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현수 객원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10월 초부터 동네 곱창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누군가 나에게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면 ‘작가’라고 대답하기엔 뭔가 쑥스럽고 ‘백수’라고 말하기에도 자랑은 아닌지라 닥치는 대로 일을 해보기로 했다. 마침, 집에서 멀지 않은 음식점 입구에 ‘주방 구함’이라는 종이가 써 붙여져 있길래 면접을 보러 갔고 사장은 나에게 ‘인상이 좋다’며 당장 내일부터 나와 일을 하라고 했다. 비록 동네 곱창집이긴 했지만 면접에 당당히 합격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하지만 다음 날부터 시작된 곱창집 주방에서의 하루 6시간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으로, 아니 그보다 10배쯤 힘들고 고달팠다. 그중에 제일 힘든 건 곱창집 사장의 잔소리였다.

‘아니 왜 양파를 그렇게 썰어?’

‘아니 왜 냉장고 문을 그렇게 쾅쾅 닫지?’

‘아니 왜 곱창을 그렇게 설렁설렁 닦는 거야!’

등등 잔소리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하지만 홀알바를 하는 젊은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이 다정하고 친절하게 굴었다. 그 이유가 기계치인 사장님 대신 카드 단말기와 결제프로그램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다는 거였다. 아들 또래의 홀알바 앞에서 온갖 잔소리를 들어먹는 것도 서러운데 아무리 열심히 닦고 썰고 만들어도 사장은 칭찬 한마디를 해주지 않았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나름 결심한 게 있었으니, 아무리 힘들어도 한 달은 버티자는 거였다. 하지만 일을 끝내고 밤늦게 곱창집을 나설 때면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눈물이 났다. 한 달을 채우려면 아직 일주일이 남았지만 더 이상은 저런 사장 밑에서 일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동안 곱창집 일을 하며 느낀 것은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면, 그들의 인격마저 최저치로 취급해도 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다. 사장은 며칠 잠잠하다가도 한 번씩 몰아치듯 승질을 부리곤 했는데 그걸 계속 받아줄 이유가 내겐 없었다.

 

ⓒ위클리서울/ 디자인=이주리 기자

손님이 역대급으로 밀어닥쳤던 어느 토요일...

홀알바가 5일 동안이나 휴가를 내는 바람에 지난 일주일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정신없이 보낸 뒤라 몸 상태도 좋지 않았다. 설거지할 새도 없이 계속 주문이 들어오는 탓에 주방에서 음식을 해내기도 바빴다. 그러다 9시쯤, 손님이 조금씩 빠져나가고 나자 그제야 산더미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홀에 있던 그릇들을 다 쓴 상태라 식기세척기를 빨리 돌려 내보내야 했다. 설거지대 앞에서 꾸역꾸역 그릇을 닦고 있는데 사장의 잔소리가 시작됐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날 밀치듯 밀어낸 사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왜 시키는 대로 안 하냐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 어느 세월에 이걸 다 닦겠냐고 화를 냈다. 손님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사장은 내 변명 따위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거칠게 그릇을 닦아나갔다.

너는 왜 이렇게 못 하는 거야! 이걸 보여주겠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말했다.

“사장님, 왜 화를 내세요. 저도 정신없이 일했어요.”

“양미씨가 시키는 대로 안 하잖아! 이렇게 하면 물도 덜 쓰고 빨리빨리 할 수 있는데!”

“사장님이 자꾸 잔소리를 하시니까...”

“잔소리?? 누가 잔소리를 했다는 거야, 지금!”

더 말해봐야 소용없겠다 싶어 어질러진 주방을 치우고 채소를 썰어 담았다. 그래, 그만하자.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저 사람 눈엔 안 차겠지. 이만큼 했으면 된 거야. 그런 생각으로 주방 정리를 했다. 가스 화덕 밑판도 꺼내서 씻고 냉장고도 깨끗이 닦았다. 주방 바닥까지 밀대걸레로 구석구석 물청소를 해놓고 퇴근 10분 전에 홀에 앉아있는 사장에게 갔다.

“사장님, 저 오늘까지만 일하겠습니다.”

사장의 눈꼬리가 사나워졌다.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면 어떡해!”

“이렇게 더는 일 못 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여?”

마침, 홀에는 사장의 남편도 함께 있었다.

“저는 여기에 일을 하러 왔지, 사장님에게 혼나고 잔소리를 들으려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아니, 내가 언제 잔소리를 했다고 그랴~~.”

“사장님, 제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좋은 말로 가르쳐주시면 되잖아요. 그럼 열심히 배우고 고치면 되고. 근데 사장님은, 왜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고 계속 면박을 주세요.”

“그거야 내가 말투가 그래서, 우리 남편한테도 그랴. 말해봐요 00아빠, 내가 원래 그렇자너 안 그래?”(남편분이 돌아앉으며, 에휴.. 라고 작게 말했다.)

“아니에요 사장님, 00이(홀알바)에게 말씀하실 땐 그러지 않아요. 수고했다, 잘 했다, 늘 그러세요.”

