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재난과 영화 속 환경·기후 위기] ‘볼케이노 (Volcano, 1997)’
전 세계는 폭염, 폭우, 한파, 가뭄, 쓰나미 등 전례 없는 기후 위기에 봉착했다. 이러한 지구 환경 변화는 앞으로 모든 생물이 멸종되는 ‘제6의 대멸종’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문학에서 환경과 기후 위기를 어떻게 다루었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돌아볼 것은 무엇인지 시리즈로 연재해볼까 한다.
[위클리서울=김은영 기자] 온난화로 뜨거워진 대기, 무너진 계절 경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산불과 폭우. 지구는 지금 전례 없는 기후 불안정성 속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 또 ‘화산폭발’이라는 또 하나의 잠재적 재앙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과거에는 화산 활동은 지구 자체의 자연 순환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이미 기후 시스템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그 영향력이 다르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불의 고리에 속해 있는 르워토비 화산폭발로 인해 항공기 수십 편이 취소되고 국가적 재난 상황으로 비상이 걸렸다.
화산폭발이 일어나면 화산에서 날아오는 이산화황(SO₂)과 화산재가 대기를 오염시키고, 태양 빛을 차단시킨다. 이로 인해 지구는 기후 냉각이 일어나고, 강수 이상으로 인한 기상이변이 생길 수 있다. 지난 1982년 멕시코 엘치촌(El Chichón) 화산폭발로 인해 이미 극심한 기상이변을 경험한 사례가 있다.
화산재가 성층권까지 올라가 비행기 항로를 막고, 태양 빛을 막아 전 세계적으로 5%의 일사량 감소 현상이 있었다. 특히 화산재에는 아황산가스(SO2)·염소(CI2) 등의 가스와 용암·암석 등 유산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산성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성비가 내리면 농작물 등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자연현상이었던 화산이 이제는 인류 문명에 치명적인 불안정 변수로 작용하게 됐다는 뜻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극적으로 시각화한 작품이 바로 영화 ‘볼케이노 (Volcano, 1997)’다.
LA 한복판에서 벌어진 대규모 화산폭발
어느 날 갑자기 미국 로스앤젤레스 도심 한가운데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화산폭발이 발생한다. 사춘기 딸이 있는 평범한 직장인, 마이크(토미 리 존슨 분). 그는 휴가 기간 딸에게 요리를 해서 점수를 따려한다. 하지만 갑자기 진동이 발생해 달궈진 프라이팬이 공중으로 날아간다. 또 다른 시각, 시내 대규모 병원 응급실에는 많은 환자들로 분주하다. 그리고 곧 이은 지진으로 모두가 놀란다.
LA재난대책 본부장인 마이크는 갑작스러운 지진 발생으로 인해 직장으로 복귀하게 된다. 혼자 있게 된 딸이 걱정되는 아빠의 맘과는 다르게 딸 켈리는 시니컬하게 “무릎 사이에 머릴 박고 앉아서 하늘의 처분을 기다린다, 어때요?”라고 대꾸한다. 아빠는 환장할 노릇이다. 지진이 일어나자 도로는 아수라장이 된다. 사람들이 차에서 뛰쳐나와 언성을 높이며 차가 충돌한 것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경찰이 출동하지만 사람들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마이크의 직장인 재난대책본부에서는 이번 지진을 평소에도 자주 발생하는 국지성 지진으로 치부하며, 마이크가 휴가에서 복귀한 것을 환영하지 않는다. 마이크는 공원 지하 수도관에서 알 수 없는 가스 폭발사고가 일어났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으로 출동한다. 수도관 작업을 하던 인부 중 한 명을 구조했지만, 얼굴 한쪽이 화상으로 심하게 손상되고, 장기가 파열하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현장 작업 간부는 마이크에게 단순한 ‘증기 사고’라고 항변했지만 단순한 사고가 아닌 것을 감지한 마이크는 하수도 아래로 내려가 직접 사건을 조사하기로 한다. 지하도에는 7명 이상의 사망자가 있었다. 쥐들은 이미 숯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자 지하철이 지나가는 관이 나왔다. 더 진입하려 하자, 이내 하수도는 불길로 차올랐다. 마이크는 지질학자들을 동원해 지하철이 지나가는 구간으로 위험하다고 행정당국에 호소했지만 관련 담당자는 증거를 가져오라며 마이크의 의견을 묵살한다.
