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베개 삼아 낯설여관에서 잠시 쉬어 가다
책을 베개 삼아 낯설여관에서 잠시 쉬어 가다
  • 김양미 기자
  • 승인 2023.01.3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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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두 달 전부터 잡지사에서 일을 하게 됐다. 그곳에서 내가 처음으로 맡게 된 꼭지는, 동네의 ‘작은 책방’을 찾아가 소개하는 글을 쓰는 것. 내가 사는 곳이 수원인지라 가까운 곳부터 찾다보니 <낯설여관>이라는 독특한 책방을 알게 됐다.

수원의 구시가지에 자리한 낡은 벽돌 건물의 2층 계단을 오르면 아기자기한 소품과 사진들로 꾸며진 복도가 나오고 그곳에 네 개의 초록색 문이 놓여 있었다. 마치,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초록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그중에 제일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204호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늑한 숲속처럼 작은 책방이 나타났다.

<낯설여관>은 책방과 제로 웨이스트 숍, 사진관으로 구성된 작은 복합 문화 공간이다. 책방지기 한지혜씨는, 도심 속 한가운데 있지만 ‘일상 여행가들의 쉼터’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삶이라는 힘든 여행길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에 이곳을 <낯설여관>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했다.

“구조가 특이해서 잘만 꾸미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이곳까지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찾아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그러다 오래된 건물에 방이 여러 개 있는 특이한 공간이란 점을 활용해 방 번호를 만들어 붙이고 ‘여관’이라는 차별화된 컨셉을 선택하게 됐다고.

<낯설여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공간이 있다. 한쪽 벽면에 아기자기하게 놓여 있는 제로 웨이스트 상품들이다. 책방지기는 청소년 시절부터 산성비나 환경 문제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를 고민하던 소녀였다. 그러다 우연히 세제, 먹거리 등을 자기가 가져온 용기에 덜어 가는 리필스테이션 <알맹상점>을 알게 됐고, <낯설여관>을 준비하며 제로 웨이스트 숍을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리필스테이션 제품의 가격이 생각보다 비싸다는 것이 한몫 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처음부터, 돈을 벌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니까요. 책을 사러 오셨다가 우연히 관심을 두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분들에게 지구와 환경을 살리기 위해서는 꼭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강요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한 명의 완벽한 실천가보다 열 명의 불완전한 실천가가 훨씬 더 힘이 세다’고 저는 믿고 싶거든요.”

하고 많은 일 중에 비주류로 분류되는 ‘동네 책방’을 선택하게 된 건, 작은 공간에서나마 마음이 맞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결혼 전까지 사서로 일했던 그녀는 일을 통해 자아실현까지 바라진 않더라도 따뜻함이 있는 공간에서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여러 도서관을 다니며 1인 사서로 혼자 일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다. 남편과 이곳저곳을 함께 여행 다니며 그때마다 작은 서점들을 둘러보게 됐고 ‘나도 한 번’ 이런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또한 회사 생활에 묶여 있는 삶이 아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을 내비쳐, 둘은 <낯설여관>을 열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보니 매 순간이 고비였다. 자영업은 처음인 데다 누군가가 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도 힘들었다. 어떤 날은 투숙객(서점을 찾는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내가 좀 더 열심히 하면 이 공간을 더 빨리 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앞서다 보니 번아웃이 왔다. 손님들에게 상처받는 일도 생겼다. 툭툭 던지는 말, ‘이렇게 해서 먹고 살 수 있어요?’, ‘요즘도 책 읽는 사람이 있나?’, ‘이거, 지원금 받아서 하는 거죠?’ 같은 말들이 가슴에 콕콕 박히기도 했다.

<낯설여관>의 주인장으로 살아오며 지난 2년 동안 재미있는 일도 많았다. 그중엔 책방 이름 때문에 생긴 오해도 있었다. 이곳이 진짜 여관인 줄 알고 찾아든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얼마 전에는, 새벽에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에 상가 건물 지하에 있는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나와 봤더니 술에 취한 아저씨가 왜 문을 안 열어주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는 거다. 여관에서 자겠다는 아저씨를 끌어내느라 애먹었다는 얘기를 사장님께 전해 들었다. 거기다 가끔씩은 숙박 예약을 하려는 사람들의 전화를 받기도 하고 젊은 남녀가 여관인 줄 알고 들어왔다가 머쓱해져 돌아간 일도 있었다. 한지혜 씨는 이런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모아 얼마 전 <낯설일기>라는 책을 직접 출간하기도 했다. 힘들더라도 재미와 의미를 ‘잊지 말고, 잃지 말고’ 살자는 의미에서 기록해 둔 글이었다.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위클리서울/ 김양미 기자

어찌 보면 <낯설여관>은 ‘숨은 맛집’과도 같은 책방인지 모른다. 다양한 밑반찬이 나오는 백반집처럼, 개성도 주제도 다른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삶과 죽음, 결혼과 비혼, 페미니즘, 성 소수자들의 에세이, 그리고 ‘그림책은 0세부터 100세까지 보는 것이다’라는 메모가 붙어 있는 동화책 부스까지, 다양하게 큐레이션 되어 있었다. 책방지기는 이곳 <낯설여관>이 ‘백 명이 한 번 오는 곳보다 한 명이 백 번 오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 큰 욕심은 없다는 그녀. 평생 <낯설여관>의 주인장으로 살아가겠노라 장담하지도 않는다. 지금의 이 일을 잘 해내고 싶지만 어떤 상황이 닥치면 또 다른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제주도에 내려가 게스트하우스를 하거나 심야식당이나 카모메 식당처럼 맛있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식당을 열어보고 싶다고. 하지만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므로 너무 앞서 계획을 세우진 않으려 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삶의 갈림길에서 초록 문을 마주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운 마음에 서성이다 뒤돌아 버렸는지도.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기보단 용기 내어 초록 문의 손잡이를 돌려 보는 건 어떨까. 어쩌면 인생의 진짜 행복을 그곳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낯설여관>의 두 여행자가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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