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과 영화 속 환경·기후 위기] ‘바람이 분다(The Wind Rises, 2013)’

전 세계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쓰나미 등 전례 없는 기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변화는 앞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되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9.0의 지진 규모로 역대급 사상자를 낳았다. 사망자는 1만 5899명, 쓰나미로 인해 수천 명이 실종되고 수만 명의 이재민이 속출했다.

쓰나미는 해당 지역의 후쿠시마 원전을 덮쳐 원전 사고로 이어졌다. 후쿠시마는 방사능 누출로 인해 200만 명이 고향을 떠나면서 유령도시가 됐다. 이런 대형 재난을 누군가 미리 예언했다면 어떨까.

과거 한 무명 만화 작가가 1999년 자신의 출간한 만화책에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정확하게 예측했다고 하여 큰 화제가 되었는데, 최근 다시 ‘난카이 지진’을 예언하며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 역시 난카이 해구 대지진의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왔기에, 그의 발언은 단순한 괴담을 넘어선 불안을 자극한다.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연 지형으로 인해 지진이 빈번한 국가다. 그렇기 때문에 대륙 진출은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결국 원자폭탄으로 백기투항해야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자국이 재난과 전쟁을 겪으며 발전시킨 기술이 무너지는 과정을 한 편의 애니메이션으로 연출했다.

영화 ‘바람이 분다’는 대지진과 전쟁이라는 재난 속에서 인간의 욕망으로 일그러진 사회상을 담으며 오늘날 인간의 욕심으로 직면한 환경 위기와 겹쳐 보이게 한다.

하늘을 날고 싶어 했던 소년, 전쟁으로 망가진 꿈

‘바람이 분다’는 일본 실존 인물인 항공기 설계자 호리코시 지로의 삶을 바탕으로 한다. 지로 는 하늘과 비행기에 매료되어 직접 하늘을 날고 싶어 했다. 지로의 꿈은 푸른 하늘처럼 순수했다. 그는 창공을 나는 아름다운 비행기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러나 그가 설계한 비행기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제로 전투기, 곧 가미가제 특공의 상징으로 남았다. 까까머리 어린 시절 촘촘히 누빈 초록색 모기장 아래 잠이 들고 잠이 깨던 지로는 꿈에서나마 마음껏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누빈다. 비록 잠이 깰 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꿈으로 마무리되지만.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20세기 초반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였지만, 전 세계는 이미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일본에서 사는 지로는 항공서적을 빌려 읽으며 비행기를 설계하고자 하는 꿈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현실과 꿈 사이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지로의 꿈에는 늘 한 사람이 등장한다. 혁신적인 항공기를 설계했던 이탈리아의 조반니 카프로니 백작이다.

그는 지로의 정신적 스승이자, 미야자키 하야오가 동경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지로는 처음에는 비행사 조종사가 되고자 했지만 설계사로 진로 희망을 바꾼다. 근시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생각에 결정적인 역할은 한 사람도 역시 카프로니 때문이다. 카프로니는 “비행기는 전쟁의 도구도, 장사도의 수단도 아니다. 비행기는 아름다운 꿈이고 설계사는 꿈을 형태로 만드는 사람”이라고 꿈에서 주장한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전쟁의 아픔이 뭔지 모르고 비행기를 아름다운 꿈으로만 생각했던 그였기에 어쩌면 비극은 예고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로가 청년이 되어 기차를 타고 난간에 앉아 바람을 느끼며 폴 발레리의 시를 낭만적으로 읊조리는 장면 또한 훗날 일어날 비극을 암시하는 반전의 장면이기도 하다. 바로 다음 장면, 곧 관동대지진으로 이어진다. 낭만적 풍경은 단숨에 무너지고, 기차가 흔들리며 대지가 갈라지는 순간, 꿈과 현실, 이상과 재난의 간극이 극적으로 드러난다.

미래를 바꿀 수 있다면 무엇부터 할 것인가

열차가 폭발한다는 외침에 저마다 서둘러 기차를 탈출하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지로는 한 소녀와 여성을 구하게 된다. 전쟁이 아닌 지진과 쓰나미, 대화재로 인한 아비규환. ‘관동대지진’의 시작이었다. 붉게 물든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는 전운을 암시하지만 일본인들에게 전쟁은 남의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지로와 나오코의 사랑 이야기는 오히려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시리도록 푸른 하늘 아래, 나오코가 그리는 화폭과 자연의 풍광은 아름답고, 두 사람이 주고받는 언어 역시 순수하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동시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기묘한 평화로움이 낯설게 느껴진다. 게다가 관동대지진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었다.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바람이 분다’ 스틸컷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는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수천 명의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당하는 참극으로 이어졌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지만, 시대적 배경의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지로의 비행기 개발과 요양 중인 나오코와의 사랑 이야기를 교차한다. 두 사람은 운명처럼 만났지만, 나오코는 폐결핵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지로는 결혼을 강행하고, 그녀를 극진히 돌본다. 두 사람은 짧은 시간 속에서도 함께 바람을 맞고,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인생에서 가장 평화로운 순간을 만들어 간다. 그러나 그 평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전쟁의 그림자와 병마의 절망은 짙어졌다. 개인의 행복조차 허락하지 않는 시대 상황은 자연재해와 전쟁 앞에서 무력해지는 인간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로에게 비행기는 하늘을 향한 순수한 열망의 결과물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상대를 죽이고 자신도 희생시키는 폭격기로 전락한다. 영화는 이 간극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기술의 두 얼굴을 보여준다. 발전은 편리와 풍요를 안겨주지만, 동시에 산업화와 함께 환경 파괴·기후 위기·재난을 불러온다.

이 작품에서 ‘바람’은 자유와 생명,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하지만 동시에 재난의 전조이기도 하다. 바람은 지로의 꿈을 일으키는 원동력이자, 사랑하는 이와 나누는 순간의 배경이며, 전쟁의 불길을 키우는 힘으로도 작용한다. 이 모순된 상징은 오늘날 빈번히 발생하는 자연재해 속에서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인간이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망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가 대표적이다.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미궁을 탈출하려 했던 이카로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 가까이 날았다가 추락해 죽는다.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대가였다. 그렇다면 지로도 꿈을 접고 비행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수많은 청춘을 살릴 수 있었을까? 역사는 가정법을 허락하지 않기에 알 수 없다.

영화 ‘바람이 분다’ 포스터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바람이 분다’ 포스터 ⓒ위클리서울/네이버영화

영화 첫 머리에 나오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는 시인 폴 발레리의 시구처럼 그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살아갈 수밖에 없다. 감독이 시인의 말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처럼 지구 재난 상황에서 우리가 현명하게 행동해야 할 일들이 남았다. 과연 우리는 바람의 힘을 파괴가 아닌 공존의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 자연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우리는 어쨌든, 함께 살아가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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