“그거야, 아직 어리니까아...”

“그럼, 나이 먹은 사람에겐 함부로 해도 되나요?”

“내가 언제 함부로 했다고...”

“얼마 전에 떡볶이 먹던 날, 물컵 하나 썼다고 홀알바 앞에서 저한테 면박 주셨던 거 생각 안 나세요. 저 그날 떡볶이 먹은 거 체했어요. 좋게 해도 될 말을 꼭 그렇게 하셔야 되냐구요.”

“아 그야 뭐, 그릇 하나 더 씻어야 되니까...”

“사장님도 결제하실 때 잘 몰라서 가끔 힘들어하시잖아요. 근데 누가 사장님한테, 왜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하냐고 면박 주면 기분이 어떻겠어요? 저도 일이 서툰 게 있지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곱창 손질도 이젠 잘하고 주방일도 제가 거의 다 하는데 한 달이 다 돼가도록 한 번이라도 잘했다고 칭찬해준 적 있으세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도 모르는 걸 배우러 가는 거지 선생님한테 혼나러 가는 게 아니잖아요. 모르는 게 있으면 배워가며 하는 거지 그게 혼나야 될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야 그렇지, 근데 내가..!!”

“저, 여기 일하면서 처음 며칠은 집에 갈 때 울었어요. 너무 속상하고 힘들어서. 그거 아세요?”(남편분이 혀를 쯧쯧 차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혼을 냈다고 그랴...”

“사장님이 직원인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한, 저는 여기서 일 못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해서 연락 주세요. 그렇게 알고 가보겠습니다.”

돌아서 나오려는데 사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연락은 무슨! 그러니까 내일 무조건 나와!”

끝까지 사장은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거나 따로 연락을 하지도 않을 거였다. 하지만 사장에게 자존심이 중요하다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자존심도 중요하단 걸 알려주고 싶었다. 속상한 마음에 집에 오는 길에 둘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이 버럭 화부터 냈다.

“엄마, 당장 그만둬요! 그런 사람은 고생 좀 해봐야 돼. 요즘, 일 할 사람 못 구해서 난린데 어, 내일부터 절대 나가지 마요. 알았죠!”

“근데 다른 음식점 사장들도 그래?”

“좋은 사람도 있지만 알바하는 애들한테까지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사장 별로 없어요. 잘해줘봤자 힘들면 말도 없이 그만두는 애들도 많고.”

“너는 사장이 혼내면 속상하지 않아?”

“나야 뭐, 워낙 일을 잘 하니까 싫은 소리 거의 안 들어봐서 잘 모르겠어요.”

“그럼 나는? 일 못 해서 그런 대접 받냐!”

“그게 아니라, 곱창집 사장이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거죠. 사람 우습게 알고 기죽이고. 그러니까 그런 사람한텐 열심히 해줄 필요 없다구요.”

“그래도 갑자기 그만두면...”

“엄마가 그걸 왜 신경 써요? 낼부터 무조건 나가지 마요.”

“내가 알아서 할게, 끊어.”

아들과 전화를 하고 난 뒤 페북에 들어갔다가 사고 소식을 보게 됐다.

10월 29일 밤, 너무 바빠 온종일 핸드폰도 한번 들여다보지 못한 날이었다.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꼬박 밤을 새우고(뉴스가 오보이길, 간절히 바랐건만) 고민 끝에 곱창집으로 출근했다.

적어도 이런 식으로 끝내고 싶진 않았다. 곱창집에 들어서자 사장님과 남편분이 나를 보며 반색을 했다. “아유, 잘 나왔어요. 어서와요~~~!”

나는 말 없이 일을 시작했고 사장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봤다. 그리고 이제껏 없던 부드러운 말투로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적어도 노력은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어젯밤, 내가 곱창집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사장이 말했다. 한번 더 노력해보고, 그래도 아니면 그만두라고. 그 '노력'의 주체가 나인 것인지 사장인지 명확하진 않았지만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믿어보기로 했다.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른 사람의 인격을 최저시급으로 보는 사람이 하나라도 줄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날 이후, 사장의 말투가 많이 달라졌다. 말 한 마디도 조심해서 하려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날 이후, 전 국민들이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지금의 시간을 버티고 계실 가족분들을 생각하면 편한 숨을 내쉬고 있는 것조차 죄송스러웠다. 158명의 죽음은 단지, 하나의 사건으로 묶일 수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똑같은 참사가 158번 일어난 것과 같다. 그러므로 책임을 따져묻고 제대로 뜯어고쳐야 한다. 말단 공무원 몇몇의 모가지를 치고 끝낼 일이 결코 아니다. 하다못해 동네 곱창집도 사장이 달라지지 않는 한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내가 곱창집 사장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적어도 내 권리와 자존감은 스스로 지켜내고 싶다. 고작 한 달 남짓이었지만 처음과 지금이 다르고 앞으로는 조금씩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곱창집으로 출근한다. 

<김양미 님은 이외수 작가 밑에서 글 공부한 꿈꾸는 대한민국 아줌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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