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미의 해장국 한 그릇]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위클리서울=김양미 기자] 오늘 아침, 산책길에 우아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왜가리를 봤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얼마 전에 보고 온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생각났고, 그날 영화를 같이 본 아들과 맥주 한잔하며 안주 삼아 먹었던 노가리가 떠올랐다.

'왜가리'와 '노가리'. 다른 듯 비슷한 이 단어는 글자 하나 차이다.

하지만 왜가리의 우아한 걸음걸이와 바싹 비틀어진 노가리포가 비슷할 리 없다.

뭔 말이 하고 싶어 이런 뜬금없는 비교를 하냐면,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난 나의 느낌을 말해 보려고 이런다.

한국 영화의 보증수표 격인 이병헌 씨를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와 영화에 삽입된 음악까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그 부분이 '왜'자의 역할을 했고, 영화는 노가리가 아닌 왜가리 대접을 받았다.

여우처럼 영리하게 연기를 해낸 손예진과 염혜란의 압도적인 열연이 영화를 볼만하게 만들었다. 거기다 베테랑 연기자인 김해숙 씨를 1분 컷으로 쓸 정도로 화려한 조연들이 줄줄이 나온다. 그렇다면, 이런 고급스러운 바탕을 다 뺀 시나리오 하나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을 수 있을까.

노가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술안주다. 싸고 맛있고 담백하다. 재료가 비싼 안주들에 비해 대접받지 못 하지만 나름, 좋아하는 팬층이 있다. 영화로 치면 작품성이 뛰어난 독립영화라 할 수 있겠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주연과 화려한 조연들을 빼고 그 자리에 무명의 배우들로 채워 넣었을 때,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왜가리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내 생각엔, 글쎄... 잘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이라는 거장의 이름과 이병헌이 주연을 맡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기엔 충분했다. 영화 ‘올드보이’ 때부터 팬이 되었고 그 이후로 나온 작품도 모두 영화관에 가서 보았다. 한 마디로 돈이 아깝지 않다는 거다. 나 못지않게 박감독의 팬인 아들과 함께 영화표를 예매해 놓고 잔뜩 기대에 부풀어 영화관으로 향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숨죽이며 몰입해 보았다.

연기도 음악도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이 납득과 공감을 불러일으켜 포텐을 터뜨리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 영화의 클리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자폐를 가진 딸아이의 제대로 된 연주를 이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엄마에게 레슨 선생님이 '당신의 딸은 천재다.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게 없다.' 라고 말하지만 믿지 못한다. 집에서 아이가 연주하는 곡이라야 가장 기본적인 음계만 알아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곡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이 받는 첼로 레슨비가 한두 푼도 아니고, 보통의 부모라면 딸아이가 연주하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촬영해서라도 보여달라고 선생님에게 요구했을 거다. 하지만 이 부분이 결말에 가서 미리(손예진)가 만수(이병헌)의 살인을 묵인해 주는 '어쩔 수 없음'이 되어줘야 하므로 계속 몰라야 한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전개였다는 데에 아쉬움이 남았다.

그럼에도, 훌륭한 연기와 고급진 음악이 어우러진 블랙코미디의 매력도 군데군데 보였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장점을 잘 살린 영화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자, 뭐랄까... 뭔가를 잔뜩 담아오기 위해 너무 큰 가방을 준비했다는 느낌. 조금은 허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유연석이 처음 올드보이에 나왔을 때 생각이 난다.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생소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계속 성장해 가는 연기자의 모습을 보여줬고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훌륭한 연기자가 되었다.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닌, 숨어있는 보석을 발굴해 내는 것 또한 한국 영화의 발전을 위해 박찬욱 감독 같은 거장이 해나가야 할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과유불급’ 새로운 얼굴이 없었다는 말이다.

"너나 잘하세요..."

이런 멋진 대사 하나 얻어오지 못한 아쉬움은 있으나 그럼에도 보다 더 멋진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영화를 찍어 놓고도 영화관에 올리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독립영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훌륭한 시나리오와 작품성은 인정되나 이름이 알려진 배우가 나오지 않으면 관람객들에게 외면당하는 한국 영화판의 현실이 안타깝다. 원석이 보석이 될 수 있는, 노가리가 왜가리가 될 수 있는 그날을 응원하며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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