을 질끈 감던 독자의 저린 가슴을 다독여주고 숨통을 트여준다. 사랑을, 곧 삶을 치열하게 앓으며 치열하게 기록한 병상일지라고 할까. 자기 자신에 대한 난폭하고 질긴 파괴욕구와 그를 헤쳐 나가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그려지는데, 그를 따라가는 게 답답하기만 한 고통이기는 커녕 외려 맑은 오솔길 하나가 생긴듯한 건 힘 있는 글을 읽을 때 느끼는 희열에도 큰 몫이 있으리라. 
소설이든 에세이든 김나리의 다음 작품이 벌써 기다려진다...“

역시, 시인은 대단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였는데 말이다. 
이 책에 실린 모든 글이 다 좋았지만 특히 더 좋았던 것은 김나리 작가의 이 문장들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내 모든 취향과 상상을 바쳐 그들을 사랑했다.. 나는 이제 사랑 없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감정이 인생의 신념이 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이 신념이 되면 사랑이 실패했을 때 인생이 무너진다.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나는 내 인생 전부를 바쳐 배웠다...”

아직 30대인 김나리 작가가, 인생의 전부를 바쳐 배웠노라고 말 하는 부분에서 나는 조금 웃었다. "적어도 내 나이 정도는 돼봐야..." 라는 식의 웃음이 아니라, 누군가는 300년을 살았다 해도 깨우치지 못 할 진리를 벌써 알아버린 그녀에 대한 기특함과 대견함의 웃음이었다.
조만간 나는, 김나리 작가님이 일하고 있다는 해방촌의 ‘혼고(혼자 고기 구워먹는 집)’에 가 볼 생각이다. 사인은 필요 없다. 그녀와 함께 나눈 한 잔 술과 따듯한 대화면 충분하다. 
만약 2차로 노래방에 가게 된다면, 작가님께 심수봉의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불러 달라고 
떼 쓸 지도 모르겠다. 이보다 그녀에게 더 어울리는 노래는 없지 싶다.

“마음은 어쩌면 우리의 수호신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지키려고 신이 마음을 하나씩 넣어준 것 같습니다. 다른 건 세상에 나가 구하며 살고, 구할 수 없는 마음은 처음부터 넣어줄게. 너는 너의 마음을 갖고 살아. 사는 데 중요한 힘이 되어줄 거야. 마음이 있어 우리는 우리를 살피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책에서 한 말처럼, 
누구에게도 내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소중하게 잘 지켜내며 살길 바래본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저작권자 © 위클리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