작은 전조현상이 모여 거대한 재앙으로
인근 호수의 수온은 매시간 높게 올라갔다. “이것 봐요. 호수의 수온이 어제는 17도였는데 지금은 20도예요.” 과학자 에이미(앤 헤이시 분)는 마이크에게 현재의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가 있는 지구 표면은 판형이죠. 이것이 지각변동이 일어나면 지진이 일어나고, 그 틈새로 마그마가 올라오기도 하는 거죠. 바로 용암이죠.” 알람종이 울리고, 아침을 먹고, 사람들로 꽉 찬 지하철을 타고 학교에 가고, 출근을 하는, 매일 똑같은 평범한 일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LA에는 강진이 발생한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은 지진으로 멈춘 열차 안에 갇히고, 터널은 붕괴된다. 하수도에서는 증기가 솟아올라 맨홀 뚜껑이 도시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고, 호수 수면이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거대한 총알을 변한 화산탄은 땅속에서 솟아나 폭격하듯 거리에 쏟아져 내렸다. 호수가 폭발하며 수면 아래 용암이 지표면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용암은 언덕을 타고 내려 도로를 덮었다. 용암이 닿았던 곳은 모두 불타올랐다. 지옥도가 시작됐다. 하늘에서 불똥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도시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해버렸다.
소방관들은 물을 뿌려 용암을 막아보려 하지만 소용없다. 경찰은 방호벽을 준비한다. 방호벽으로 용암이 더 이상 마을로 흐르지 못하도록 막으려 한 것이다. 방호벽의 높이는 2m, 방호벽이 세워지면 헬기로 물을 수송해 동시에 용암을 막는다는 작전이다. 마이크의 진두 지휘 아래 다행히 용암을 바리케이트 안에 가두는 작전은 성공한다. 하지만 이후 또 다른 재난이 이어진다. 이번에는 ‘화산재’다. 화산재의 농도가 위험수위를 넘었다. 화산재의 이상징후를 알아차린 에이미는 일차적으로 막았다고 생각한 화산이 또 다른 방향을 향해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한다.
에이미는 용암이 흐르는 속도를 예측하고 용암이 흐르는 방향이 시내 대형 병원이라는 것을 알아낸다. 에이미와 마이크는 폭약을 이용해 용암의 방향을 태평양으로 향하도록 변경시키기로 한다. 말도 안 되는 작전처럼 보였지만 결국 에이미와 마이크는 용암의 방향을 바꿔 사람들을 구한다. 작전이 성공하자 모니터로 현장을 지켜보던 재해대책반 직원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마이크의 생사가 좀처럼 확인되지 않는다. 모두가 불안해하는 그때, 무너진 건물 사이에서 마이크가 딸과 한 소년을 품에 안은 채 모습을 드러낸다.
소년은 화산재로 범벅이 된 사람들을 가리키며 환하게 웃는다. “사람들 얼굴 좀 봐요.” 이 장면 뒤로, 영화는 ‘활동 중인 LA 소재 워셔 분화구’라는 경고 타이틀을 남긴 채 막을 내린다. 영화 ‘볼케이노’는 화산이 우리 삶에 미칠 충격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 재난 영화다. LA 한복판에서 화산이 분화해 도심이 마비되는 장면은 누구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광경이다. 감독 믹 잭슨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을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옮기며, 화산 폭발이라는 예측 불가의 자연재해가 인간 사회에 던지는 위협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과연 내일 화산이 분화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우리 사회는 과연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답은 영화가 아닌, 우리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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